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달리기!

-세상과의 싸움에 지친 [The boxer]의 달리기-

by 이안

작년 12월에 서울 평창동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세 가지가 늘었다. 술. 잠. 몸무게.


술은 매일 맥주 5백 ml와, 소주 3잔을 마신다. 그리고 주말에 한 번 '연태' 따위의 중국 고량주 같은 독주나, 와인 한 병을 비운다. 술을 마시다 보니, 취해서 나도 모르게 꼬꾸라지듯 잠에 빠져드는데 보통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잔다. 보통 새벽 2시~3시에 잠이 들어서, 낮 12시쯤 일어난다. 하지만 잠과 관련해서 일정한 규칙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술을 마시다가 졸리면 잔다. 그러다 보니 새벽 5시 혹은, 오전 8시가 넘어서 잠이 드는 경우도 일주일에 2번 이상은 된다.


몸무게.

이건 거의 기적적인데, 나의 50년 평생에 몸무게 앞자리 수가 6인 적이 없었다.(군 훈련소 시절에 1주일 동안 61킬로그램이었던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그런데 2020년 12월부터 몸무게가 60킬로그램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작년 봄부터 제주도에 내려가서 혼자 살 때는, 고독과 번민 그리고 불안과 싸우느라 밥을 먹어도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늘 소식을 했는데, 체중은 당연히 늘지 않았다.


서울로 다시 돌아오고 나서, 외로움이 미치도록 사무칠 때는 80년대라는 험난한 세월을 함께 통과했던 대학 동기들에게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서 술 한잔 하자고 '생떼'를 부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면 별 재미도 없고, 유치하고, 시시껄렁하며 때로는 한심하기까지 한 농담들에도 크게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웃고 나면 필자를 짓눌러 왔던, '걱정 따위가 뭐 별거냐?', '마음의 병쯤은 별 의미도 없다'라고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하 세월아~ 내 월아~' 하며 체중이 늘었다.


<예쁜 새야~ 새야~, 너는 살이 찐 거니? 아님 배를 크게 부풀린 거니? >


내 키에 몸무게 60이 넘지 않으면 저체중이라고 했는데, 턱걸이로 저체중을 벗어 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날이 많다 보니 신체가 균형이 잡힌 것은 아니고, 몸에 근육이 붙어 있지도 않다. 방송국에서 25년 동안 생활을 할 때는, 매일 생방송을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늘 말라깽이로 살았지만 그래도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었다.


달리기.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던 생방송 스트레스도 달리기를 하는 동안은 잊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서울의 여의도 공원을 자주 돌았었다. 어느 해엔,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5킬로를 달렸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10킬로를 더 뛰었다. 2.5km인 여의도 공원을 4바퀴 돌았던 건데, 초침 시계로 재보면, 첫 번째 바퀴 2.5.km와, 마지막 4번째 바퀴 2.5km의 속도가 같았다. 그만큼 일정한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지금은?

물론 어림도 없다. 아마 1km도 달리지 못하고 벌러덩 누워버릴 거다. 500미터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면 다행일 거다. 달리기를 많이 하던 시절엔, 처음 1km를 넘어서고 가쁘게 뛰던 심장과 점점 무거워지는 다리에 고통이 가해지던 순간을 극복하는 게 즐거웠다. 그 순간을 넘기고 1~2 km 미터 정도를 더 달리면, 달리기의 숨 가쁨과 팔다리에 가해지던 고통쯤은 잊혔고, 물속을 편하게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시간과 공간을 일정한 속도로 무감각하게 달릴 수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꼭 달리기를 했다. 휴일에 집에 있다가도 머리가 아프면 그냥 밖으로 나가서 달리기를 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엔, 밤을 온종일 새워가면서 농구 코트를 지키던 여의도 공원의 농구 마니아들이 보였다. 내가 공원의 바깥 가장자리를 도는 것처럼 그들은 농구 코트 위의 두 골대 사이를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공을 그물 안으로 던져 넣고 있었다.


