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몇 신데 퇴근해 김대리!. 엉? 당신 때문에 팀 분위기 엉망인 건 알고 있는 거지?"
처음 이직한 회사에서 입사 후 일주일 만에 들었던 말이다. 오랜 기간 근무한 것도 아니고 딱 일주일이다. 팀 분위기를 흐릴만한 시간도, 위치도 아니었다.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팀 분위기를 망치고 있는지. 일주일간의 행동 중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행동이라고는 팀원들보다 조금 일찍 간 게 전부였다.
"팀장님, 죄송합니다만 제 어떤 점이 팀 분위기를 망쳤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뭐? 하하, 어이가 없네. 당신 다른 팀원들에 비해 일없다고 티 내는 것도 아니고. 길게 얘기할 거 없고 내일 출근해서 얘기합시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출근 후 나흘을 8시 30분에 퇴근했다. 하루 근무시간으로 따지면 2시간 초과근무를 한 셈이다. 금요일이라 30분 일찍 퇴근하려고 일어났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그것도 이직해서 아직 할당된 업무가 많지 않을 때였다.
9 to 6(9시 출근, 6시 퇴근)로도 충분히 업무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팀 전체가 팀장 때문인지 일이 많아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팀장 퇴근 후 동료들의 퇴근은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보였다. 팀원들에게 들으니 평균적으로 10시 퇴근이고, 조금 늦으면 11시를 넘길 때도 많다고 했다.
지금이야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것처럼 법정근로 시간이 주 52시간 법적, 제도적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관리자 성향, 회사의 분위기, 업무량에 따라 말 그대로 근무시간은 탄력적 운영이었다. 주 50시간은 기본인 데가 많았고, 초과시간까지 따지면 55~60시간을 넘길 때도 많았다.
팀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었고, 회의나 업무에서도 경직된 태도나 모습이 많았다. 한 동료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이었지만 얼굴에는 늘 먹구름이 가득했고, 동기들끼리 모여도 대화가 없었다. 동료들은 팀장과 같은 공간에 있길 꺼려했고, 함께 회식을 하는 날이면 자발적 야근을 택하는 동료도 많았다.
급여나 조건은 좋았지만 난 결국 다른 회사로 이직을 결정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었지만 그런 관리자 밑에서 참고 살다 보면 사고를 치던가, 퇴사를 하던가 두 가지 길 밖에 보이지 않았다. 퇴사의 결정적 사유는 한 달에 몇 번 없는 팀장 외근날에도 여섯 시 퇴근이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회사에 길들여 있는 직원들을 보면서 더욱 결심을 굳혔다.
'그래, 조건이야 여기만 못하지만 사람이 사람같이 일하고 살아야지. 여기 다니다간 언제 미쳐도 이상할 게 없겠어'
불과 삼 개월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여러 동료들은 재고해 보라고 얘기했지만 또 몇몇 직원은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막상 이직에도 큰 용기가 필요함을 알기에 직원들의 부러움은 당연한 마음이었다.
회사 마지막 출근날 팀장에게 인사를 하러 자리로 갔다. 그리 좋은 관리자는 아니었어도 관리자였던 시간이 있는지라 마지막 할 도리는 하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은 금세 후회로 바뀌었다. 인사를 하려고 그의 책상 앞에 섰을 때 그는 날 투명인간 취급했다. 내가 옆에 서서 인사를 하는데도 그의 시선은 모니터를 향했고, 인사말에도 들은 체 만 체였다. 결국 3개월의 마지막은 씁쓸하게 끝이 났다.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배신한 첫 배신자로 날 낙인찍었을 것이고, 다른 팀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도 한 가득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왕국에 흙탕물로 더럽힌 미꾸라지 한 마리로 생각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삼개월도 안되어서 자기 발로 나가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바라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동료들과의 송별회는 없었다. 당연히 팀장이 내 퇴사 상황을 안타까워하지 않았고, 직원들의 동요를 원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동료들에게도 인내심에 한계는 있었다. 팀장이 생각하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그들에게 없었다. 단순히 첫 직장이고, 연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에 붙잡아놓기에는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팀장을 제외한 여섯 명의 팀원 중 회사에 남은 인원은 한 명이 전부였다. 그렇게 퇴사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팀장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퇴사했고, 들리는 소문으로는 회사 임원이 되지 못해 자기 발로 나갔다는 얘기도 있고, 정리되었다는 말도 돌았다.
최근 즐겨보는 드라마(SBS '감사합니다')에서 개발실 만년 과장이 자신의 관리자 때문에 '기술 유출' 사건의 동조자로 의심받게 되었다. 실제 그의 지시로 했던 행동들이 외부로 기술유출을 하는 것임에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실제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한다는 의심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관리자는 그의 능력을 칭찬하며 과도하게 업무를 줬다. 종종 업무량이 많다고 그가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관리자는 더 높은 직위를 약속하며 '조금만 더'를 부추기고, 응원했다.
직장 내 괴롭힘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드러내놓고 혼내고, 야단치거나, 고성을 내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드라마에서처럼 '널 믿어', '잘하고 있어', '조금만 참으면 끝나' 등의 격려와 응원을 가장해 과도한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형태다.
과거 직장 선배가 업무로 야단치고, 과중한 업무를 지시하더라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적도 있었다. 부족하니 당연히 야단맞고, 일을 배우라는 차원에서 많은 일을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정당한 업무지시 이외에는 목소리를 높였다. 업무 때문에 인격무시나,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해서는 안된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한 생각이다. 사람이 한 행동을, 행동에 따른 결과를 평가해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업무에 무조건적인 효율을 따지긴 어렵다. 하지만 업무를 함에 있어서 효율을 따져야 하는 건 기본이다. 그래서 대부분 회사가 부서로 나뉘어 있고, 부서 내에서도 업무 분장을 하는 이유다. 전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모든 일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둘이면 충분하다. 나머지 부서원들은 조직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량껏 수행하면 그뿐이다. 자신의 업무 외에 다른 업무 지원은 지시, 부탁하는 사람의 몫이 아닌 지원을 해줄 당사자의 결정에 달렸다.
관리자는 타고나는 게 아니다. 입사한 회사의 상황, 자신의 역량, 조직의 인정 등이 겹치면 누구나 관리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직장인이 좋은 관리자가 될 수는 없다. 좋은 관리자는 남들보다 한발 더 앞서 생각하고, 각자에게 적합한 업무지시를 통해 유기적, 효과적,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좋은 관리자는 동료들에게 인정과 선택을 받는다. 사람과 업무를 구분할 줄 알고, 업무 성과에 따라 정당하고,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를 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당신 관리자는 좋은 관리자인가 생각해 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