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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어둠 속의 그림자

슬픈 이별

by 추억바라기

“저건… 더 이상 시연이 아니야.”

어느샌가 나타난 미란이 준우 옆에 나란히 서있었다. 미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 손끝에 쥔 부적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그녀의 말이 허공에 메아리쳤다.

시연 안에 깃든 존재 그것은 단순한 망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감정을 먹으며 자라온 ‘이형의 기생체'였다. 굳이 정의하자면 악귀. 하지만 악귀라는 말조차 그 실체를 모두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그것은 시연이 해외에 있던 어린 시절 아니 그 이전 언니를 병으로 잃었던 그날부터 기생하기 시작했다.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든 상실감과 외로움, 분노와 절망을 빨아들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시연의 내면을 잠식해 갔다. 부모의 죽음 이후, 그것은 마침내 시연의 자아를 완전히 삼켜버릴 만큼 강해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은 시연의 얼굴로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미란의 등장으로 거리를 두며 조금씩 물러나던 시연이 어둠 속 한 건물로 사라졌다. 시연이 사라진 건물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오래된 폐병원이었다.

시연을 쫓아 준우와 미란은 폐허가 된 병원으로 들어섰다. 붉게 녹슨 철문은 삐걱거리며 열렸고, 오래된 병동 복도에는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다. 부서진 벽 틈 사이로 간신히 달빛이 스며들었지만 주변과 피하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주변은 어두웠다. 가끔씩 지나가는 어둠 속 그림자들이 그것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다. 사방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가 오히려 더 불안했다. 병실로 보이는 방 안쪽에는 바람도 없는데 커튼이 흐느적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 시연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예전의 따뜻한 미소 대신,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눈동자는 마치 검은 안개에 잠긴 듯 텅 비어 있었고, 입술 끝은 너무도 부자연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꼭두각시처럼 삐걱이며 걸어오던 그녀는 입을 움찔거리며 움직이더니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무겁고, 음산한 저음으로 말했다.

“미란아… 너도 보고 싶었어. 항상 생각했어. 널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그 말이 끝나자마자, 시연의 등 뒤에서 검은 팔들이 뻗어 나왔다. 그것은 팔처럼 보였지만,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길고 뒤틀린 형체, 뾰족한 손끝, 마치 다른 차원에서 기어 나온 것처럼 공간 자체를 일그러뜨리며 주변 공기를 비틀었다. 그것은 울부짖음도 아닌 숨소리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가 반복되는 낮은 웅성거림 같았다. 하지만 귓가를 때리는 울림은 작지 않았다. 수십 명의 목소리가 겹쳐져 공포의 노래로 공간을 메웠다.

“뒤로 물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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