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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경계의 문, 그 너머

새로운 인연

by 추억바라기

시연을 잃은 그날 이후 준우의 일상은 한 동안 무기력했다. 마치 흑백사진처럼 일상의 어느 곳에서도 밝고, 좋은 색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활력이 없었다. 그냥 기쁠 일 없는 하루하루의 연속일 뿐이었다. 애써 웃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눈을 감을 때마다 생생하게 떠올랐다. 악귀로 변해버린 친구를 자신의 손으로 보내야 했던 그날 밤은 준우에게 깊고 시린 흉터를 남겼다. 그 상처는 육체가 아닌 마음 곳곳에 퍼져나갔다.

미란 역시 말은 안 했지만 슬픔의 깊이와 무게는 준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함께 훈련을 하며 시간은 보냈지만 둘 사이엔 무거운 분위기 속 침묵만이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우연이 준우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늦은 밤, 도서관에서 자습을 마친 준우는 우산도 없이 학교 뒷골목을 걷다가 들어선 낡은 골목에서 이상한 간판 하나와 마주했다.

'당신의 미래를 알려 드립니다.' - 주 선생 -

형광 안료로 적힌 글씨 아래로 빨간 네온사인이 깜빡거렸다. 마치 '들어오지 않으면 후회할 텐데' 하고 속삭이는 듯한 그 빛에, 준우는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닫힌 문을 밀어서 열었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자, 코를 찌르는 향 냄새가 온몸을 덮쳤다. 천장의 형광등은 생명이 다한 듯 깜빡이고 있었고, 방 안은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타로 카드, 먼지 낀 수정구, 때가 묻은 두루마리, 그리고 부서진 마네킹 한 구.

“어서 와, 학생. 타로 점 보러 왔어? 아니면 다른 볼일이라도 있는 건가?”

눈에 들어온 사람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들린 허스키한 목소리에 준우는 깜짝 놀랐다. 목소리의 주인은 한쪽 구석 소파에 누워 있다시피 앉아있는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푸석푸석한 곱슬머리에 누런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로브는 마치 오래된 마법사의 잔재 같았다. 로브 가슴 중앙엔 먹다 흘린 음식물 자국인지, 찌든 때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얼룩까지 묻어 있었다.

“그냥… 비 피하려고요. 근데 타로 보세요?”

“응, 그런 셈이지.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사기꾼은 아닌데 한 번 봐줄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러자 손끝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더니, 물고 있던 담배에 자연스럽게 불이 붙었다. 주변엔 성냥도 라이터도 없었다. 놀라움에 준우는 입이 벌어졌고,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준우의 표정 변화에 중년 남자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놀랐니? 뭐,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너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녀석들에게만 보여주는 거야.”

“특별한 능력… 이요?”

남자는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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