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Jul 09. 2024

올스타전 직관한 딸이 한 말에 공감한 이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세상 이치고, 진리다

'아빠 이 사람 알지?'

내 얼굴 앞으로 내민 딸의 스마트폰 속에는 평소 야구를 좋아하는 내겐 너무도 익숙한 얼굴의 한 선수가 있다.

'당연히 알지. LG 트윈스 간판선수잖아. 어이, 딸. 푸른 피의 가문에서 적군 선수는 왜 보여줘'

'응, 나 이 선수하고 결혼할까 하는데. 나이차도 그 정도면 적당하고'

얼마 전까진 두산의 한 선수가 좋다고 하던 딸아이였다. 그 사이 팬심이 또 바뀌었는지 오늘은 LG의 젊은 피를 보여주며 한 창 나와 설전이다.

'아무리 그래도 삼성에 젊은 선수들 얼마나 많은데 왜 삼성에선 그 넓은 팬심 발휘는 없고, 남의 팀에서 자꾸 찾고 그러냐?'


아이들을 데리고 프로야구 중계를 매년 한, 두 번씩은 다녔었다. 야구 시즌에는 저녁엔 웬만하면 아이들과 함께 야구를 봤었다. 그래서인지 큰 아이는 야구 경기를 혼자서도 즐겨봤다. 하지만 딸은 몇 년 전까진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 년 전부터 딸아이는 프로야구 직관하러 가자고 종종 졸라 됐다. 얘기할 때마다 갈 수는 없었지만 딸과 둘이서, 아내와 셋이서 한, 두 번 경기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딸아이의 야구 사랑은 올해가 시작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야구를 보러 간 적도 있었고, 응원하는 삼성을 빼고도 다른 팀 알만한 선수들 정보도 종종 얘기하기 시작했다.


프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게 문제는 아니지만 정작 아이의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게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딸은 이제 수험생이나 다름없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개인적으로는 야구에 대한 관심은 잠시 접고 남은 기간 학업에 온 신경을 쏟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수야, 오늘 경기 역전패 당했어. 그렇게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었는데 아쉽네'

이른 저녁에 스터디카페에 간다고 나간 딸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경기결과가 궁금할까 싶어서 먼저 내가 얘길 꺼냈다.

'응, 알아. 오늘 필승조가 역전패당한 거 같던데'

시험공부하러 간 녀석이 경기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게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공부하러 가서 그건 또 언제 봤데.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나중에 하이라이트 봤어'

딱 잘라서 얘기하는 당당함에 더는 얘기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마음에서야 천불이 끓었지만 공부하다 잠깐 쉴 때 그랬거니 하려고 마음을 비웠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자주 생겨서 문제지만.

6월의 어느 날,  딸아이와 대화가 한 창이었다. 시험이 3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딸과 시험 준비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했으나 정작 딸아이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빠, 나 프로야구 올스타전 예매해 줄 수 있어요?'

딸아이가 기대에 찬 눈으로 내게 부탁을 는데 시험 얘기로 말을 돌릴 수는 없었다. 잠깐 아내에게 구원 요청의 눈빛을 보냈고, 아내는 내 싸인을 눈치채고 딸아이 제지에 나섰다.

'야~, 김지수! 올스타전 예매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리고 그 예매 평일이던데 아빠 회사 일하면서 예맬 어떻게 해. 안돼~'

'그런가? 아니 아마도 그렇겠지. 아빠, 정말 어렵겠지?'

'..... 어렵지만 그렇게 가고 싶다는데 그 걸 못 들어주겠어. 후~ 신경 끄시고, 기말시험이나 잘 보셔. 아빠가 몇 장 예매하면 될까?'

