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남들의 살아남기 전략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by 이안

주말에 대학 동기가 평창동 홀아비의 아지트에서 머물다 갔다. 인천에서 신문사를 운영하는 이 친구는 격주로 서울에 올라와서 나의 전셋집에서 하루를 자고 간다. 친구들 얘기로는 필자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라서, 언제 또 뭔 짓을 할지 모르니까 스파이로 인천 친구를 붙여둔 거라고 했다.


2020년 봄에 느닷없이 홀아비에 실업자 신세가 된 나에 대해서 처음에는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던 대학 친구들이, 나의 '지랄병'이 호전되지 않고 날로 심해지니까, 이젠 '걱정 90, 호기심 10' 정도로 필자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필자의 소위 '지랄병'이란 게 뭐 그다지 대단 한 건 아니고, 느닷없이 소식을 끊고 잠수를 타거거나, 느닷없이 삼청동 갤러리에 가서 돈이라도 실컷 써보고 죽자며 형편에도 맞지 않은 비싼 그림을 사 오거나, 크지도 않은 평창동 월세집에서 화분을 100개가 넘게 키우고 있거나, 이런 것도 아니면 새로 취업한 직장을 비난하면서, 2주 만에 퇴사를 하고는 새벽을 넘기며 술을 마시는 정도이다. (뭐.. 별 것도 아니다.)


우리 동네에 사는 또 다른 필자의 대학 동기는 나에게 이르기를,


“너 자꾸 홀아비 유세할래? 그래도 넌 결혼이라도 해봤지.
결혼도 못하고 애도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너는 감사하고 살아야 해!
너 자꾸 그렇게 애들처럼 투정 부리면
나 너 안 본다!”


라며 무시무시한 협박을 하기도 하였다.


협박을 듣고 한편 생각해보니, 연로하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내게 남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이혼을 했으니 아내도 없고, 두 아들과 연락이 전혀 되지 않으니 내 소식을 전할 길도 없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급사라도 하게 되면, 세상에 누가 있어 날 땅에 묻어주고, 대지의 신이 나의 육신과 혼을 거둬들이게 해 줄까?

역시 대학 동기들이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은 대학 동기들 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갑자기 대학 동기들에게 새해맞이 사과 한 박스라도 돌려야 할 판인데, 오히려 대학 동문 단톡 방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동기들이 화딱지 낼 만한 톡만 날리고 있으니, 친구 놈들의 울화통이 터질 만도 하다.

그래도 내가 대학시절, 그러니까 1988년부터 1990년 가을 군입대를 하기 전까지 올곧게 살았던 탓에 나를 저버리지 않고 챙겨주는 동지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친구는 주말이면 필자의 집에 올라와서 자고 가는 인천 친구 뚱땡이 신문사 주필이다. (신문사 주필 하니 영화 [내부자들]의 백윤식을 떠올리는 독자분들도 계시리라~ 하지만 뚱땡이 친구는 권력욕과 돈 욕심은 없었는지, 인천이라는 현실세계에서 영화 속 백윤식 같은 인간쓰레기들을 혼구녕(!) 내주는 배역을 맡고 있다.)


뚱땡이는 하필 나랑 군 입대하는 시기가 얼추 비슷했는데 그러다 보니,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 학생운동의 중심이었던 고려대 학생회를 나와 함께 지키야 했고, 덕분에 때론 피를 나눈 가족보다, 때론 전장에서 목숨을 빚진 전우보다 더 뜨거운 동지애를 나눌 수 있었다.


<필자가 대학 1학년이었던 1988년의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6.10 남북학생 회담]을 위해서 궐기대회를 했던 대학생들>


그런 연유로 나의 요상한 '지랄병'을 전담 마크할 배역을 맡게 된 건데, 하필이면 이 친구 역시 아직도 가정을 꾸리지 못한 홀아비와 비슷한 '쉰세 살의 노총각' 신세이다.


