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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25. 2024

동갑인데 나이 먹고도 오빠 소리를 듣는 이유

이해하고, 감추고 싶은 허물은 덮어주는 게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엄마, 엄마는 왜 나이도 같은 아빠한테 오빠라고 그래? 빠가 이름도 아니고'

'크크, 그러게 말이다. 엄마도 도대체 나이도 같은데 왜 아직까지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네'


난 아내와 동갑내기다. 하지만 난 아내보다 먼저 학교에 입학했고, 당연히 먼저 졸업했다. 소위 얘기하는 빠른 OO년생이다.  연애할 때는 늘 불안했다. 아내가 내 실제 나이를 알까 봐. 사실 아내와 나는 같은 지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내는 여중, 여고, 난 남중, 남고를 다녔기 때문에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은 없다. 물론 학교를 다닐 때 알고 지냈던 사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숨긴 건 오며 가며 한 번쯤은 마주칠 수 있었던 작은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중·소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에겐 흔한 경험이다. 지역에 학교가 몇 개가 되지 않으니 한 다리 건너면 누가 되었건 이름 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닐 때도,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늘 숨기려고 애썼다. 그렇게 나일 꼭꼭 숨기다 보니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 친척들 정도만 알 뿐 주변 선, 후배나 학교 동창들조차 몰랐다.


처음 대학에 갔을 때도 주점 주민등록증 검사 자리는 일부러 피해 다녔을 정도로 예민하게 굴었다. 이런 지경이니 연애 당시 아내에게 숨기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처음 아내를 만나고  소개를 할 때도 서로 교제하기로 합의를 한 후에도 난 아내에게 나이를 속였다. 마음은 많이 불편했지만 첫 단추를 그렇게 꼈으니 다시 돌이키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오빠'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았던 시절이라 이실직고하고 '철수야' 소리를 듣는 건 상상만 해도 싫었다. 그렇게 연애하는 내내 아내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완벽하게 숨긴 채 2년을 넘게 만났다. 아니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야, 김철수~,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이래라 저래라냐. 형님한테. 크크'

'야 OO 자식, 미쳤냐. 술이 취했나 이 녀석 왠 헛소리래'

 

우연찮게 친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술이 조금 오른 친구 녀석이 내가 자신들보다 어리다는 얘기를 꺼내고 말았다. 내 사정을 잘 아는 다른 친구 녀석이 급하게 입을 막았지만 이미 쏟아진 물 아니 말이었다. 조금 올랐던 취기도 금세 깨버렸고, 아내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다행히 아내는 큰 동요가 없어 보였다. 친구 녀석이 악의 없이 장난 삼아한 얘기지만 그 순간은 녀석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한 대 쥐어박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잠깐이었지만 내 마음속 소요가 끝나고 어느덧 자리도 끝나갔다. 친구들을 뒤로하고 아내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만 빠져나와 차도, 사람도 많이 없는 늦은 밤 조용한 길을 걸으며 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이를 눈치챘을 텐데 그동안 속였던 날 괘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침묵이 오히려 더 상황을 악화시킬듯해 조심스레 먼저 입을 뗐다.


'저기 영희야. 사실은...'

'오빠, 무슨 말하려는지 아는데. 난 괜찮아. 이미 알고 있었어. 그게 뭐 대순가. 따지고 보면 나보다 7개월은 먼저 태어났으니 오빠는 오빠지 뭐'


아내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걱정했던 마음은 따뜻한 햇살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2년을 마음 졸였던 내가 너무 옹졸하게 생각됐고, 나보다 작은 아내가 그날따라 커 보였다.

사실 아내는 연애초부터 내 실제 나이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먼저 얘길 안 하니 아마도 밝히고 싶지 않은가 보다 싶어 먼저 얘길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러 내가 신분증을 숨기고, 나이 관련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면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려고도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 지나면 얘길 꺼내겠지 하고 기다린 게 그날까지 왔단다. 그날 이후 서로 동갑임을 인정하고 난 후에도 아내는 지금까지 호칭을 바꾸지 않았다.


'야, 김철수~!!!'


가끔은 이름으로 호명할 때도 있지만 내가 아내에게 이렇게 불릴만한 원인 제공을 했거나, 아내 나름의 애교일 때라 전혀 불편함이 없다. 그래도 아내에게는 '오빠'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좋다. 익숙해져서인지 아니면 아내에겐 영원한 오빠이고 싶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지수야, 아빠는 엄마가 오빠라고 불러주면 좋아해. 아빠 좋아하는 호칭으로 불러주는 게 뭐 어렵다고'


처음 시작한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해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듯이 문제가 될만한 일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사소한 허물쯤은 덮어 줄 수 있는 것도 배려다. 상대방을 위해 감사함을 말하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마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추고 싶은 허물이나 과실은 덮어주는 것이다. 시간 지나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었다고 해도 내게 피해가 있거나 사회적으로 물의가 있는 문제가 아니면 모른 체 시치미 떼며 넘어가는 센스가 필요할 때도 있다.




'영희 씨, 오늘 모임은 어디인가요?', '영희 씨, 식사는 했어요', '영희 씨 어디 아파요?'


몇 년 전부터 난 아내에게 존칭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 문자, 카톡으로 먼저 시작한 일이 얼마 전부터는 전화 통화 때에도 존댓말을 쓰는 게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엔 말다툼을 하고 난 다음에는 카톡, 문자로 화해를 청하거나, 더 이상의 말다툼을 막고자 시작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존댓말을 쓰니 서로 상대에게 상처되는 말은 일절 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상대를 존중해 주게 되었다.


그렇게 텍스트로 하던 존대가 이젠 전화에서도 가끔은 대화 중에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말하는 나도, 듣는 아내도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더 나이가 들면 일상에서도 존대를 해볼까 생각이 드는 이유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면서 깨우치는 내 아내에 대한 사랑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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