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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May 31. 2021

에릭 칼을 추모하며...

-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하고 있을 그를 그리며...-

어제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내가 울고 있었다.

꿈속에 처음 보는 ‘한 가정의 아빠와 두 아이들’이 나왔고,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나는 울었다. 그런데 그들을 지켜보던 ‘꿈속의 내가’ 운 것인지, 아니면 꿈을 꾸면서 잠을 자고 있던 ‘실제의 내가’ 운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꿈에서 깨어나서도 내가 울었다는 건만은 분명히 기억이 났고, 그래서 깨어서도 얼마간 울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사실 내 꿈속에 등장했던 ‘한 가정의 아빠와 두 아이들이 나눈 대화’는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아이들은 TV를 통해서 영화를 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마법사 해리포터(Harry Potter)에 관한 새 영화가 나왔는데, 그걸 TV에서 방영해 준다고 해서 아이들이 흥분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아이들의 아빠가 퇴근해서 집으로 왔고, 아빠는 아이들에게 밖에 나가서 야구를 하자고 했다.     

 

아이들은 지금 TV를 볼 거라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는데, 꿈속의 아빠는 ‘그럼 나 혼자라도 운동하러 갈게~’ 하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두 아이들이 아빠를 따라서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아빠 해리포터 새 시즈리가 TV에서 한 대요~”라고 급하게 외쳤고, 꿈속의 그 아빠는 반가워하면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다시 들어오는 내용이었다.      


그 장면을 꿈속에서 지켜봤던 나는 펑펑 울고 있었다. ‘뭐.. 별 내용도 아니고 특별할 것도 없는데 왜 울었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꿈속의 그 아빠가 너무나도 부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두 아이들과 [해리포터]라는 영화를 통해서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상황에 살고 있는 꿈속의 그 아빠가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는데, 격하게 울던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그만 꿈에서 깨게 되었는데, 깨어나서도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게도 지금은 고3이 된 큰 아이, 그리고 중3이 된 둘째 아이와 그렇게 교감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내와 작년에 이혼을 하고 비록 지금은 15개월째 아이들과 아무런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고 있지만, 나의 두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는 나도 꿈속의 아빠처럼 아이들과 행복한 교감을 나누었다.      


토요일 밤이면 큰 아이에게 ‘내일 아빠는 북한산에 갈 건데 너도 같이 갈래?’라고 물었고, 큰 아이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자기가 입고 갈 등산복과 등산화를 챙기면서, ‘내일은 어느 루트로 가는지?’ 내게 물었었다. 나는 미리 찾아본 지도를 보여주면서 산에 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고, 산에서 내려오면 정릉역 근처의 고깃집에서 갈비탕을 같이 먹을 수 있을 거라고도 얘기했었다. 고기를 좋아하던 큰 아이는 '맛있겠다!'면서 좋아했었다.       


그렇게 다음날 큰 아이와 함께 북한산을 오를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던 시절의 나는, 지금은 내게서 아주 멀어져 버린 그래서 소식조차 듣지 못하는 큰 아이와 교감을 나눌 수 있던 아빠였다. 당시에 대학 동기중 누군가는 주말마다 아이와 함께 북한산을 오르는 내가 부럽다고도 말해주었다.    

  

2020년 작년부터 홀아비에 실업자가 되고 나서, 가끔 단톡 방을 통해서 대학 동기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 외에는, 평창동을 어슬렁어슬렁 떠돌아다니는 들개 몇 마리들을 돌보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되어버린 피터팬의 침실 창가로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얼마 전에 들려왔다.      


피터팬의 침실에는 큰 창문이 있는데, 창문 맞은편에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고성(古城)처럼 생긴 으리으리한 대저택이 서있다. 그 집에는 3대가 살고 있는데, ‘고성(古城)’의 상속자로 보이는 할머님과 아들 내외, 그리고 손자, 손녀가 함께 살고 있다. 그날은 그 집의 손녀와 아빠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 오늘은 아빠한테 짐이 많으니까, 이것 좀 들어줄래?
딸 : 이게 뭐야?
아빠 : 참외야!
딸 : 참외? 와! 참외는 왜 이렇게 무거워?
아빠 : 바닥에 떨어뜨리면 깨지니까 조심해야 해~
딸 : 응. 참외 참 무겁다. 할머니! 문 열어주세요!
아빠 : 아빠랑 같이 가야지~ 문 닫으면 어떡해~
딸 : (까르르~) 하하 내가 아빠보다 더 빨리 갈 거야!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 속 아빠와 딸아이의 대화였다. 하지만 아이가 남긴 ‘까르르!’ 하는 웃음이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동그라마처럼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아서, 자꾸만 이웃집 부녀의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참외를 처음 본 것인지, 아니면 여러 개의 참외가 담긴 봉투를 직접 들어본 게 처음이었던 건지, 어린아이는 영차 영차 참외를 야무지게 등에 지고 계단을 올랐고, 아빠는 어린아이를 사랑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는 잘 모르는 것 같은, 그저 흔한 일상 속 평범한 아빠의 목소리를 내고 있였다.     