혼자 살게 되면 일찍 죽는다는데, 그래서인지 인천 친구와 나는 조석으로 서로에게 안부전화를 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생사확인을 하는 것이다. 녀석은 필자가 엄동설한에 보일러를 끄고 자서 얼어 죽었을까 봐, 나는 녀석이 악덕 언론인 때려잡으며 열일 하다가, 정치깡패에게 한 대 쥐어 맞고 어디서 울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다.

“따르랑~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대여섯 번을 넘기고 나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 녀석, 밤새 죽은 게 맞네 맞아~
에휴 불쌍한 놈! 결혼해서 아름다운 아내를 한번 품어보지도 못하고
노총각 귀신으로 저세상 갔....’
“응, 피터팬~ 너 왜 자꾸 전화질이야!
지금 인천 친구들이랑 맛나게 민어회 먹고 있는데....”


녀석은 어제도 죽지 않았다. 아직은 늙은 노총각과 홀아비가 세상을 뜨기에 좋은 계절이 아닌가 보다. 인천 친구가 주말에 우리 집에 와서 1박을 할 때도 혹시 녀석이 죽을까 봐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이 놈이 나이를 먹으면서 살이 너무 찌다 보니, 턱과 가슴이 붙어서 목이 거의 없어졌는데, 잘 때 숨소리가 그야말로 숨넘어가기직전의 괴성을 낸다. 그럴 때마다, '혹시 이놈 무호흡 수면으로 죽은 건 아닌가?' 덜컥 겁이 드는데, 이내 곧 천둥 같은 코 고는 소리가 안심을 시킨다.


나를 걱정하는 인천 친구의 마음도 필자와 비슷한 지, 이 놈은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안절부절이다. 내가 또 무슨 딴 마음먹고, '또 어디 고층빌딩이라고 올라간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평창동에서 미모의 갑부 미혼녀라도 만나서 잘 살게 될까 봐 배가 아파서 좌불안석인 건지, 아무튼 애타는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담배만 뻑뻑 피워댄다.


놈이 우리 집에 오면, 나는 녀석의 기차 화통 같은 코 고는 소리에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데, 녀석은 내가 자면서 자꾸 헛소리를 해서 잠을 못 잤다며 자기가 나를 계속 지켜줘서 내가 무사했다고 한다.


한 명은 돌싱남, 한 명은 모태 솔로. 올해로 쉰세 살을 맞은 두 늙다리 남자들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뭐 이리도 간절한 건지... 그래도 서로의 사랑과 믿음과, 지극정성이 하늘에 까지 닿았을 테니, 염라대왕이 가엽게 봐서 줘서, 우리 둘이 단명으로 돌연사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혹시 모르지!

염라대왕이 두 솔로남을 불쌍히 여겨서 송혜교보다 예쁜 하늘나라의 선녀님 두 분을 보내줄지도.

이번 주에는 당근 마켓에서 선녀 옷을 숨겨둘 뒤주라도 미리 사 둬야겠다.


뒤주 시세를 알아보면서 오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듣고 싶은 노래는 [동지를 위하여]이다. 물론 80년대 대학가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민중가요이고, 필자가 몸 담았던 대학 동아리 [문예사랑]의 주제가 이기도 했다.


휘날리던 그 깃발은 가슴

동여맨 영혼이었소

치던 바람 그 함성은

검푸른 칼날이었소

우리 지금 여기에

발걸음 새로운데

머물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동지여

-민중가요, [동지를 위하여] 가사 중에서 -



<아름다운 멜로디에 뜨거운 동지애를 노래한 곡, [동지를 위하여]가 1번 트랙에 수록되어 있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 4집>



피도 눈물도 없이 자본과, 차가운 냉혈한들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라지만, 아직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뜨거운 동지애로 바로 옆에서 나를 지켜주며 함께 이 노래를 불러줄 붉은 피를 가진 동지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를 위해 스파이로 인천 동지를 내게 붙여준 대학 친구들처럼.


인천 뚱땡이를 생각하면서, 또 필자의 대학 동아리 동지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이 노래를 불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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