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오
폐교 사건 이후, 도시의 공기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변화였다. 하지만 준우와 미란과 같이 영적인 기운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피부에 달라붙는 불쾌한 습도처럼 그 변화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해 질 녘 골목길의 그림자가 유난히 짙고 끈적하게 느껴지거나, 거울을 볼 때 내 모습이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듯한 기이한 감각. 우리가 사는 곳은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병들어가고 있었다.
“놈들이 냄새를 맡았군.”
주 선생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가게 안은 잡동사니로 어질러져 기분까지 산만했지만, 공기만큼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경계단…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제게 하현이라는 남자가 찾아왔었어요.”
준우의 말에 주 선생이 피식 웃었다.
“하현이라. 그 깐깐한 친구가 직접 행차하셨다니, 네가 사고를 치긴 크게 쳤나 보구나. 경계단 놈들은 이쪽 바닥의 청소부 같은 놈들이야. 균형을 맞춘다는 명분으로 싹을 자르기도 하고, 때로는 거름을 주기도 하지. 아군이라고 믿지도 말고, 그렇다고 대놓고 적대하지도 마라. 피곤한 놈들이니까.”
“그 남자가 그랬어요. 제가 가진 결기가 오히려 틈을 벌리고 있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
주 선생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결기(決氣)는 열쇠야. 잠긴 문을 걸어 잠그는 자물쇠도 되지만, 반대로 닫힌 문을 억지로 비틀어 여는 힘이 될 수도 있어. 네가 폐교에서 공간을 찢어 아이들을 구했을 때, 그 충격으로 도시 곳곳에 틈이 생겼을 거다. 부실한 댐에 작은 구멍이 뚫리면 어떻게 되겠냐?”
“……무너지겠죠.”
“그래. 이제 그 구멍으로 온갖 잡귀들이 기어 나올 거야. 네가 싼 똥이니, 네가 치워야지 별수 있겠냐?”
주 선생은 짓궂게 웃으며 낡은 고서 한 권을 던져주었다.
“이계(異界)는 우리 세계의 어둠이자 그림자야. 인간이 감당 못 해서 뱉어낸 마음의 오물들이 쌓인 거대한 하수구와 같지. 증오, 공포, 살의 같은 독기들이 썩어서 뭉친 곳이야. 거기서 태어난 놈들에겐 육체가 없어. 그래서 미친 듯이 찾아 헤매는 거다. 자기들이 기생해서 껍데기로 삼을 만한 상처받고, 마음이 병든 ‘숙주’를.”
며칠 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미란에게서 다급한 연락이 온 것은 늦은 오후, 학원가 근처의 번화가에서였다.
“준우야! 여기야, 빨리!”
준우가 도착했을 때, 미란은 낡은 상가 건물의 뒷골목을 막아서고 있었다. 평소라면 담배 피우는 학생들로 북적였을 골목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아니, 고요하다 못해 마치 깊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고막이 먹먹해지는 질식할 듯한 침묵이었다.
“느껴져? 저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미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 담벼락 위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여름의 지열과는 달랐다. 공간 자체가 일그러져 뒤틀리고 있었다.
“지독한 냄새가 여기까지 나. 폐교 때보다 훨씬 더… 짙어.”
미란이 코를 틀어막았다. 준우 역시 속이 메스꺼웠다. 썩은 달걀 냄새와 비릿한 쇠 냄새가 뒤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다.
준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조용히 마음속에서 힘을 끌어 모았다. 눈동자에 푸른빛이 돌자 골목의 풍경이 뒤틀려 보이기 시작했다. 회색빛 담벼락 한가운데 마치 칼로 그어놓은 듯한 검은 균열이 크게 벌어져 있었다.
치이익… 치익…
균열 너머에서 누군가 젖은 천을 찢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틈새로 끈적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액체는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온다.”
준우가 결기의 검을 형상화하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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