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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30. 2024

내 아내의 남자로 산다는 건

아내의 주문 때문에 우린 아직까지도...

'사랑하는 나의 반쪽. 생일 축하해요~ 맛있는 것도 못해주고,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맘이네요. 아들 군대 보내고 마음이 허해서 그런지 하루하루에 쫓겨 사는 느낌이네요. 그래도 서방님이 있어서 기운 내는 거 같아요.  나를 공주로 살게 해주는 울 서방님! 서방님 옆에서 공주로 오래 살고 싶으니 건강 관리 잘해요. 그래야 절 공주로 오랫동안 모실 수 있죠. 몸에 안 좋은 건 먹지 않도록 노력하고요. 오늘 하루가 당신에게 기분 좋은 날이길.'

 

생일을 맞아 아침 출근길에 '카톡'으로 받은 메시지다. 누가 보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의 메시지로 오해할 수도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이렇게 감동 문자를 받을 때면 아침 출근길이 설레기까지 하다. 사람 붐비는 출근시간 지하철 3호선 밀리고, 밀고하는 와중에도 아내의 카톡 한통으로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배려 가득한 남자로 오늘도 변신이다.



우린 결혼 23년 차다. 연애했던 연차까지 보태면 30년에서 1년이 조금 더 빠진다. 우리가 살아온 전체 인생으로 따져보면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 냈다.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우리 결혼생활이었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았던 건 서로를 위한 마음이 있어서 오늘이 있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특별하게 보인다는 건 싫지 않은 느낌이다. 학교에서 성적이 좋아서 특별하게 보일 수도 있고, 외모가 출중해서 특별해 보일 수도 있고, 발표를 잘해서 그럴 수도 있고, 일을 잘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난 아내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남들과는 조금 달라서 주변 알만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람 취급을 당한다.


아내가 좋아서, 아내를 사랑해서 하는 행동들이 남들에겐 부러움을 사기도, 칭찬을 받기도, 위화감(?)을 주기도 하는 듯하다. 의도하고 했던 행동은 아니었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특별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자주 듣는 얘기다.


연애 때는 상대방에게 더 잘 보이려고, 어떻게든 더 가까워지려고 조건 없이 잘해주려고 애쓴다. 이런 모습은 결혼을 하면서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잡은 물고기에겐 먹이는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일본의 한 평론가 오야소이치가 한 말로 잡고 난 물고기를 결혼한 아내에 비유해 결혼 후 남자의 못난 속성을 빗대어 말한 표현이다.


결혼 후 아내가 주변에 가장 많이 한 내 칭찬은 '결혼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한결같다'는 말이었다. 남들처럼 '비싼 명품 가방을 가끔 사준다', '이벤트를 자주 해서 날 기쁘게 한다', '요리를 잘해서 맛있는 음식을 종종 해준다' 등과 같이 어떤 행동에 대한 칭찬이 아닌 평상시 느꼈던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말했다.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가끔은 정말 '내가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결같다'는 아내의 얘기 덕에 오히려 더 변하지 말자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나였다. 지금도 자주 듣는 말이지만 한결같다는 말을 그래서 좋아한다. 아내가 나에게 그리고 내가 나에게 건 깨기 어려운 마법 주문 같아서.

물론 아무리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연애 때와 똑같이 일치하는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함께 살아본 적 없던 남남인 남녀가 사랑이라는 조건만으로 한 집에 사는데 어떻게 늘 좋을 수 있겠는가. 우리도 여느 신혼부부처럼 가끔 부부 싸움이라는 것도 해봤고, 소싯적에는 술 때문에 아내를 속상하게도 해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들이 많았다. 과음 때문에 집을 찾지 못해 아내가 날 데리러 온 적도 있었고, 술 먹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이런 문제가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더라도 우리는 세가지만은 하지 않았다. 각방, 가출, 나쁜 말. 아무리 말다툼이 있더라도 잠은 한방에서 잤고, 절대 집을 나가지 않았고, 싸움으로 번졌던 대화 외에 상대방의 감정을 다치게 하는 나쁜 말은 하지 않았다. 특히 내 얘기보다 아내의 얘기를 들으려고 애썼다.


부부가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중심으로 생활이 바뀌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린 부부중심의 삶을 려고 노력했다. 모든 시간 우리 부부를 위한 시간으로 채울 수는 없지만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주말, 휴일이라도 상대방을 배려한 시간을 꼭 가지려 했다. 결국 나이 들고 곁에 남는 건 자식이 아닌 짝꿍인 내 아내, 내 남편뿐이니까. 있을 때 잘하라는 얘기가 그냥 웃자고 나온 얘기는 아니지 싶다.


지금 아내와 난 연애초기 때처럼 아주 뜨겁진(?) 않지만 아직까지도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은 달달 달콤한 사이다. 난 요즘도 종종 아내를 그윽한(?) 시선으로 보곤 한다. 


"저기요. 왜 자꾸 보세요?"

"하하,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취미 활동 중이랍니다"

"에구! 저기요 그만 보세요. 그 느끼한 시선 좀 거둬주실래요"

"싫은데요"


그런 내 시선을 느낄 때마다 아내는 '뭘 자꾸 보세요?', '저기요' 등의 말로 따가운 시선외면하곤 애쓴다. 민망해서 그럴 테지만 말은 그랬게 해도 표정만은 싫지 않은 눈치다.


한 여자의 남자로 사는 삶. 한 남자의 여자로 사는 삶. 만나고, 헤어지고 가 쉬운 요즘 그래도 한때는 내가 너무도 사랑해서 만났고, 사랑했던 사이다. 아무리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로 점철되는 사회 분위기라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상대방을 위해 조금 더 손해 보고,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배려하면 어떨까. 단점보다는 장점을, 받는 것보다는 주는 걸 더 생각하는 관계가 되면 부부사이도 조금 더 가까워지고, 각별해질 것이다. 남자 여자하기 나름이지만, 여자도 남자 하기 나름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도 달라지고, 집 나간 마음도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잡은 물고기인 내 아내, 내 남편부터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할수록 더욱더 마음 쓰고,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


부부는 어떠한 가치관이나 종교 등과 같이 확고한 진리라고 확신하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갖는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믿음이 아닌 신뢰라는 단어로 묶인 관계다. 신뢰라는 단어 자체가 기대와 위험을 동반하는 개념을 갖고 있다. 기대를 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면서, 서류 한 장만으로도 돌아서면 남남이 될 수밖에 없는 사이다.  신뢰가 유지되고, 온기가 느껴지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녕하세요, 브런치 작가 추억바라기입니다.

 

26주라는 긴 시간 동안 '관계의 미학' 연재를 진행해 왔습니다. 경험을 통해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해 지극히 사적인 견해를 글로 담아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이야기 속 관계에 대한 정리, 새로운 정의나 생각을 스스로 깨닫기도 했고, 많은 독자분들을 새롭게 만나는 계기도 됐고요. 이번 연재를 끝으로 매주 화요일에 발행되는 정기 연재는 끝내려고 합니다. 다만 비정기적으로 가끔 관련 글을 쓸 예정이고, 다음 주부터는 새롭게 연재를 기획해서 다시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아직까지 어떤 글을 쓸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지만 제가 그간 썼던 글과 크게 다르지 은 결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동안 '관계의 미학' 구독해 주신 많은 분들께 이 글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인사 드립니다. 그럼 다음 연재하는 브런치북에서 또 뵙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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