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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13. 2024

아무런 문제없는 부부생활은 오히려 따분하다?

생각하고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안녕하세요, OOOO 사장님 아니세요? 여기까지 웬일로 오셨어요?'

'아, 안녕하세요. 애들하고 오랜만에 외식 한 번 하려고요. 식사하고 가세요'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가는 자리마다 아버지 지인들의 인사를 자주 받았다. 모두 아버지가 기억하는 지인은 아니었지만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몰라도 알은척, 알면 더 아는 척 아버지는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셨다.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하셨을 때가 불과 마흔을 조금 넘어섰을 때였다. 십여 년을 급여생활을 하던 아버지에게는 큰 변화이자 모험이었다.


첫 사업임에도 나이 때문이었는지, 원래부터 사업 체질이었는지 나이에 걸맞지 않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만나는 업체분들이 꽤 연세도 있으셔서 혹시나 젊은 나이가 걸림돌이 될까 염색도 마다하셨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아버지는 흰머리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나이 들어 보이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는지 모르지만 그 덕에 일찍부터 올라왔던 새치는 아버지의 비호 속에 그 세를 넓힐 수 있었다.


난 사실 부모님과 함께 한 자리에서 '사장님', '사모님'하는 소리를 듣는 게 싫었다. 가끔 부러운 시선이나, 시기 섞인 소리를 들을 때에는 더욱 그랬다. 지금이야 손님으로 간 어떤 자리든 간에 주인이 손님을 부르는 일상용어가 됐지만 그 시절 아버지를 부르던 그 호칭은 어딜 가나 따라다니던 수식어 같이 되어 있었다. 사춘기 시절 그 때문에 인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고, 귀찮았지 싶다. 머쓱하더라도 웃어야 하는 상황에 지칠 때가 종종 오곤 했다.


그렇게 건재할 것 같던 아버지도 사업 실패라는 좌절을 겪는 시기가 있었다. IMF를 기점으로 기울던 사업체는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다. 십여 년을 운영하던 사업이 곤두박질쳤고, 집과 사업장 모두를 잃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아버지는 꽤 오랜 기간 실의에 빠져있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는 더 이상 재기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컸었다. 아버지 나이는 어느덧 오십이 훌쩍 넘었고, 내 기분 탓이었는지 그때 아버지는 아버지 신의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사업장 부도는 아버지에게서 사회생활을 하며 얻었던 모든 지위와 호칭을 빼앗아갔다. 하지만 아버지가 긴 시간 지켜오고 있던 가장이라는 책임만은 놓지 않았다.

결국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지만, 재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다시 기운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트럭에 바나나를 싣고 이리저리 팔러 다니는 행상인을 하시다가, 이내 경험이 없는 조경일까지 하시기 시작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상황이 길어졌지만 가끔씩 만나는 아버지의 구릿빛 피부가 오히려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렇게 다시 일을 시작하신 아버지는 그 후로도 지금까지 이십 년을 넘게 꾸준히 일을 하시고 계신다. 아버지 나이도 어느덧 일흔이 넘은 지도 한참이 지나셨다. 그래도 자기 관리에 충실하신 분이라 큰 병 없이 아직까지도 매일은 아니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 달에 여러 번 일을 나가신다. 그 덕에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신이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아직까지는 유지하신다.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얼마냐고 물어보면 정확한 무게를 답할 사람이 있을까? 백 킬로그램, 오백킬로 아니면 한 일 톤쯤 될까.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붙여진 직위, 직책에는 어떤 다른 직급, 직책보다 책임이 따른다. 사회생활에서 노력해 얻어진 위치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지만 그마저도 행복 가득한 자리라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사회생활에서 얻어지는 직급, 직위는 승진하거나, 회사를 옮기거나, 퇴직을 하고서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짧게는 일, 이년이 될 수도 있고, 길어봐야 삼십 년 남짓이다. 하지만 결혼해서 얻게 되는 모든 직위와 직책은 평생을 짊어져야 무게다. 그 끝이 이혼이고 하더라도 남편의 책무는 끝나지만 자식들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삶의 끝까지 당신에게 짐을 지을 것이다. 아니 당신이 져야 할 무게고, 짐이다.


통계청 결과에 따르면 2023년 한 해동안 결혼은 19만 4천 건, 이혼은 9만 2천 건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결혼 대비 이혼비율로 비교해 보면 48퍼센트에 달하는 이혼율을 보인다. 결혼도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이혼은 그보다 더 어려운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결혼건수 대비 이혼율 자체만 보면 불과 십 년 전인 2015년 통계(35퍼센트)에 비해 약 13퍼센트가 늘었다. 단순 수치라고는 하지만 내겐 책임의 무게 또한 10퍼센트 이상 줄어든 느낌이다.


결혼한 커플들은 대부분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 한 사람만 보였을 연애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씌었던 콩깍지는 '성격차이', '경제력', '외모변화', '고부갈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벗겨질 것이다. 뜨거웠던 상대방에 대한 사랑은 어느덧 식을 것이고, 좋았던 감정은 까마득한 기억 저편 너머로 잊히게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이라도 매일, 매 시간이 좋은 감정일 수는 없다. 연애할 때와 또 다른 감정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살을 부대끼며 살다 보면 감정 간에 부대낌도, 실망도, 미움도 생길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완벽하게 똑같은 성격이거나 성인, 군자가 아닌 이상은 좋은 감정만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사랑은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의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온 것이라는 학설이 있다, 이 말에서 온 것과 같이 사랑은 상대방을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속 의미를 갖고 있다. 상대방을 깊이 생각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고, 끝이라는 생각이다.


희로애락의 어떤 감정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게 사랑이라고 한다. 즐겁고, 기쁘고, 슬프고, 분노하는 모든 복합적인 마음을 포함하는 감정으로 이해된다. 단순히 '기쁨', '즐거움'이 사랑의 감정 전부라면 난 아마도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생각에 과감히 한 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감정이 함께 하모니를 이뤄야 긴 시간 삶에 대한 고마움, 행복에 대한 감사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변하지 않는 삶은 없다. 세월에 바뀌는 건 외모뿐만이 아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냐에 따라 자신도, 상대방도 변할 것이다. 내 아내, 내 남편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것이 스스로가 존중받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아무 문제없는 부부생활은 오히려 따분하고, 지겨워질 수 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나와 상대를 배려하다 보면 슬기로운 부부생활은 어렵지 않다. 부부가 건강하면 가정의 평화와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록이다. 상대방에 대한 책임, 주어진 짐이 아닌 노력으로 얻은 행복의 결실임을 알게 된다. 앞으로도 상대를 깊이 생각하고, 헤아린다면 꽤 오랜 기간 유통기한 걱정은 접어놓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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