<필자의 나이 이제 쉰셋. 아직도 만화 속 주인공 '하니'처럼 모든 것을 던지듯 달릴 수 있을까? >


오늘 서울에 올라와서 거의 두 달 만에 산책을 했다.

몇 주전에 새로 얻은 직장에서도 실직을 하자, 운동은 커녕 집 밖으로 나가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는데, 마침 세검정 우체국에 편지를 부치러 갈 일이 있어서 홍제천을 따라서 걸었다. 걷다 보니, 평창동이 북한산성의 군량창고 이름이었던 '평창'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지금 평창 파출소가 있는 자리가 <고종 18년>에 신식 군대 육성을 위한 별기군의 훈련소가 있던 자리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 동네 홍제천을 따라서 외로운 검은 표범처럼 혼자 살아가는 검은 고양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내 두 다리로 잠시 시간을 내어 걸은 것뿐인데 세상은 '새로운 앎'으로 가득 차 있었고, 게다가 생각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란 것도 느끼게 됐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동네, '평창동' 이름의 유래>


오늘 오후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다시 한번 꼬꾸라지 듯 깊은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뜨니 7시 30분이었다. 당연히 아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날짜를 다시 들여다보니 밤이었다. 고등학생 때라면 공부할 시간이 12시간이나 더 생겼다면서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아! 서울에서 내가 너무 시간을 허비하면서 살고 있었구나!


회사생활을 접고 제주도와 순천에서 살았던 1년 동안은, 방송국에서 25년 동안 일했던 버릇이 남아 있어서 시간을 허투루 써버리면 죄책감이 들었다. 방송국에서는 매일매일의 생방송과, 시간과 분을 다투면서 일했던 날들이 많았으니까 시간이 금쪽 같이 여겨졌다. 하지만 어느덧 그런 죄책감도 무뎌져가고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을 MBC PD로 지내면서, 버티기 어려웠던 시간들을 살아내느라 생긴 머릿속 바이러스 때문에, 정신건강 의학과 약을 8년째 먹고 있고, 약의 부작용으로 잠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나를 치료했던 전문의들은 잠이 늘어나는 부작용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부작용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너무 나태하게 살아오기도 했다.


피터팬 PD의 음악 칼럼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오늘 듣고 싶은 노래는, 달리면서 듣고 싶은 노래이다. 필자는 일정한 속도를 내면서 달릴 때는 항상 사이먼 앤 가펑클의 [THE BOXER]라는 노래를 떠올린다. 노래의 리듬과 멜로디가 마치 외로운 복서의 달리기를 연상시키도 하지만, 표범 같은 삶을 살아온 남자가 세상과의 싸움에서 상처를 입고 지쳐 있을 때 조용히 다가와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In the clearing stands a boxer

and a fighter by his trade

And he carries the reminders of

every glove that laid him down or

cut him till he cried out

in his anger and his shame

I am leaving, I am leaving

But the fighter still remains

um m m~~


공터에 한 권투선수가 서 있어요

직업적으로 싸우는 사람이죠

그는 모든 권투 장갑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어요.

분노와 수치심 속에서

그만 떠나겠어! 그만두겠어! 라고 외칠 때까지

그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를 쓰러뜨렸던 글러브죠.

하지만 그 선수는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네요.

-Simon & Garfunkel [The Boxer] 가사 중에서 -


외로운 남자의 고독한 절규 같은 노래 [THE BOXER]가 더욱 마음에 와 닿는 2월의 겨울이다. 그리고 곧 설이다. 이어서 입춘이 올 것이다.


이제는 게으름뱅이의 곤한 잠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

아직 달리기는 좀 무리고, 대신 규칙적으로 걷기를 해야겠다.

오늘 2킬로를 걸었으니, 앞으로 한 달 안에 하루에 4킬로는 걸을 수 있겠지?


<필자가 사는 동네 종로구 홍제천에는 외로움 표범을 닮은 검은 고양이가 살고 있다.

고양이야~ 고양이야~우리 내일부터는 함께 걸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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