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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22. 2023

회사 냉장고에 박카스가 한가득입니다

제대로 된 과정이 있어야 행복한 결과도 있는 거지

'앞으로 우리 회사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란 말은 금기어입니다'


십 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보금자리를 새롭게 옮긴 지도 1년 하고도 7개월이 되어간다. 이직을 자주 하는 사람들 같으면 아마 '옮길 때가 되지 않았나' 할만한 시간이다. 하지만 내게는 입사 때부터 결심이 있었다. 회사와 함께 앞으로 꾸준히 성장할 생각이고, 그렇게 성장하는 회사를 구성원으로 지켜볼 것이라고. 하나 더 바라면 급여를 받는 마지막 회사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내 생각과 의욕처럼 하는 일이 술술 풀리진 않았다. 주고받는 얘기들이 생소할 때도 있었고, 일 처리가 미숙해 실수할 때도 종종 생겼다. 한마디로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 적응하느라 골병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의 깊은 관심과 배려로 빨리 적응해 나갔고,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수고가 많아요 김이사!"

자리 앞을 지나던 대표님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마디를 건넸다. 수고하는 직원들에게 종종 하는 인사 같은 말이었다. 대표님의 격려 섞인 인사에 감사 인사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회사에 유행어처럼 번진 직원들이 붙이는 수식어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입에도 언제부터인가 '쫘악' 달라붙어 잘하고 있을 때도, 정말 열심히 해야 할 때도 종종 쓰는 말이 됐다. 어느덧 동료들 사이에서는 쓰는 의미는 달랐지만 미사여구(美辭麗句) 같이 아름다운 말이나 글귀라도 되는 냥 자주 쓰이곤 했다. 너무 자주 쓰다 보니 대표님의 주의도 종종 있는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아니 모든 직원들이 내가 입만 떼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악덕업주처럼 보일 듯싶어.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는 열심히 한다는 말은 금기어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많은 직장인들이 과연 회사에서 '열심히 하겠습니다'란 말을 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사실 '열심히'란 말 자체만 놓고 보면 과정을 의미한다. 열심히 해서 결과까지 좋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 과정이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많은 고용주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과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목표한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다. 지시한 업무가 최적, 최상의 결과로 이어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프로'답지 못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야근'을 불사하는 부하 직원보다 관련 부서에 협조를 받아 업무시간 중에 마무리 짓는 효율성 있는 직원을 더 선호한다.


얼마 전 일 년을 넘게 일하던 컨설팅 업체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긴 시간을 준비해 온 업무에 결정적인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컨설팅 업체와 계약 목적은 서툰 업무라도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바른 업무 방향을 잡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업체는 바른 업무 방향은 고사하고, 어렵게 일궈놓은 결과들까지 수포로 돌아갈 위험에 처하게 했다. 다른 건 모두 덮어두더라도 업무 과실조차 '몰랐다'는 말을 일관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괘씸했고, 비상식적이었다.


사실 컨설팅업체와 일 년 동안 계약을 이어 온건 과정보다는 결과 때문이었다. 업무를 대하는 태도에 늘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처음 계획했던 방향으로 목표하는 두 건의 결과가 나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컨설팅업체의 노고는 거의 없었다. 처음 시작 단계에서만 도움을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동료와 나의 피, 땀, 눈물이 일궈낸 결과였다.  


마지막까지 불만은 컸지만 믿으려고 애썼다. 이해하려고 해 봤다. 내가 직접 선정하고, 계약한 업체라서 지금까지의 과정보다 앞으로의 결과만 믿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업무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나와 동료에게 책임 전가하는 모습에 결과도 과정이 있어야 함을 인정하게 된다.


일을 하다 보면 잘될 때도, 혹은 잘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행했던 일에 대한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일을 한 자신에게 있다. 아주 작은 결과라도 그 결과를 이끌기까지는 누구에게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과정 없는 결과가 있었던가. 우연한 결과란 없다. 작더라도 희생하고, 애쓴 과정이 있었기에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의 과정이나, 결과가 모두 중요한 이유다.


우리 회사 냉장고에는 박카스가 늘 가득 채워져 있다. 대표님의 기호식품이기도 하지만 다른 직원들도 즐겨 마신다. 피로회복을 위해 나도 가끔은 마시지만 냉장고 안에 가득 채워진 박카스가 가끔은 신기할 때가 많다. 요즘은 냉장고 가득 채워진 박카스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신을 아끼는 것이 피로회복의 시작이라는 예전 박카스 광고에서 떠오르는 카피 때문이지 싶다. 난 피로회복제 한 병 마시며 오늘도 좋은 과정 속에 행복한 결과를 꿈꿔본다.


 '난 오늘 나에게 박카스를 사줬습니다' 

자신을 아끼라는 광고 카피가 오늘따라 내 마음에 더 깊이 스며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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