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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l 23. 2024

60분 미만, 71분 이상이 가져온 결과

오피스 와이프 말고 그냥 와이프와 대화가 필요한 이유

'거짓 이기는 건 진실이 아니야 더 큰 거짓말이지'


얼마 전부터 보기 시작한 OTT 기억나는 대사 중 하나다. 드라마의 주 내용은 부패한 정치인을 응징하려는 주인공과 한 때는 개혁을 꿈꾸는 젊은 정치인이었으나 재벌과 유착으로 얽힌 부패 정치인 간의 권력 다툼을 다룬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정치를 시작했지만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도 혐오하던 괴물이 되고 마는 현실을 그렸다.


초심을 잃고, 현실과 타협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초심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어렵다는 것은 초심을 가져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신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가졌던 마음가짐을 유지하기란 무엇보다 어렵다. 변하는 건 세상이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평소 난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일찍 퇴근한다. 그래서 오늘도 여섯 시가 되기 전에 퇴근 준비를 서둔다. 집에 가면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지만 퇴근길은 항상 즐겁다. 아내가 준비한 정성스러운 저녁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는 막걸리를, 또 다른 날에는 맥주로 반주를 즐긴다. 가끔 듣는 아내의 잔소리(?)를 안주삼아 슬며시 웃음으로 넘기며 오늘도 그 일상을 즐긴다.


식사 후에는 식사준비한 아내를 대신해 설거지는 늘 내 담당이다. 퇴근해 설거지까지 하는 내가 안쓰러운지 아내는 늘 곁을 맴돈다. 그러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이렇게 설거지가 끝나면 우린 차 마시며 대화를 이어간다. 그렇게 이어진 대화는 아이들 이야기나 최근 우리 관심사 혹은 주변 문제로 화제를 옮긴다. 매일 반복되지만 끊이지 않는 대화가 신기할 때도 있다.


모든 행동이 습관이 되면 익숙해지듯이 부부간 대화도 비슷하다. 같은 대화로 반복할 것 같지만 시도가 어렵지 반복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작게나마 우리 일상이 매일 다른 것처럼 대화 주제도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가끔은 같은 주제로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같은 주제여도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며 새롭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우리 부부에게 대화는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이다.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관심도 표현하고, 가끔은 위로도 하고, 응원도 한다. 그래서 대화는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다. 표현해야 서로의 상태도 알고, 서로를 알아야 배려도, 위로도, 응원도 가능하다.


며칠 전 기사에서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의 존재를 알고 나서 이혼을 고민하는 아내의 사연을 읽었다. 최근 들어 바빠 보였는데 들떠 보이는 게 수상해 남편의 스마트폰을 보던 중 오피스 와이프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남편에게 해명을 요구했지만 그냥 장난이었다고 가볍게 얘기하며 넘기려 했다는 기사였다.


하지만 이 기사보다 내가 더 놀란 사실은 기혼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이었다. 설문에서 남성의 56퍼센트와 여성의 31퍼센트가 오피스 스파우스가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설문에서는 42퍼센트가 넘는 기혼남녀가 오피스 스파우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오피스 스파우스는 실제 부부나 애인 관계는 아니지만 직장 생활에서 배우자만큼, 때로는 배우자보다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성 동료를 일컫는 말. 여성의 경우 오피스 와이프, 남성의 경우 오피스 허즈번드라고 불린다. (출처 : 나무위키)

하루를 기준으로 동료와 대화시간은 평균적으로 약 71분인데 반해 부부간에 대화는 한 시간 내외다. 직장 동료들과 대화하는 시간과 부부간에 대화하는 시간을 확인한 결과만 봐도 오피스 스파우스 설문결과에 수긍이 가는 수치다. 직장 동료와 부부 사이는 연차가 많아질수록 대화 시간은 더 반대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직장, 결혼 연차가 늘수록 오피스 스파우스의 위험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오랜 직장생활을 경험해서인지 내 주변에도 그런 오해를 살만한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조금은 위태위태한 그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아무리 육체적 관계를 동반하지 않는 친밀한 관계라고 할지라도 보는 시선에 따라 도덕적인 잣대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고리타분한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할지라도 지친 회사생활과 일상에 활력소라고 단정 짓는 긍정적 의견에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오피스 스파우스는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응원할만한 관계도, 배우자에게 내세울 떳떳한 관계도 아님은 분명하다.


'아니 아내분이 그런 일까지 아세요?', '부부간에 어떻게 매일 한, 두 시간씩 대화가 가능하세요? 무슨 얘길 하시길래...'


종종 직장 동료들이 날 다른 세계 사람으로 볼 때가 있다. 아내와 전화 통화 중에 회사 얘기를 할 때도 그렇고, 직원들과 얘기하다 보면 아내와의 대화 얘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난 이런 질문을 하는 직원들에게 한결같은 말을 전한다. 긴 시간을 함께해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듯이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내 남편, 내 아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일상을 얘기하는 시간은 필요하다고 말이다. 오늘은 어떤 힘든 일, 좋은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삶과 함께 한다는 공감을 하지 않을까. 이런 하루가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대화는 일상이 되고, 위로와 응원은 덤처럼 따라온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무뎌지게 만들고, 관심도 끊어내지 않았을까 고민이 필요할 때다. 무언가 꾸준하면 습관이 되고, 없던 흥미도 생기는 사람일이다. 하물며 원래부터 좋아서 시작한 사람과의 관계면 무뎌지지 않게 꾸준하게 관심 갖고, 작은 일도 함께 대화하면 극복하못할 일이 있을까 싶다.


세상 모든 것들은 변한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다. 늘 한결같을 수는 없다. 뜨거운 가슴을 갖고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마음은 십 년을 유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만은 놓지 않아야 한다. 심장이 아닌 머리로라도 처음 서로에게 가졌던 마음만큼은 오랜 시간 기억할 있지 않을까. 오랜 시간 같은 주문으로 스스로에게 꼭 필요한 최면을 건다면 굳이 회사 이성동료에게서 활력소를 찾을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오늘도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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