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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16. 2024

팀장이 신입사원에게 '네가 팀장해'라고 말했다

다른 어떤 관계 정립보다 자신과의 관계 정립이 중요하다

"야, 그럴 거면 네가 팀장해.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이제 걸음마 땐 놈이 너무 기어오른다 너! 하던 일이 싫으면 회사 그만둬. 알았어?"



입사하고 일 년쯤 지났을 때 일이다. 회사에 무언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넘쳐날 때였다. 중, 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누군가보다 뛰어나게 잘하지는 못했던 나였다. 하지만 입사한 회사에서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보란 듯이 열심히 일했고, 어느 정도 성과로 선배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때였다. 당시 난 스스로에게 기특했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어느 회사나 메인 부서가 있고, 주력 제품이 있다. 특히 IT 중소기업에서는 회사 내 누가 봐도 부러워할 업무 포지션이 있다. 아쉽게도 난 해당 업무, 관련 포지션을 맡지 못했다. 


입사하고 수습이 끝나고 부서장에 의해 결정이 됐을 때만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업무 욕심이 나면서 남들이 부러워하고,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자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특히나 입사할 때 동기가 그 파트에서 근무하고 있고,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선배들도 해당 업무를 하고 있어서 더 그랬다.


내부 기술 세미나를 자주 했고, 선배들의 업무를 틈나는 대로 도왔다.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다 보니 어느샌가 다른 부서에서도 신입들 중에서는 제일 다는 '립 서비스'도 듣게 됐다. 처음엔 내 부지런함과 우연이 겹쳐 이런 행운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런 내 성실함도 내 실력의 일부라고 자만하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서는 동료들을 시기하게 되었다.


'나도 저 파트에 가면 동료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저 이슈는 나도 해결할 수 있겠는데 뭐 대단한 일 했다고...'


어느 날 부서전체가 회식을 하게 됐다. 다들 야간작업도 많고, 출장도 잦고 해서 좀처럼 모든 동료들이 모이기 어려웠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11명이나 되는 팀장님을 포함한 팀원이 모두 모였고, 그간 갖지 못했던 회포의 시간을 제대로 풀고 있었다. 선배, 동기 할 것 없이 모두 술이 어느 정도 취해 있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어느 정도 술자리는 끝을 보이고 있었다. 옆에 앉았던 팀장이 갑작스럽게 내게 질문을 했다.


"어이 철수 씨, 요즘 할만해?"

"하하, 에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팀장의 얼굴도 보지 앉은 채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잠시 후 몇 달간 마음속에 있던 내 물음과 질문들이 터져 나왔고, 내 질문에 회식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팀장님, 저 보직 변경 좀 해주세요. 저도 김 과장님 파트가 맡고 있는 업무 잘할 수 있습니다"

"안 돼. 팀 운영상 어려워. 형평성도 고려해야 하고. 연말에 생각해 보자"

"도대체 왜 안된다는 거죠? 기술력이나, 업무 태도 등 다른 동기들보다 다 제가 더 낳잖아요. 왜 저만 안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야, 그럴 거면 네가 팀장해.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이제 걸음마 땐 놈이 너무 기어오른다 너! 하던 일이 싫으면 회사 그만둬. 알았어?"

그 말이 떨어지고 나서 난 한참을 그 자리에서 울었다. 울음의 의미는 서러움, 두려움, 아쉬움, 속상함도 아닌 부끄러움이었다. 아마도 나 스스로도 마음속 깊게는 이미 들여다보고 있었던 '부족함'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학습하고, 선배들을 벤치마킹했다고 해도 그래봤자 입사 1년 차의 신입사원이었다. 기술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래봤자 1년 새내기의 시선에서 보는 자만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날의 회식자리는 그 이벤트로 끝이 났다. 다행히 다음날 팀장의 후속조치는 없었다. 다음날 오전에 따로 불러 '어제 무슨 일 있었냐?'라고 말하며 혹시나 불안해할 나를 위로하는 배려는 오히려 날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연말 팀장은 오히려 회식자리에서 했던 자신의 말을 지키기까지 했다. 난 내가 원했던 파트로 보직을 바꿨고,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을 마음 깊이 새긴 체 지금도 나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살다 보면 놓치고 있거나, 소홀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 관계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 중요하다. 그건 바로 자신과의 관계다. 내 안에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기는 무엇보다 어렵다. 소홀함은 기본이고, 자신을 지나치게 과하게 평가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 과신에 빠져 실제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 더 대단하게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지나친 자만감으로 큰 실수나, 실패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다. 또,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신중함, 자신감 결여 등으로 잡을 수 있는 기회조차 놓칠 수 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신중함은 중요한 덕목이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지나치다면 누군가에겐 우유부단함으로 비칠 수도 있다. 결단을 해야 할 땐 용기를 갖고 자신을 믿어보는 일도 필요하다.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경험과 능숙함, 통찰의 덫에 빠지는 것이다. 경험이 많은 것만 믿으면 그 안에 갇혀버리고, 능숙함만 믿으면 거기서 발전이 없고, 자신의 통찰만 믿으면 마음이 닫혀버린다.

 - 배한성 성우 50년 기념 인터뷰 中에서 -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만큼 자기 객관화가 어렵다는 반증이다. 이런 일은 이직을 결정할 때도 범할 수 있는 문제다. 현재 위치에서 좋은 조건의 이직 제의를 받은 일로 자신을 과신하는 일이 있다. 이직 오퍼(Offer)만으로 자신의 능력을 이미 평가받았다고 판단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그렇다. 설사 능력이 있다고 해도 바뀐 환경에서 바로 지금만큼의 실력발휘란 쉽지 않다. 이직 첫해에는 일정시간이 지날 때까진 현재 실력만큼 보이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지금 보여주는 능력은 다년간의 학습, 경험과 스킬이 쌓인 숙련 등이 익숙한 환경 등과 묶여 확산,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즉 지금 환경에  최적화되어서 발휘할 수 있는 오버 스킬에 가깝다. 매년 10승, 3할 타격을 치던 프로야구 선수들조차도 FA이적 첫해엔 죽을 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끔은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기량을 뽐내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벼는 익을수록 고갤 숙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이 생각하는 대로 이뤄지진 않는다. 자신에 관한 어떤 장담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자기 객관화의 오류로 타인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기고, 심지어 자신과의 관계에도 금이가게 된다. 타인과의 신뢰는 고사하고, 자신이 이뤘던 성과도 부정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자신을 마주 보는 자세,  일정한 거리 유지를 통한 관계 정립이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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