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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이계(異界)의 틈

각오

by 추억바라기

이상한 일이었다. 폐교 사건 이후 도시는 본래의 색을 잃어갔고, 기운을 잃은 것처럼 침묵에 잠겼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전조였다. 마치 큰 소란을 일으키려고 긴 숨을 고르는 것처럼 세상은 불길한 고요 속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 ‘틈’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열렸다.

그 시작은 오히려 익숙한 곳에서 일어났다. 한 낮 도심 한복판, 인적이 드문 오래된 골목길의 골목 한쪽 벽면에 거울처럼 번들거리고, 반짝이는 검은 균열이 벽지가 찢기듯 열렸다.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기운은 얼음장같이 차고, 너무도 낯설고 그리고 이질적인 것이었다. 하늘의 구름이 뒤틀렸고, 갑자기 나타난 까마귀 떼가 방향을 잃은 듯 좌우를 오가며 날았다. 차가운 기운이 바닥에서부터 피어올랐고, 우연히 길을 지나다 그 광경을 목격한 행인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그날 침묵 속에 조용히 틈이 열렸고, 그 틈을 통해 존재하지 말아야 할 힘이 태동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도 세상의 경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모를 것 같았지만 그 균열을 이미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이계(異界)는 우리 세계의 또 다른 그림자야.”

주 선생은 낡은 문서들을 펼치며 말했다. 그곳에는 정체불명의 그림과 고서에서 베껴 쓴 듯한 고대 문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서로 다른 두 세계로 존재해. 하나는 우리가 사는 현실계, 또 하나는 제대로 알지 못해 두려움만 갖고 있는 이계가 그것이지. 이계는 감정과 기억, 죽음과 공포가 덩어리 져 생겨난 곳이야. 본래라면 두 세계는 접점이 없어야 하지만... 경계가 약해질 때 틈이 생겨나.”

준우는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이 본 폐교의 공간 왜곡과 어둠의 감옥을 떠올렸다.

“선생님, 그럼 지금 틈이 생긴 이유는 뭔가요?”

주 선생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명한 건 각성한 네 결기도 그 이유 중 하나인 거 같아.”

그 말을 들은 미란이 눈을 크게 떴다.

“결기는 이계와 통하는 힘이야. 넌 이제 그 문을 볼 수 있게 된 거야. 그건 너만의 힘이면서 동시에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어. 그리고 그 열쇠를... 찾는 자들이 있어. 이미 널 찾아왔었지. 앞으로도 찾아올 사람이 있을 거야.”

하현의 얼굴이 스쳤다. 그리고 그의 손목에 새겨진 문양과 부적 창고에 남겨진 은빛 흔적. 경계단의 존재 이유가 단순히 이계와 현실계의 경계 유지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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