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건에는 제각각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
대한민국 최대의 중고물품거래 앱 [당근 마켓]에서 대량의 물건을 매집하기 시작한 지 두 달 여가 되어 간다. 2020년, 작년 1년 동안 제주도와 순천에서 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월세집에서 살다 보니, 세간살이가 필요했는데, 모든 걸 새 물건으로 구입하기에는 비용이 벅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에어컨, 탁자, 의자, 테이블, 전자레인지 등을 사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당근 마켓]에 한번 빠지고 나니까, 접시와 그릇도 사고 싶었고, 화분도 사고 싶었고, 도자기에, 그림, 카메라, 시계, 가방 등등 세상 모든 중고 물건이 다 사고 싶어 졌다.
평창동에서 월세 60만 원에 가난한 홀아비로 살아가면서 원래 생활비가 150만 원(식비+공공요금+기름값 = 90만 원 그리고, + 월세 60만 원) 정도로 예측했는데, 여기에 추가로 [당근 마켓]에서만 중고 물품 구입비로 월 300만 원이 넘어가고 있다. 덕분에 가난한 홀아비의 월 생활비가 450만 원을 넘어서 500만 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브런치 북 [피터팬 PD 혼자 사는 제주]를 보신 분은 알겠지만, 제주도에서는 월 160만 원 정도로 한 달을 살았는데...)
올 1월 초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의 제작총괄 이사로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어찌 [당근 마켓]에서의 과소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삼프로 TV]의 제작 이사직에서 사퇴를 하고 난 지금은, 더 이상 당근에서 중고 물품 거래를 할 수 없는 처지인데도, 오히려 계속 지출을 늘려가고 있다. 이러다가 중고 물품을 집안 가득 쌓아 놓고는 있지만, 신용상태는 머지않아 파산 선고를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당근 거래를 멈출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물건들이 내게 속삭이는 소리 때문이다. 중고 물품을 사는데 무슨 판타지냐고?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세상 모든 물건에는 그 물건만이 갖고 있는 영혼이 있다는 걸, 필자는 [당근 마켓] 거래를 통해서 알아가고 있다. 무슨 해리포터에나 나올듯한 마법사 같은 소리냐고?
예를 들어보자. 지난주에 나는 서대문구청 주차장에서 대학생 손녀딸과 함께 나온 동네 할머니에게서, 도자기 3점을 6만 원을 주고 샀다. 원래 7만 원데 홀아비로 혼자 살고 있다고 내 사정을 말하자, 할머니는 망설임 없이 거금 만원을 깎아 주셨다.
그런데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도자기들이 내게 소근소근 그들만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할머니 : 글쎄 지금은 여든이 된 할아버지가 20년 전 나이 예순일 때부터, 밖에만 나가면 도자기를 한두 점씩 갖고 오지 뭐야? 어휴~ 지겨워 죽겠어. 이젠 집에 쌓아 둘 곳도 없는데, 아직도 밖에만 나오면 도자기를 집어와~. 길거리에서 주워오는 건지, 어디 골동품 점에서 속아 사오는 건지는 나도 몰라~~
피터팬 PD : 할머니~~, 그럼 이거 할아버지한테 허락받고 저한테 파시는 거예요?
할머니 : 허락은 무슨 허락! 할아버지 몰래 팔아서 내 용돈으로 쓰는 거지.
피터팬 PD : 그럼, 이 하얀 도자기는 왜 만원이고, 또 이 청색 도자기는 왜 5만 원이에요?
할머니 : 나도 몰라~ 그냥 값을 매긴 거야. 파란 도자기는 할아버지가 절대 손대지 말라고 했거든. 언젠가 손녀에게 물려줄 거라고.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이 도자기는 서울 집도 아니고, 우리 고향 제천 집에 할아버지가 숨겨 둔 건데 내가 몰래 가져온 거야~
피터팬 PD : 그럼 손녀분은 할머니가 이렇게 파는 건 반대하지 않으세요?
대학생 손녀 : 아니요, 저는 할머니 편이에요. 집에 도자기가 너무 많아요. ㅎㅎ
할머니와 손녀딸의 얘기를 듣고, 도자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할아버지가 은퇴 후 20년 동안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수집하고, 또 소중히 다뤘을 도자기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도자기 1 : 나는 귀한 거니까 이 집 손녀들에게 대물림될 거란 말씀!
도자기 2 : 나는 작지만 색이 예쁘니까 나중에 비싸게 팔릴 수 있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심!
도자기 3: 나는 할아버지가 그냥 길에서 주운 건데, 그래서 사실 만원도 비쌈!
이런 대화들이 도자기를 따라 흐르는 유약과 문양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내게 도자기를 판 서대문구청 근처에 사시는 할머니는, '집에 화분도 아주 많이 있다'면서 화분도 사러 오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니까, 은평구 불광동에 사는 또 다른 이모님이 생각났다. 필자는 그 이모님에게서 화분을 15개 정도 샀는데, 화분을 내게 파실 때마다, '이전에 사갔던 그 아이들은 잘 있느냐'며 꼭 물으셨다. 나무 키우기를 너무 좋아해서, 크고 튼튼하게 잘 키우고 나면 이렇게 당근을 통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내준다면서.
나는 ‘나무들이 내게는 대화를 잘하지 않더라고요. 이모님보다 나무들에게 사랑을 덜 줘서 그런가 봐요~’라고 대답을 했지만, 사실 아침마다 그리고 늦은 밤, 잠에 들기 전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거나 잎을 쓰다듬어 주는 시간에, 작은 내방에서 살고 있는 60 그루의 나무들은 내게 말을 해주고 있었다.
