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속 실체
새 학기가 시작된 3월의 어느 날. 봄기운이 완연했지만, 마을 남쪽 끝자락에 사는 초등학생 은우에게는 유독 그날의 해가 짧게 느껴졌다.
"은우야, 이제 집에 가야지! 엄마가 늦지 말라고 했잖아."
"조금만 더. 딱 5분만 더 타고."
친구들이 하나둘 학원 가방을 메고 사라진 뒤에도, 은우는 고집스레 그네 줄을 잡고 있었다. 텅 빈 놀이터에는 삐걱거리는 그네 소리만이 맴돌았다. 가로등이 깜빡이며 주황색 불빛을 토해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음- 음음- 음~
바람결을 타고 기이한 멜로디가 귓가를 스쳤다. 그것은 누군가의 콧노래 같기도 했고,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들리는 백색 소음 같기도 했다. 분명 익숙한 동요 리듬이었지만, 오래된 테이프가 늘어진 것처럼 느릿하고 끈적한 목소리였다. 마치 폐에 물이 가득 찬 사람이 억지로 내뱉는 숨소리처럼, 그르럭거리는 습한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누구...세요?"
은우가 그네에서 내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미끄럼틀 아래, 시소 뒤, 벤치 밑.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적막 속에서 노래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이리 와… 함께 놀자…
소리는 놀이터 옆, 웃자란 잡풀이 무성한 오솔길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겁 많은 은우가 절대 쳐다보지도 않았을 곳이었다. 어른들이 '귀신 나오는 길'이라며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폐교로 이어지는 길. 하지만 그날 은우의 눈동자는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아이는 무엇에 홀린 듯 비틀거리며 풀숲을 헤치고 들어갔다.
발치에 무언가가 채였다. 흙투성이가 된 낡은 토끼 인형이었다. 한쪽 눈알이 빠져 솜이 삐져나온 인형을 은우는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품에 꼭 안았다. 인형의 남은 한쪽 눈동자가 희미한 붉은빛으로 번뜩였다.
"그래... 같이 가자..."
은우의 목소리는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쇳소리가 섞인 탁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고, 작은 등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삼켜졌다.
그날 밤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은우야! 김은우!!"
은우 엄마의 비명이 골목을 메웠다. 놀이터부터 아이가 갈 만한 곳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발견된 건 놀이터 그네 밑에 떨어져 있던 은우의 한쪽 신발뿐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처음엔 단순 가출 사건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될수록 형사들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갔다.
"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뭔데 그래?"
"CCTV입니다. 놀이터 입구 쪽인데... 여기 보십시오."
화면 속 은우는 허공을 향해 무언가 대화를 나누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오솔길로 걸어 들어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은우가 사라지고 난 뒤, 화면 전체에 심한 노이즈가 발생하더니 검은 형체 같은 것이 화면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기계 오류라고 하기엔 너무나 선명한 그림자였다.
"폐교 쪽은 다 뒤져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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