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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06. 2024

성적표를 버렸다는 딸에게 박수 칠 이유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게 도와주는 것도 부모몫이다

"딸! 중간고사 성적표 언제 보여줄 거야"

통신문을 통해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다는 공지를 확인했다. 곧 딸의 중간고사 성적표를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이틀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결국 우린 딸아이에게 성적표를 보여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요청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얘기하기 전에 딸이 먼저 우리에게 공개했어야 하지만 말하지 않고 있었던 괘씸죄로 마음은 더 상한 지 오래였다.


"기말고사 성적 나오면... 한꺼번에 보여줄게요. 성적표 버렸어요"

조금은 쭈뼛쭈뼛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당당함에 어이가 없었다. 딸의 그런 태도에 금방이라도 큰소리가 날 것 같은 대치 상황이 됐다. 심상치 않은 공기를 눈치챈 아내가 중재에 나섰다.

"알았어. 대신 기말 때 성적 얼마나 잘 나올지 기대할 테니 열심히 해야 할 거야"

"......."

딸은 아내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스마트폰만 만지작 거렸다.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잠시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더니 방문을 닫으며 자신의 보호구역으로 들어가 버렸다. 답답하긴 했지만 딸과 더 실랑이를 해봤자 둘 모두에게 득 보다 실이 클 것을 알기에 분쟁은 다시 조정에 들어갔다.


자식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고, 처음도 아니니 둘째는 조금은 수월해질 거라 생각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처음이 어렵지 경험이 쌓이면 능숙까지는 아니더라도 익숙해질 줄 알았다. 실제로 둘째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자식일은 달랐다. 그건 우리의 오산이었고, 오만이었다.


둘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성별은 그렇다 치더라도 성격이나 성향부터 자존감에 교우관계까지 오히려 둘이 비슷한 점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였다. 중학생 때는 체력이 약한 문제나 가끔 자존감 문제가 발목을 잡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그냥 예쁜 딸이었다. 크게 부딪치는 일 없고, 한 번씩 짜증 내더라도 그때뿐이었다. 그렇게 쭈욱 남은 중학교 생활, 새로운 고등학교 일상까지 쉽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이 그냥 나만의 바람임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자 딸의 행동은 중학교 때보다 수십 배는 더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일상에서 어떤 일이든 하고자 하는 의욕은 전무하다시피 됐고, 스마트폰은 손에서 거의 떨어트리지 않았다. 가족 간의 모임도 자주 기피했고, 알아서 공부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워졌다. 늘 반복돼 오던 잘못된 생활 습관은 고치질 않았고, 과정 없이 오히려 결과에 매달렸다. '어차피 열심히 해도 나오질 않을 성적인데 뭣하러 쓸데없는 시간을 투자하며 하느냐'와 같은 식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기말고사까지 끝마치고 기다리던 성적이 나왔다. 딸은 지은 죄(?)도 있고, 아내의 큰 소리도 어느 정도 먹혔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기대가 됐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가 걱정으로 바뀌는 데는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받아본 성적표였다. 고등학교 1학년때만 해도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중간고사보다 오히려 더 성적이 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지수!!! 도대체 넌 이런 성적을 받아올 거면서 중간고사 성적표를 안 보여 준거야? 시험공부를 한다고 하더니 제대로 하긴 한 거야'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하지만 막상 하려니 더 잘못될까 봐 할 수 없었다. 터져 나오는 속에 얘기를 마음속으로 눌렀다. 딸과의 대화를 위해서 가슴에는 천불이 올라왔지만 마음으로만 외친 아우성이 됐다. 결국 그날은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정으로 내 속만 끓인 하루로 끝이 났다. '앞으론 조금 바뀌겠지'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서 스스로의 위로와 변명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아내와 영화관을 찾았다. 함께 본 영화는 '인사이드 아웃 2'였다. 시리즈의 첫 번째인 '인사이드 아웃'을 관람한 게 2015년이니 9년 만이다. 지금이야 군대에 가있는 아들이지만 당시 중학교 진학을 앞둔 큰 아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좋은 기억의 애니메이션이었다. 이번에도 늦은 사춘기의 딸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속 주인공 '라일리'도 2편에서는 어느덧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딸과 나이차는 조금 있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주인공과 딸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해 보였다.


영화 속 새로운 캐릭터인 '불안이'가 의지와 상관없이 라일리를 휘젓는 장면에선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고,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그런 '불안이'를 '기쁨이'를 포함한 다른 감정 캐릭터들이 모두 안아주며 위로하는 장면에서 어느새 아내와 난 동화되어 있었다.


