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안 Mar 15. 2022

영화 <중경삼림>을 다시 보다

-금성무가 바라는 사랑의 유통기한이 지켜졌으면...-

영화 중경삼림을 오랫동안 보지 않았다. 몇 해 전부터 리마스터링 버전이 다시 출시됐다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 들었고 재개봉을 하기도 했고, 유료 영화 채널에서 구입해서 볼 수도 있었지만 보지 않았다.      


MBC에 라디오 PD로 입사를 하고 몇 달이 되지 않았던 1995년 봄이었나?

서울 신사동 씨네하우스에서 <중경삼림>을 보고 왕가위표 영화의 매력에 첨벙(!)! 빠져 버려서, 이후 20번 정도 더 중경삼림을 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한 모쏠이었던 30대의 지루하던 나날에도, 결혼을 하고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40대에도, 아내와 헤어지고 홀아비 중년의 삶을 시작한 지난 2년 동안에도, 애써 <중경삼림>은 찾아보지 않았다.

     

나에게 중경삼림을 보던 시절은,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파인애플 통조림 속 시간 같은 순간들이었다.

29살 11월의 설레던 첫사랑, 첫사랑에 실패하고 1년여 인도와 네팔을 방황하며 돌아다녔던 끝이 안보이던 안개 같은 시간, 이후 몇 명의 인연을 만나며 '이게 진짜 사랑일 거라'라고 믿었지만 모두 실연으로 끝났던 시간들. 이 모든 기억들은 모두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안에 굳게 닫힌 채 봉인되어 있었다.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을 다시 본다는 건, 그 시절의 쓰리던 아픈 기억을 다시 소환해야 할 용기가 있어야 가능했다. 더구나 사랑하던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헤어지고 홀로 2년여를 동굴 같은 월세집에서 두더지처럼 점점 더 밑바닥으로만 굴을 파며 살면서,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각종 통조림을 냉장고에 채워놓은 지금의 나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던, [중경삼림]의 후반부를 더 좋아했지만, 전반부 금성무가 독백으로 내뱉던 애절하면서 슬픈 대사들은 도저히 잊히지 않는다. (이 영화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 보니 마마스 앤 파파스의 원년 멤버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 내한 공연을 하는 해프닝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했었다)      


“내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어”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통조림 30개를 먹을 때까지
너에게서 연락이 없다면 너를 잊겠어”
“이렇게 깜깜한 밤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죠.
그중에서 마지막은 실연을 당하고 흘리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죠”
“실연 후에는 조깅을 한다.
온몸의 수분이 다 빠질 때까지...
그러면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지니까...
내가 '아미'에게 얼마나 쿨한 남자였는데 눈물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영화의 마지막에 금성무는 실제로 빗속에서 전력질주를 한다. 그리고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금성무에게 감당 못할 실연을 안겨줬던 전 애인 '아미'를 잊지 못해서, 맥도널드 앞에서 전화통을 붙잡고, 과거의 다른 여자 친구들에게 소위 '직접대는' 전화를 돌린다.  

    

“모시 모시? 모모에? 만날 수 없어? 뭐 남편이 안된다고 한다고?
너 결혼했었니? 언제? 5년 전에?
아... 우리가 안 본 지... 5년이나 됐구나”
“강수혜니? 나야! 뭐 날 모른다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 짝꿍이었잖아.
전혀 모르겠다고? 아... 미안.. 뚝....”
“만날 수 없어? 뭐 너무 늦었다고? 피곤해서 잔다고, 벌써?
아직 새벽 2시밖에 안 됐는데...”     


금성무는 이어서 영화 속에서 레인코트를 입고 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킬러 임청하에게 가서 작업 멘트를 날린다. 이제 옛 애인 '아미'는 잊기로 했으니까, 술집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첫 번째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임청하였으니까.      


<술집 문을 처음으로 열고 들어왔던 임청하에게 다가가서 소위 작업 멘트를 거는 금성무>


나의 20대 후반과 30대 중반까지를 지배했던 영화 <중경삼림>에서 내가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영화 속에서 슬픈 실연에 지배당하고 살아가는 금성무의 모습이 나의 '똥 멍청이' 같은 연애와 너무도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혼자서만 막무가내의 사랑을 했고, 차였고, 둘이 같이 사랑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다시 실연당했고, 미래를 약속하기도 했지만, 역시 죽어도 다시는 안 본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이별을 했다.      


그리고 이젠 진절머리 나고, 가슴을 후벼 파듯 쓰리기만 하던 과거의 기억을 다시 불러낼 만큼의 강한 심장을 갖고 있지 못한 나이가 됐다. 그리고 다시는 <중경삼림>을 안 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그만 어제 넷플릭스에 풀린 <중경삼림> 리마스터링 버전을 다시 보았다. 나의 사랑은 지켜줄 주 없었지만 금성무의 그것은 아주 가슴 아프게 지켜주고 싶어서.     



이전 18화 에릭 칼을 추모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