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이혼한 당신에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 이소라-
사랑하는 당신,
이제 곧 5월, 가정의 달이 오는 구려.
가정의 달에 아빠가 아이들 곁에 있어야 하는데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서 그러지 못하니
아이들과 당신에게 미안하오.
얼마의 돈을 부치오.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고
장모님께도 드리면 고맙겠소.
그리고 남은 돈은 이사비용으로 쓰면 어떨까 하오.
올여름에 당신이 이사를 가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소.
당신과 아이들이 살고 있는 여의도 전셋집이,
50%나 급등하면서
우리가 함께 살던 집을 떠나
더 작은 집으로 옮겨야 된다고 들었소.
아빠라는 한 사람이 없어 식구가 줄긴 했으나
넓은 집에 살다가 작은 집으로 옮긴다는 건
아이들에게나 당신에게 여러 모로 불편할 텐데
이 역시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구려.
이미 지난 얘기지만 우리가 이혼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원래 살던 집을 팔지 않았다면
지금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하였소.
2002년에 결혼을 하고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가장이었음에도 도와줬던 기억이 별로 없소.
그래도 집에 남자 어른이 없이 이사를 한다는 건
작고 여린 당신에게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을 듯 하오.
이웃에 사는 목소리 큰 처제나, 처가의 누군가가 와서 도움을 주는 건지 모르겠소.
아니면 큰 녀석이 이젠 제법 커서 한 집안의 가장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구려.
아이들이 아빠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큰 아이와 둘째, 아들 둘을 보지 못한 지
1년이 지나가고 있소.
그 사이에 사춘기에 접어든 둘째와, 고3이 된 큰 아이는 못 알아볼 정도로 훌쩍 컸다고 들었소.
당신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겠구려.
큰 아이를 생각하면 늘 후회되는 게 있소.
큰 아이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하오.
우연히 학교를 가려고 준비 중인 큰 아이의 가방을 들여다보았는데,
가방 안에 공부를 해야 할 책과 공책은 하나도 없고 일본 만화책만 5권이 있었소.
나는 큰 아이가 학교에 가서 아예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오해를 하고
큰 아이에게 크게 화를 냈었소.
큰 아이는 아무런 변병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서러워서
뚝 뚝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뚜렷이 기억이 나오.
그날 밤 당신은 내게,
‘오늘은 자율학습의 날이라서 학교에서 따로 수업은 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같은 반 학우들 앞에서
자유발표를 하는 날이었다’라는 얘길 해주었소.
하지만 큰 아이는 아빠에게 크게 혼이 나고
그저 눈물만 흘리다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만화책에 대해서
발표를 하지 못했다고도 말해주었던 것 같소.
나는 그날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소.
하지만 큰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았소.
아빠의 오만한 자존심 같은 것이었고,
그날 이후 큰 아이는 수년 동안 내게 마음의 문을 닫았던 걸로 기억하오
하지만,
우리가 이혼을 한 가장 큰 이유가
큰 아이와 나의 오랫동안 묵은 갈등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소.
내가 당신에게 좋은 남편이 아니었고
또 아이들에게도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오.
그래도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당신과 살았던 18년의 시간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소.
당신과 보냈던 시간들은 내 생애 가장 축복된 시간이었고
찬란하게 빛나던 사랑의 시간이었소.
적어도 내게는 그랬소.
2000년 어느 날, 당신을 처음 봤던 그 순간도 나는 아직 잊지 못하오.
SBS 라디오의 잘 나가던 작가로 근무하다가
[김원희의 정오의 희망곡]이라는 프로그램이 MBC FM에 신설되면서
MBC 라디오로 옮겨 오게 된 당신을
처음으로 보았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하오.
겨울 창가에 앉아
하얀색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있던 당신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뚫고 창가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던
빛나던 겨울 햇살처럼 찬란히 아름다운 여인이었소.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내 평생 본 적이 없었소.
당신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이지만
그 시절 당신과 조금씩 알아가고
또 당신이 내 품에 안겼을 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운이 좋은 놈이라며 행복해했었소.
비록 지금은 당신과 이혼을 하고 혼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과 보낸 소중했던 시간들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소.
이제 5월, 가정의 달이오.
나는 당신과 그리고 두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지만,
당신과 아이들에게 행복한 5월이 되길
기도하고 바라겠소.
필자는 소위 돌싱남이다. 오늘 이혼한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물론 부치지 못한 편지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은 진심이었다고 믿었던 사랑이 부정되는 시간을 살아가기도 한다. 오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듣고 싶은 노래는 바로 그런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이다.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내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 이소라 정규 9집 중에서 -
<사진1> 2016년에 발표된 이소라 9집 <그녀풍의 9집>속에는 김동률 작사, 작곡의 타이틀곡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가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음악 애호인들이 9집이 완성되기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9집의 발표는 6년째 현재 진행형이다. 그녀의 9집 앨범을 2021년 올 가을에는 꼭 듣고 싶다.
필자는 MBC FM 프로듀서로 재직할 때 가수 이소라와 [이소라의 음악도시]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했었다. 가까에서 지켜본 그녀의 목소리와 감성은 우리나라에서 슬픈 사랑을 가장 애절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자주 깨닫게 해 주었다.
그녀는 가끔 나와 둘만 앉아 있던 생방송 스튜디오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슬픈 노래를 읊조리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사랑이라는 신비한 감정이 전해줄 수는 깊은 심연 속 어둠과 슬픔을 느끼곤 했었다.
술 취한 어느 거리의 모퉁이에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라며 쓸쓸한 감정을 토해내던 그 시절의 모든 청춘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은 봄날의 밤이 지나가고 있다. 결국 이별을 한 사랑이었던, 혹은 아름다운 꽃을 피웠던 사랑이었던, 그 모든 사랑에 위로와 용기를 보내고 싶은 슬프고도 화려한 봄날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