조금 실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딸아이 시선을 차마 물리지 못하고 그날도 난 백기를 들었다. 그렇게 난  어렵다는 프로야구 올스타전 티켓을 네 장이나 예매했다. 혹시나 예매시간 놓칠까 봐 10분 전 알람에, 노트북은 시간 동기화까지 해서 딸의 친구들 티켓까지 무사히 예매를 마쳤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졌다. 장마기간이라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고 기다렸다. 하지만 하루 전까지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리는 인천의 날씨는 비를 예고했다. 거기에다 전날부터 딸아이의 귀차니즘이 발동됐다. 딸에게 비는 당장 시험 끝나고 지친 몸을 쉬게 할 좋은 핑계였다.


'비 오면 허탕 칠 텐데 가야 하나' , '갔다가 우천중단이나 취소가 되면 어쩌나', '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왕복 3시간이 넘는데...'


이런 딸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아빠가 어렵게 티켓 예매했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부터 친구들은 어쩌냐고 어르고, 달래기를 반복했다. 결국 딸은 친구들과 한참을 논의 후 당일 날씨보고 오후까지 비 안 오면 가는 걸로 친구들과 결정했다.


경기가 있는 당일엔 장인어른 첫제사라 아내와 난 지방에 가야 했다. 딸의 의지만 봐서는 반신반의했지만 친구들과 신의는 지킬 거라 생각했다. 딸아이에게 재밌게, 조심해서 잘 귀가하라고 당부 후 우린 처가에 내려왔다. 다행히 인천은 오후 강수 확률이 거의 없는 경기 관람하기 딱 좋은 날씨를 예보했다.


지방에 도착해서 딸에게 연락했더니 친구들과 어울려 인천 가는 지하철이라고 했다. 경기를 보러 가는 중이고, 끝나고 연락한다는 메시지였다. 우스꽝스러운 필터 건 사진들과 함께. 딸아이 기분이 좋다는 방증이어서 안심하고 우린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제사가 끝나고서 tv를 켰더니 경기는 끝났고, 시간상으로도 딸아이가 집에 갔을 시간이었다. 잠시 후 아내의 전화로 딸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전화를 받았더니 전화기 너머로 딸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재밌었어. 데이식스가 와서 노래했는데 라이브로 들으니 정말 노래 잘하더라고. 선수들 경기하는 것도 너무 재밌었고, 불꽃놀이도 너무 멋있었어요. 안 보러 갔으면 평생 후회할뻔했어'

'거봐, 엄마가 뭐라고 했어. 엄마말만 잘 들어도 자다가 떡이 생긴다고 했지'

'그러게. 아 그리고 아빠 정말 고마워. 친구들도 다 너무 감사하다고 전해달래'


딸의 마지막 감사하다는 말이 너무 예쁘게 들렸다. 아이의 진심임을 잘 알기에 안 갈까 봐 노심초사하며 아이의 성격을 속으로 탓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방학에는 라이온즈의 성지인 대구를 방문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는데 올해엔 딸과 꼭 그 계획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지 않고 알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읽어서 배우는 지식이라도 실제 써먹지 않고서는 그 이로움이 몸에 와닿기에는 무리다. 흔히들 '이렇게 해서 문제가 되면 어쩌지', '이건 아마도 이렇게 될 거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게 나을 수 있어' 같이 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유추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상엔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만큼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 차고 넘친다. 막상 해보려는 마음이 있다가도 가보지 않은 길임을 두려워하고, 어색해하며 해보려는 마음을 접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따른다면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낳지 않을까.


당장에 후회가 없는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그 선택에 대한 후회는 있기 마련이다. 도전해서, 실행해서 후회가 때로는 실패라는 무거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서 생긴 실패나 후회는 경험이란 가볍지 않은 자산을 남긴다.


경험이라는 자산이 쌓이면 내게 둘도 없는 재산이 되고, 실패가 아닌 성공이란 결론을 이끌 수 있는 확률을 높인다. 꼭 성공이 아니라도 내겐 둘도 없는 자산으로 그리고 그 의미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꼭 실행해봐야 한다. 길을 가봐야 그 길이 옳은 길인지, 그른 길인지 알 수 있다. 설사 잘못된 선택이라도 후회가 아닌 복귀와 반성만으로도 충분히 스스로 성장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전 09화 그날 밤 아내를 위협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