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너 바보야? 힘드니까 월급 주지. 편하고 재미있으면 돈 받으면서 회사 다니겠어? 놀이공원처럼 돈 내고 다니지. 일이 힘들면 월급을 올려달라고 해야지 왜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리를 해"
※출처 : Jtbc 『대행사』 中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광주까지 출장길에 비까지 쏟아부었다. 팀원이었던 막내 사원과 함께 온 장거리 출장이었다. 정부기관 전산센터라는 특수한 곳이라 출입이 자유롭지 못해 몸도 마음도 불편한 시간이었다. 6시간이 넘는 시간을 전산실 밖으로 출입이 안 되는 영락없이 감옥이 따로 없었다. 고생 후 내일을 기약하고 빠져나오던 길에 비는 쏟아부었고, 종일 불편했던 시간을 알지도 못하는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았다. 숙소를 잡고 편하게 식사를 하던 중에 동행한 녀석이 잔뜩 무게를 잡으며 말을 걸어왔다.
"그래 OO 씨, 말해. 무슨 얘긴데 그렇게 분위기 잡고 그래. 무섭게"
몇 달 전에도 비슷한 분위기를 잡고 했던 얘기가 있어서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지만 겉으로는 모른 체 편하게 답했다.
"몇 달 동안 더 고민해 봤는데요. 저 그냥 회사 그만둘게요"
예상은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역시나였다. 쿨내 풍기며 아닌척하려고 했지만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출장길에 비까지 와서 마음까지 심란한데 퇴사 통보라니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당장 설득을 한다고 될 일은 아니고 내일은 출장 업무도 마무리지어야 하니 대화는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맞지 싶었다.
"OO 씨, 출장길에서 팀장한테 너무 잔인한 거 아냐? 알았으니 자세한 얘긴 서울 돌아가서 하자"
얘긴 거기서 일단락 됐지만 출장 복귀해서도 팀원의 심경은 크게 변화가 없는 듯했고, 난 아쉽지만 그의 퇴사 통보를 받아들여야 했다. 두 번째 요청이라 그를 잡아봤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일한다 한들 또 언제 퇴사를 고민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두 달 뒤 그는 회사를 떠났고, 난 쿨하게 덕담과 연락 자주 하라는 말을 건네며 웃는 얼굴로 보냈다.
처음 퇴사를 결심했을 때만 해도 붙잡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이민의 결심이었고, 그의 처우를 개선해 주는 걸로 어느 정도는 여러 불만을 해소해 줄 거라고 믿었다. 당시 내가 가졌던 전권을 이용해 그의 연봉을 20퍼센트 이상이나 올려줬으니 충분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고, 급여만 올려주면 어느 정도 문제가 해소될 거라는 잘못된 해결 방식이었다. 이미 처음 얘길 꺼냈을 때 마음이 가볍지 않았음을 몰랐던 내 이해력과 판단력의 오류였다. 떠날 사람은 어떻게 하든 떠난다는 진리를 지나치게 간과했다.
처음 팀장을 맡았을 때는 내가 무척이나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퇴사한다고 면담이 들어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직이나 퇴사를 독려하듯이 말들을 했다.
'힘들면 그래야지'
'옮기는 회사는 여기보다 좋은 조건이지'
'이직하면서 또 성장하는 거지'
'퇴사 전에 따로 식사 한번 합시다'
오히려 면담을 요청했던 팀원들이 더 당황했던 적이 많았다. 퇴사할 마음이었다고는 해도 한 번을 붙들지 않고, 너무 편하게 보내주는 것 때문에 서운한 마음도 때론 비췄다. 조금 심한 반응을 보인 팀원들 중에는 '자괴감'까지 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 번쯤은 잡아줬으면 생각했다는 말을 시간이 지나서 꺼내는 후배들도 있었다. 그렇게 했던 기준은 모두 내가 퇴사나, 이직할 때 느꼈던 마음 때문에 아마도 '구질구질', '끈적끈적'하게 매달리는 게 싫어서였을 테다. 모두 다 내 마음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부러 더 쿨내 나게 보내준 듯했다.
사람들마다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좋은 조건의 연봉이나 복지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성장 가능성을 보는 사람도 있다. 대기업 등과 같이 기업의 규모나 네임 밸류(Name value)를 따지는 사람도 많다. 어떤 사람은 일이 힘들지 않은지를 가장 먼저 꼽는 선택의 기준이 될 때도 있다. 또 최근 MZ세대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많이 따진다. 저녁이 있는 삶이 당연한 조건이자 권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조건으로 회사를 선택한 사람들이 퇴사를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도, 조건도, 네임밸류도 아닌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통계 조사에 따르면 연령대별로 퇴사의 가장 큰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20대 때는 급여나 조건등이, 30대 때는 일이, 40대 때는 새로운 도전이, 50대 때는 외부로부터 퇴사 압박이 가장 큰 이유다.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자신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일들이 잦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선택의 조건에서 그 첫 번째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급여나 조건을 결정하는 것도, 일을 지시하는 주체도, 퇴사 압박을 하는 것도 모두 사람에서 비롯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들어온 자리는 표가 나지 않아도 나간 빈자리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쿨내 나게 이직하는 팀원들을 보냈지만 정작 남아있는 사람들이 힘든 건 현실이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가면서 모든 일에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뛰어난 시스템도, 한 발 앞선 기술력도 아닌 척하면 척, 짝하면 짝 손발 잘 맞는 맘에 맞는 사람이 중요하다.
2년 전, 10년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직했다. 새로운 업무와 환경의 변화로 주변의 걱정이 많았다. 회사를 나오면서 상사의 마음에도 없는 설득에도 오히려 감사함을 표하며 했던 업무를 잘 정리하려고 애썼다. 그리 애쓴 때문인지 2년이 지났어도 내 업무를 담당한 후임자는 과거했던 업무를 아직까지 물어오곤 한다. 현재 회사에도 나와 같은 업무를 하는 동료들이 있다. 왜 나이가 들어서 깨달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난 요즘 함께 일하는 직원들 소중함을 안다. 결국 누가 뭐래도 남는 건 사람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