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 존재의 실체
안개가 마을 어귀 전체를 뒤덮었고, 어둡고 무거운 숨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하늘에 떠있던 달이 붉게 물들며 갈목마을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해안 절벽아래 조밀하게 붙어있는 가옥들의 낡은 지붕들이 그 빛 속에서 음산하게 뒤틀려 보였다. 수평선 위, 검은 형체는 파도 위를 걷는 듯 흔들림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람 한 점, 파도의 흔적조차 없는 바다에서 그 발걸음 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준우를 포함한 다섯 모두는 어느샌가 골목길을 벗어나 해변이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다들 준비해.” 강림이 낮게 중얼거리며 홀스터에서 총을 꺼내 잠금장치를 풀었다.
“아직 멀리 있는 것 같은데... 응?” 해담이 말끝을 흐렸다. 검은 형체가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해안, 하늘, 골목 어귀를 둘러봤지만 사라진 검은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휴 -!!!"
준우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뱉었다. 걱정은 됐지만 검은형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길지 않았다. 그들이 밟고 있던 모래사장 곳곳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땅 아래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아요!” 미란이 소리쳤다. 균열이 생긴 틈에서 검은 실들이 수백 가닥 뱀처럼 솟구쳐 올랐다. 실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서로 엉키더니, 사람 키보다 몇 곱절은 큰 형체로 응축되었다. 그 형체 속에서 얼굴이 하나둘 삐져나왔다. 물에 불어 터진 얼굴과 비틀린 표정 그리고 눈동자는 모두 시커멓게 변해 무언가에 잠식된 듯 보였다.
“현경의 실들이 실체화된 겁니다! 파사진언!!!” 유진이 그 형체를 향해 염주를 던지며 외쳤다.
뒤이어 해담이 퇴마검을 휘둘렀다. 은빛 날이 달빛을 받아 번쩍이며 검은 형체의 실 뭉텅이를 베어냈다. ‘꺄악’ 하는 기분 나쁜 비명 같은 소리와 함께 잘린 조각이 모래 위에 떨어졌다. 하지만, 금세 엉겨 붙어 다시 처음의 형체를 이뤘다.
“재생이 너무 빨라요!” 해담이 이를 악물었다.
강림이 옆에서 연속 사격을 가했다. 특수 탄환을 맞을 때마다 검은 덩어리에 구멍이 생기며 물체가 뒤로 밀려났지만, 탄환이 녹아 사라지듯 효과가 오래가지 않았다.
“이건 그냥 물리적인 공격으로는 처리할 수 없어요!” 해담이 외쳤다.
그때, 바다 쪽에서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물기둥 속에서 아까 사라졌던 ‘검은 형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서 보니 그건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람처럼 보인 얼굴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그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피부 전체가 잉크처럼 새카만 검은 액체를 두른 듯 보였고, 물고기 비늘 같은 것이 목과 어깨를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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