 

피터팬에게는 작년부터 갑자기 어느 한순간 단절되어서,
15개월 동안 누려볼 수 없는 사치였지만, 옆집 아빠에게는 일상이었고,
필자에게는 다시 되돌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지만,
옆집 남자에게는 예쁜 막내딸에게 참외 심부름을 시키는,
그렇고 그런 많은 하루 속 지극히 평범한 순간이었다.      


아마도 집으로 돌아간 손녀는 할머니에게 뽐내듯이 참외를 내밀면서

‘이거 내가 들고 올라왔어! 얼마나 무거웠다고!’ 라며 자랑스레 말했을 것이고,

오빠에게는

‘참외는 참~ 무거운 거’라며 설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끔 피터팬의 창문을 통해서 들리던 아주 점잖은 목소리의 영국 스코틀랜드의 고성 같은 집에 사시는 이웃집 할머니도, 오랜만에 들뜬 목소리로 손녀딸이 최고라면서 칭찬을 해주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며칠 전 미국 뉴욕 태생의 세계적인 동화작가 에릭 칼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에릭 칼의 부음 소식에, 나의 큰 아이와 둘째 아이의 어린 시절에 나 역시 아이들에게 에릭 칼의 동화책을 많이 읽어주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유아들을 위한 현대의 동화책은 고전적인 동화책들인 안데르센 동화집이나, [피터팬], [피노키오] 등과는 달리, 기승전결이 뚜렷하지는 않아서 결말이 좀 애매하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에릭 칼이 그의 삽화를 통해서 보여준 아름다운 세계는 스토리텔링이 미처 담지 못하고 있던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바로 눈 앞에 단숨에 펼쳐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1929년에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에릭 칼은 젊은 시절, 뉴욕 타임스의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일했지만, 데뷔작이었던 [갈색곰아, 갈색곰아 무엇을 보고 있니]를 시작으로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사진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배고픈 애벌레]를 직접 들고 있는 살아 생전 에릭 칼의 모습 >


에릭 칼 덕분에 그의 책을 읽던 그 시절의 나와 두 아이들은 화려한 색채와 이미지들이 전해주었던 상상의 바다에서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다. 에릭 칼 덕분에 맺어진 두 아이들과 나의 소통 능력이 이후 큰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아빠의 손을 잡고 함께 북한산을 오르게 는지도 모르겠다.


에릭 칼의 죽음에 그의 가족들은 아흔 한 해라는 생애 동안, 전 세계 많은 어린아이들을 '꿈과 희망이라는 세계'로 초대해주었던 그를 기리며,      

In the light of the moon / holding on the good star /
a painter of rainbows / is now traveling across the night sky /

달빛 속에서 / 착한 별을 붙잡고 /
무지개의 화가는 / 이제 밤하늘을 가로질러 여행하고 있습니다.

라는 아름다운 추도사를 남겼다.      


아마도 에릭 칼은 이젠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별과 별과 사이를 여행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즐거운 오늘을 보내고 설레는 내일을 기다리며 잠자리에 드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에릭 칼이 보여준 상상력의 세계 속에서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하는 무지갯빛 꿈을 아빠의 품에서 꾸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피터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감'이라는 소중한 순간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작은 기다림 속에 매일 설레지만 더 이상 꾸어볼 수 없게 된 꿈은, 결국은 혼자 남게 되어 실망하는 시간들을 보내는 게 인생이라는 걸 깨닫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세상의 모든 아빠와 엄마들에게는 지금의 '행복한 교감'이 항상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에릭 칼을 추모하면서 오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듣고 싶은 음악은, Peter, Paul & Mary의 [Puff, the Magic Dragon]이다. 1963년 1월에 발매되어 빌보드 hot 100 차트 2위까지 올랐던 이 노래는, 1978년에는 이 노래를 주제로 만든 만화영화가 방영되기도 했었다.


Puff the magic dragon lived by the sea

And frolicked in the Autumn mist in a land called Hanalei

Little Jackie Paper loved that rascal Puff

and brought him strings and sealing wax and other fancy stuff


Oh, Puff the magic dragon lived by the sea

And frolicked in the Autumn mist in a land called Hanalei

Puff the magic dragon lived by the sea


마법의 용 퍼프는 바닷가에 살고 있다네

그리고 "하날리"라 불리는 땅에서 가을 안갯속을 뛰놀았지

꼬마 재키 페이퍼는 그런 장난꾸러기 퍼프를 사랑했고

실과 봉랍, 그리고 다른 멋진 물건들을 가져왔다네


오, 마법의 용 퍼프는 바닷가에 살고 있다네

그리고 "하날리"라 불리는 땅에서 가을 안갯속을 뛰놀았지

마법의 용 퍼프는 바닷가에 살고 있다네




세상에는 아직도 동화 같은 꿈이 존재한다고 믿는 모든 행복한 드리머들이여!

아직은 아름다운 봄날이니,

에릭 칼의 동화를 읽으며, [피터 폴 앤 메리]의 아름다운 노래를 함께 불러 보는 건 어떨까?


ps. 국내 라디오에서는 [puff]라는 단어가 마약을 상징할 수 있다고 해서 금지곡이 되기도 했는데,

동화스러운 유연한 상상력을 퍽퍽한 가슴과 머리로 해석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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