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결과라고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감정이라는 게 존재하는 듯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설레었고, 만남을 이어가다 보니 기쁘고, 행복한 감정이 차올랐다. 아프기도 했다가, 때로는 참기 어려운 슬픔이 찾아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이별이란 시간이 찾아오게 된다. 모든 이별은 한 사람의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무기력과 슬픔으로 매몰되기도 한다.
몇 번을 했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일 테다. 그래서 만남, 헤어짐의 과정과 결과를 잊지 않도록 사람들에게는 감정이라는 낙인을 찍어놓는다. 이별의 아픔이 남아있어도 그 설렘과 행복한 감정을 다시 잊지 않고 갈망하게 말이다. 지루하고, 무뎌진 감정이라고 하더라도 헤어짐의 아픔과 슬픔이 얼마나 큰지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내일도 만남과 헤어짐은 사라지지 않는 관계의 해답 중 하나다.
"어머!"
아들방에 들어간 아내의 놀란 목소리에 난 방으로 쫓아 들어갔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
안타까운 시선으로 아들 책장 한 곳을 보고 있던 아내가 시선을 거두며 내게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기 윤희랑 찍은 사진이 놓여있었는데 싹 치워져 있어서요"
아들의 이별 소식을 미리부터 전해 들은 난 아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깨 한쪽을 토닥이며 아내를 위로했다.
며칠 전 아내와 나란히 앉아 대화 중에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얘긴 아들의 이별 소식이었다. 그 이야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건 5년간의 긴 교제기간이 첫 번째 이유였다. 아들은 여자친구를 중학교 때 만나서 졸업 전에 교제를 시작해 대학교 2학년이 된 얼마 전까지 이어왔다. 한 동네 사는 친구라 오며 가며 우리와도 인사를 하곤 했었다. 게다가 한창 사춘기 시절에도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모습에 대견하기까지 했다. 군대 가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지만 마음으로는 끝까지 예쁜 인연을 이어갔으면 마음으로 빌었다.
하지만 아들은 어제부로 모든 걸 정리한 듯 자신의 방에 있는 여자친구의 존재를 모두 지웠다. 사실 이 모든 소식은 아들의 입에서 직접 전해 들은 얘긴 아니다. 다만 아들의 카톡 대문과 프사에서 모든 사진이 삭제되었고, 인별그램에 모든 사진 또한 사라졌다는 말로 유추한 결과다. 짜 맞춰지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우리가 내린 결론이다.
'김민수 님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억누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부정적 감정이 유발되는 상황을 달갑지 않아 할뿐더러 거의 자동으로 그것을 회피하려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꼭 표현해야만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자신의 감정 자원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김민수 님은 본래 감성 자원이 적지 않은 사람입니다. 샘솟는 우물처럼 마르지 않고 풍부한 감성 말입니다. 누구보다 아름다움이나 행복에 관심이 많고 이를 누리려는 욕구도 강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내기보다는 통제하는 쪽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들이 참여한 서울시 자원봉사 지원센터에서 진행한 심리 분석에 대한 결과의 일부다. 이런 아들의 심리를 알고 있기에 이별 이후에도 자신을 억누르는 것 같아 보여 마음이 더욱 쓰인다. 많이 아프고, 쓰라릴 텐데 그래도 내색 없이 시험 준비하는 아들 모습이 더욱 힘이 들어 보인다.
워낙 오랜 기간 예쁜 연애를 해오던 아들의 이별 소식은 나와 아내 모두에게 충격이다. 다만 아들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니 물어보기도, 그냥 참고 지켜보고 있기도 둘 다 힘이 들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입 꾹 다물고 물어보지 못하는 건 지금이 딱 아들 시험기간이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아들이랑 술잔 기울이며 위로와 응원을 해볼 생각이다. 살면서 여러 번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한 선배로서,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등 토닥이며 한 번 안아주고 싶다. 그렇게 또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아프기 때문에 청춘이 맞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