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경계의 문, 그 너머

새로운 인연

by 추억바라기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준우는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걷고 있었다. 차가운 빗물이 교복을 적시고 뼛속까지 스며들었지만 그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며칠 전, 제 손으로 베어낸 친구의 마지막 온기가 아직 손바닥에 낙인처럼 남아 있었다. 눈을 감으면 시연의 미소가, 눈을 뜨면 그녀가 악귀로 변해 비명을 지르던 형상이 겹쳐 보였다. 세상은 온통 회색빛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준우는 그 소음 속에 고립된 섬이었다. 그 상처는 육체가 아닌 마음 곳곳에 퍼져나갔다.

미란 역시 말은 안 했지만 슬픔의 깊이와 무게는 준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함께 훈련을 하며 시간은 보냈지만 둘 사이엔 무거운 분위기 속 침묵만이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우연이 준우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늦은 밤, 도서관에서 자습을 마친 준우는 우산도 없이 학교 뒷골목을 걷다가 들어선 낡은 골목에서 이상한 간판 하나와 마주했다.

'당신의 미래를 알려 드립니다.' - 주 선생 -

형광 안료로 적힌 글씨 아래로 빨간 네온사인이 깜빡거렸다. 마치 '들어오지 않으면 후회할 텐데' 하고 속삭이는 듯한 그 빛에, 준우는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닫힌 문을 밀어서 열었다.

딸랑-

낡은 풍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습한 곰팡이 냄새와 싸구려 향 냄새가 코 속으로 ‘훅-’ 밀려 들어왔다. 가게 안은 온갖 잡동사니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비 피하러 왔으면 5천 원, 점 보러 왔으면 5만 원."

구석진 소파에서 웬 중년 남자가 튀어나왔다. 떡진 곱슬머리에 김치 국물이 묻은 누런 로브. 그는 준우를 쳐다보지도 않고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탁.

라이터도 없이 그의 검지 끝에서 푸른 불꽃이 일었다. 남자는 그 불로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제야 게슴츠레한 눈으로 준우를 올려다봤다. 놀라움에 준우는 입이 벌어졌고,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준우의 표정 변화에 중년 남자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놀랐니? 뭐,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너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녀석들에게만 보여주는 거야.”

“특별한 능력… 이요?”

남자는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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