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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이어질 운명

시작(始作)

by 추억바라기

준우는 학생이다. 그것도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아니, 어쩌면 '평범하다'라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다. 오히려 지나치게 눈에 띄지 않는 쪽에 가깝다. 늘 교실 뒤쪽 창가 자리에 앉아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화장실과 점심때뿐일 정도였다. 가까운 친구라고 해봤자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던 몇 명이 고작이다.

중하위권의 성적에, 운동에도 무관심이다. 체력도 뛰어나지 못했고, 동아리 활동도 전혀 하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이다. 외모마저도 무리 속에 섞이면 금세 사라질 만큼 밋밋했다. 그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스스로도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수업 중 선생님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준우는 늘 눈을 피하기 일쑤였다. 정답을 알고 있더라도 먼저 손을 들고 답하는 경우는 없었다. ‘괜히 틀리면 웃음거리가 될 거야.’ 마음속으로는 답을 말했지만 그 답이 입 밖을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체육 시간에도 눈에 띄는 게 싫어 늘 뒤로 빠져 있었고, 그러다 보니 열심히 뭔가를 한 적이 없었다. 달리기를 해도 뒤에서 등수를 세어야 했고, 함께 하는 축구나 농구는 항상 벤치 신세였다.

"야, 박준우! 오늘 학교 끝나고 PC방 가자. 지난주에 출시한 슈팅게임 너무 재밌다던데."

친구 형식이가 양손을 모아 애원하듯 말했다. “난 집에 일이 있어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준우가 말했다. 친구와의 대화는 늘 이렇게 짧게 끝났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서툴고, 어색해서 관심을 받는 것조차 싫어했다. 늘 혼자 있는 걸 마음 편해했다.

하지만 그에겐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생긴 초자연적인 힘. 준우는 어떤 극한의 상황에 사로잡히는 것과 같이 특수한 조건이 되면 믿기 어려운 신체 능력을 발휘하곤 했다. 불과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지만 번개처럼 질주하거나, 성인 남성 세 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움직일 철골 구조물을 혼자서 걷어차 날려버리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 힘은 정작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능력 자체가 통제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평소엔 아무런 기척도 없다가, 위험한 존재가 자신이나 친구, 가족 등을 위협할 때 갑작스레 발현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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