‘우리 나무와 꽃들도 이렇게 부지런히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부지런히 생명을 살려내고 있으니까, 피터팬 너도 홀아비라고, 가족과 헤어졌다고,
울거나 하지 말고, 우울해하지도 말고, 열심히 너의 생명을 살아내야 해!~‘
세상의 물건들이, 그리고 그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다가 시장에 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를 계속 유혹하는 한, 나는 아마도 [당근 마켓]과의 거래를 끊지 못할 것 같다. 그 소중한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기도 했고, 물건들의 체온은 따뜻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꽃과 나무들은, 무겁게 나르고 옮기고, 또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느라, 수고스럽기도 하지만, 제주도에서 300그루의 나무를 키우면서 1년을 버텨냈던, 나의 지난 2020년의 이야기들을 상기시켜줘서, 다시 내게 신비한 이야기를 들려줄 나무 한 그루만 더~~ 하며, 홀아비의 아지트로 자꾸만 화분들을 더 들이게 된다.
<필자와 함께 홀아비의 집에서 살아가는 나무들. 나무들이 들려주는 신비한 목소리를 들어보라구!! >
그럼, 오늘 필자의 칼럼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들어볼 노래는 무엇일까?
얼마 전 필자의 집에 들렀던 대학 친구가 '이젠 앉을 자리도 없다'라고 불평을 할 만큼, 중고 물품에 밀려 사람들의 공간이 좁아져 가는 평창동 17평의 내 월세집에 어울리는 노래는 당연히, <Ella Fitzgerald와 Louis Amstorng>이 함께 부른,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You like potato and I like potahto
You like tomato and I like tomahto
Potato, potahto, tomato, tomahto.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
But oh, if we call the whole thing off
Then we must part
And oh, if we ever part,
then that might break my heart
넌 포테이도가 좋고, 난 포타토가 좋고
넌 토메이도가 좋고, 난 토마토가 좋고
포테이도, 포타토, 토메이도, 토마토
다 그만두자
오~하지만, 다 그만두면
우린 멀어져야 하지
오~그리고, 우리가 멀어지면
내 마음이 부서질지 몰라
-E.Fitzgerald & L. Amstongd,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티격태격, 투닥투닥 다투는 걸 두고, 너는 감자를 '포테이도'라고 부르고, 나는 '포타토'라고 부르지. 너는 토마토를 '토메이도'라고 부르고, 나는 '토마토'라고 부르지. 라면서 둘 사이에 갈등이 있음을 먼저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헤어지면 너무 마음이 아플 텐데... 그러니까, 이제는
So if you go for oysters and I go for ersters
I'll order oysters and cancel the ersters
For we know we need each other so we
Better call the calling off off,
그러니 넌 오이스터를 좋아하고, 난 얼스터를 좋아하면
난 오이스터를 시키고, 얼스터는 취소할 거야
우린 서로가 필요하단 걸 아니까
그만두는 건 그만두자
-E.Fitzgerald & L. Amstongd,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에서-
이렇게 갈등을 넘어서 서로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자고 노래한다. 클래식 재즈 넘버 중 최고의 노래 중 하나인,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는, 엘라 핏제랄드와 루이 암스트롱이 사랑스럽게 가사를 한 줄씩 주고받으면서 부르기 때문에, 마치 우리 가요 중 <하춘화, 고봉산> 선생의 [잘했군 잘했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영감 ~ (왜 불러)
뒤뜰에 뛰어놀던 병아리 한쌍을 보았소 (보았지)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하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 하춘화, 고봉산 [잘했군 잘했어]의 가사 중에서-
이미 구독자 분들도 짐작했겠지만, 필자는 사랑하던 아내와 아이 들과 헤어지기 전에, 늘 이런저런 물건을 사들였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책 수집 욕심에 매달 수십 권씩 사들이는 책을 보면, 읽지는 않고 쌓아만 둔다고 벽돌이라고 불렀었고, 내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놓고 입지 않는 옷들을 보면, 어차피 얼마 뒤엔 재활용 옷가지 함으로 들어가게 될 거라면서 나를 나무랐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에 대해서, 이혼한 아내와 내가 붙이는 이름이 달랐던 거다. <엘라 핏제랄드와 루이 암스트롱>은 노래로 그 차이를 극복한 것 같은데, 우리 부부는 20년 동안 화음을 맞춰봤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나의 이런 물욕에 굳이 억지스러운 변명을 하자면, 필자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도 등굣길이나 하굣길 길바닥에서 희한한 것을 보면, 바로 달려가 신발주머니와 책가방에 그 희한한 물건을 잔뜩 채워 넣고 다녔다. 한 번은 공사장 근처를 지나가다가 쓰다 남은 녹슨 철근이 보였는데, 그걸 잘 이어 붙이면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신발주머니 가득 채워서 무겁게 들고 다녔다.
공사장의 녹슨 철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징가 제트나 로봇 태권브이 같은 로봇을 만들어서 세계를 정복하리라는 상상을 하는 초등학교 꼬꼬마들이 세상에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어린 생각으로는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다 그런 상상을 할 거라고 믿었었다.
문제는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이런 상상의 바닷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는 건데, 이러니 내가 지난주에 산 만 원짜리 도자기를 보고도 필자는, 명나라 시대의 100억짜리 도자기라고 부르고, (지금은 아내 대신 나를 감시하고 있는 내 대학 동기들은), '피터팬 저놈 또 뭐 산다. 한 대 쥐어박아라 ~'라며 성화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모든 물건들이 들려주는 소중한 목소리를 서로 다르게 듣더라고, 그래서 그 물건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떠나지 않고 아픈 이별도 하지 않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그럴 수 있기를.
< 엘라와 루이가 함께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를 불렀던 바로 그 유명한 앨범의 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