'우리 지수도 저런 마음이겠구나. 얼마나 불안하고, 잘하고 싶을까'  

그런 딸의 마음이 이해되어서인지 더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부터는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하고, 조금 더 딸을 이해하고자 마음을 고쳐 먹었다. 못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거라고. 그 누구보다 딸아이 스스로가 제일 답답하고, 힘들 거라고. 그렇게 마음을 먹었더니 지금까지 딸과 신경전을 벌였던 일, 스마트폰 보는 시간 줄이라고 잔소리한 일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온 저녁 딸과 마주 앉은 저녁 시간에 모든 게 이해된다는 시선으로 딸과 시선을 마주쳤다. 조금은 따뜻한 한마디, 조금 더 진득한 기다림으로 지켜봐 주기로 했기에 편안한 분위기에서 딸과 얘기하고 싶었다.


'지수야, 수학학원 꽤 오래 다녔는데 지금 선생님과 공부 방식이 잘 안 맞으면 다른 학원을 알아보면 어떨까. 선생님이 시험 기출문제도 따로 준비해주지 않고, 지금 같은 클래스에 있는 친구들하고도 레벨이 달라서 너 힘들잖아. 숙제도 안 봐주고, 너희 피드백도 특별히 고려해주시지 않으니...'

이미 학원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온 아내는 선생님의 수업방식이 아들이 다녔던 학원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딸이 하고자 하면 위험부담은 있어도 학원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언어의 부조합이었다.

'학원이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진 나도 잘 몰라요. 지금까진 수학 공부 제대로 안 했으니까. 이젠 공부해 보려고요'

'......'


어릴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의 손이 필요한 게 자식이다. 그렇게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자식들도 조금씩 커가면서 부모의 도움 없이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하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그런 순간들이 오면 부모는 조금은 서운할 수도, 상처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고, 선택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성장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런 아이의 부모라면 서운해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축하하고, 응원하고, 손뼉 칠 일이다. 그냥 내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구나, 우리가 우리 자식을 잘 키웠구나 하면 되는 일이다.


'난 결혼 안 하고 그냥 엄마, 아빠랑 살 거야'


끔찍한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부모라면 내 자식을 하나의 성인으로 자립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게 부모가 할 기본적인 도리다. 나이로는 성인임에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위기는 겪지 않아야 한다. 부모나 자식 모두에게 후회와 걱정만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식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은 일찍부터 중요하다. 성장해 가면서 부모에게 의존이 아닌 도움이나 조언을 받는 형태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공대가 취업이 잘되니 이과로 지원하는 게 좋아', 'A 학원보다는 B 학원이 너에겐 맞는 것 같아', '영어는 그냥 과외로 하자', 'A학교, B학교 이상 가야 하지 않겠어'


부모가 할 도리나 의무는 법이나 규칙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냥 막연히 부모니까 자식에게 힘닿는 데까지 해줘야 한다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지원해 줄 여유가 되기 때문에 다 큰 자식이라도 도와주고, 지원해 주는 부모들도 많다. 당연히 그건 도움 주는 부모의 선택이고, 결정이다. 다만 부모의 지원과 도움만을 받고 성장한 아이들이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옳은 판단과 결정을 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안타까운 부모마음은 이해되지만 모든 걸 선택하고, 결정해 줄 수 없다. 결국 아이들은 부모가 선택하고, 결정해 준 모습으로는 살 수 없다. 부모가 아닌 아이들 자신이 살아야 할 내일이기 때문에 최소한 아이의 선택과 결정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딸은 요즘 관리형 독서실을 다니며 작년 겨울보다 조금은 더 방학을 바쁘고, 열심히 보내고 있다. 2주가 지나는 동안 아주 조금은 위기가 왔지만 스스로가 잘 극복하며 아직까진 자신이 한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딸이 뭐라고 하든 이번 방학 관리형 독서실은 내가 기억하는 딸아이 스스로가 결심한 첫 번째 약속이다. 스스로가 선택한 첫 번째 결심이라 아내나 난 응원과 약간의 지원 말고는 참견도 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까지는 딸이 자신의 결심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2주도 남지 않았지만 이번 방학을 이겨내면 딸 스스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더 성장할 딸이 이젠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연습 중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마음에서는 아우성을 쳐본다. 이번엔 응원과 격려가 섞인 기쁨 소리말이다.


'지수야, 너의 오늘과 내일을 아빠는 늘 응원할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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