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침묵 속의 시선

무녀의 딸

by 추억바라기

미란의 몸에서는 늘 매캐한 향냄새가 났다. 섬유유연제 향기로 덮으려 애써봐도, 뼛속 깊이 스며든 짙은 향내음과 비릿한 촛농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쟤 옆에 가면 머리 아프지 않냐?"

아이들은 대놓고 괴롭히진 않았지만, 미란이 지나갈 때마다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텄다. 어머니가 작두 위에서 춤을 출 때 울리던 징 소리가,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수군거림으로 바뀌어 미란의 귓가를 맴돌았다. 미란은 태어날 때부터 경계선 밖의 아이였다.

미란이 세 살 무렵부터 집안 곳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란이 감기에 걸려 고열로 앓을 때면 자주 전등이 점멸됐고, 텔레비전이 켜졌다 꺼졌다 하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부엌에서 멀쩡하던 그릇이 깨진 것도 수차례였다. 처음엔 단순한 오작동이라 여겼지만, 점점 빈도는 늘었고 현상은 더 기묘해졌다. 어린 미란의 울음소리에 주변 공기의 온도가 변하거나, 낯선 그림자가 벽을 따라 물처럼 흘러가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리 놀라지는 않았지만 서운함과 안타까운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조상님도 너무하셨지. 내 대에서 끊어달라는 기도를 이렇게 답을 주실게 뭐야. 미란아, 엄마가 미안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미란의 삶은 평범함에서 더 멀어졌다. 무녀의 딸이라는 낙인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친구들은 그녀를 ‘귀신의 아이’라 부르며 멀리했다. 게다가,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수상한 일들이 모두 미란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은 어린 소녀를 더 고립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를 괴롭히던 아이가 다음 날 갑작스러운 고열에 시달리거나, 험담을 한 아이는 집에서 넘어져 팔을 다치는 일도 있었다. 몇 번은 우연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아이들 사이에는 '미란의 저주'라는 말이 퍼졌다. 어떤 이들은 그녀의 눈빛만으로 기분이 나쁘다고 자릴 피했고, 어떤 이들은 그녀가 귀신과 말을 한다며 겁을 내곤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미란은 침묵으로 자신을 지키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녀는 말수를 더 줄였고, 시선은 항상 땅을 향했다. 친구와 어울리는 일도, 단체 활동도 가급적 피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조용했던 미란 주변은 한 번의 사건으로 또 과거의 아픔을 반복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운동장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아, 진짜 재수 없게!"

체육 시간, 피구를 하던 한 남학생이 미란과 부딪히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바닥에 넘어진 미란의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운동장이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남학생은 미란의 눈을 피하며 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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