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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23. 2024

죗값을 치렀으면 좋겠다고 말한 동료에게 건넨 말

마음이 지옥 같은데 다른 게 무슨 소용일까

'철수 씬, 예전 어머니 돌아가시고 어떻게 그렇게 잘 견뎌내는지 곁에서 보면서 이해가 되지않고... 음, 좀 그랬어요. 그래서 아빠 돌아가셨을 때 오히려 A 씨 어머니 돌아가시고 한동안 프사에 올라와 있는 문구보고 위로가 더 됐던 거 같아요. A 씨 어머니 생각하며 슬퍼하는 결이 나와 비슷해 아빠 얘기하면 서로 슬픔을 더 이해할 것 같더라니까요'


얼마 전 아내와 대화 중에 작년에 돌아가셨던 장인의 얘기가 나왔다. 곁에서 아내의 슬픔의 깊이를 고스란히 지켜봤기에 한동안 장인의 얘기는 꺼내기 조심스러운 화제였다. 장인의 얘기가 트리거가 되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슬퍼할 아내를 생각하면 현재의 기분과 상관없이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모든 슬픔엔 시간과 사람이 약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아내의 깊었던 슬픔은 조금씩 아물고 있었다. 그렇게 슬픔이 아물기 시작하며 가끔은 툭, 툭 장인의 얘기가 나오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얘길 아내가 먼저 꺼냈다.


'글쎄, 나도 어머니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는 내내 이상하리만치 실감이 나질 않았어요. 생각처럼 그렇게 많이 슬프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오히려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종종 더 그립고,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사무실 식구들과 회식자리를 가졌다. 최근 한, 두 달간 운동 핑계도 되며 개인적인 이유로 사무실 회식 자릴 피했다. 하지만 최근 있던 사업 수주 축하건으로 빼고, 말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회식자리는 이어졌고, 마주했던 한 동료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며칠 전 아내와 얘기했던 어머니 장례 때 얘기가 나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떻게 그렇게 잘 견뎠냐고 아내가 물었는데 저도 돌이켜보면서 정말 슬프지 않았나, 아니면 슬픔이 오래됐더니 무뎌졌나 싶더라고요. 어머니가 좀 오랜 기간 많이 아프셨거든요. 5년을 항암 치료받느라 어머니 당신도, 가족들도 많이 지쳐있었을 때라 정말 아주 작게나마 나쁜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마주 앉아 얘길 듣던 동료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잠시 생각하던 난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동료의 어머니도 돌아가신 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음을 간과했다. 동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스스로를 질책하던 것도 잠시 동료는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이며 말했다.


'철수 씨, 저도 비슷한 마음이었어요. 어머니가 오랜 기간 치매셨거든요. 아마 철수 씨처럼 그렇게 많이 슬프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마음이 더 미안하고, 죄송하고 그렇더라고요. 아마 마음 한 구석에서 돌아가신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죄송하고요'   


동료의 말에 나 또한 그런 마음을 가졌음을 후회했던 적이 많았다. 진심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로 인해 정말 많이 힘이 들 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보내드리고 나서 남는 건 후회였고, 아쉬움이 컸다. 마주 앉은 동료의 마음이 나 같았을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쓰였다.


'편하게 우세요. 괜찮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잖아요. 부모님이라고 마음 편하셨겠어요. 아마 모두 이해하고 가실 거예요. 무거웠던 마음의 짐 이젠 그만 내려놓으세요'


이 말을 하며 나도 그동안 마음 한편에 가졌던 어머니에 대한 죄송한 마음,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후회나 아쉬움은 남는다. 오랜 관계라고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관계의 끝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끝이 단순히 이별이나 헤어짐이 될 수도, 오해와 증오로 얼룩져 파국을 맞을 수도, 죽음으로 갈라지는 사별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이별 후에는 사소하지만 아주 작은 아쉬움이나 후회가 남는다. 단순히 미안함, 서운함, 고마움부터 원망, 오해와 같이 마음에 상처로 남는 후회나 아쉬움도 있다.


사람 관계에서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많다. 좋은 감정이 큰 관계라고 하더라도 조금은 아쉽고, 서운하고, 어떤 때는 미운감정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관계는 다른 여러 나쁜 감정을 덮고도 남을 만큼 좋은 감정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지금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악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본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나쁜 인연을 말한다. 하지만 관용적으로 해석하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끈질기게 이어지는 인연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악연도 끈질기게 이어가는 관계의 또 하나의 형태다. 앞에 붙는 지긋지긋하다는 표현은 어찌 보면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나 붙일 수 있는 일반적 표현중 하나다. 그래서 '악연'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인연으로 이어진 또 다른 관계 유형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나쁜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미움, 증오 등 악 감정만 존재하는 사이는 관계라고 정의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감정만 남아있는 사이라면 서로 이어진 끈도 끊어내고, 마음속에 미움, 증오도 모두 지워버려야 한다. 그런 상대에 대해 갖는 감정은 스스로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 뿐이다. 그 마음을 그대로 안고 살면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날일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증오와 동요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의 멀쩡한 마음을 갉아먹는 아픈 날들을 보내야 한다. 서서히 치유, 치료하는 것도 좋지만 아예 증오, 미움의 대상인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고, 이런 마음을 잘라내 버리는 것도 좋은 해결방법이 된다.


지금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져보라. 주변에는 좋은 관계로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데 집중하고, 만족하는 게 어떨까. 


'지금 사건이 검찰로 송치됐고, 곧 재판이 진행될 것 같아요. 전 다른 건 모르겠고요. 아마 가해자 측에서 합의 요청을 해올 것 같아요. 합의도 좋지만 전 제대로 죗값을 치렀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 큰 일을 겪어 힘들었던 동료가 어느 정도 안정된 분위기로 업무에 복귀했다. 가볍게 차 한잔 하며 들은 동료의 얘기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동료에게도 힘든 날이 이어질게 뻔해 보였다. 조금은 동료의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법의 심판도 좋지만 지금은 손해 본 금액에 대해 잘 합의하고, 죄에 대한 판결은 법원에서 알아서 하게 해. 이젠 마음속 미움, 증오 같은 건 지워버리고 앞만 봐. 그런 마음 안고 살면 너만 힘들지 않겠어. 아마 어떤 결론이 나도 시원하거나 통쾌함은 없을 거야. 얼른 네가 그 지옥에서 나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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