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21.
작년 학부모 참여수업의
하이라이트
작년 봄 유치원 학부모 참여수업에 갔었다. 교실에 들어온 나를 보고 잔뜩 들뜬 아들은 계속 뒤를 봤다. 살짝 손을 흔들어주자 배시시 웃는다. 아직 아기 같은 녀석이 교실에서 제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이 제법 기특했다. 참여수업이 마무리될 무렵 아기 얼굴처럼 뽀얗고 귀여운 담임 선생님은 그날 부모님을 위한 깜짝 동영상을 준비하셨다고 했다. 동영상의 제목은 '아이들이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
잔잔한 배경음악이 흐르자 엄마들의 시선이 TV에 집중되었다. 파스텔톤 화면에 환하게 웃는 한 아이 사진 한 장이 뜬다. 이어서 사진 옆에 아이들이 한 말이 문장으로 슬며시 떠오른다. 이 동영상은 그날 하이라이트였는데 첫 아이 영상을 보고 진정 '학부모'가 된 기분에 목이 매였다. 젖 먹여 트림시키던 녀석들이 다들 커서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을 선생님께 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엄마 동생이랑 안 싸울게요'
'밥 잘 먹을게요'
'울면서 떼쓰지 않을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어떤 말을 해도 귀여운 녀석들의 말에 벌써 어떤 엄마는 안경을 벗고 손으로 눈을 훔쳤다. 화면 속에 사진과 글자는 아이들의 순수함의 향연이었다. 가만히 화면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졌다. 눈물 나면 마스카라가 번진다는 생각에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그런데 아기 얼굴의 선생님마저 자신이 직접 만든 동영상에 감동을 하시며 훌쩍거리시는 게 아닌가. 예상치 못한 분위기에 조금은 멋쩍기도 했다.
우리 아들은 언제 나오나 하는 찰나, 드디어 아들의 사진이 화면에 떴다. 이어서 현이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나왔다. 그동안 나왔던 아이들의 말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엄마들의 '풉'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나중에 예쁜 옷 많이 사줄게요"
그날 나는 조금 복잡한 심정이 되었는데, 내가 과연 아들에게 어떤 엄마로 비치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은연중에 영향을 끼쳤을 것인데 "예쁜 옷을 많이 사줄게요'는 엄마가 너무 가벼워 보였다. 아니면 녀석은 벌써 엄마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이미 간파했단 말인가. 아니면 내가 예쁜 옷을 입었을 때 표정이 가장 행복해 보였던 걸까.
귀걸이랑 팔찌랑 목걸이
그런데 오늘 또다시 복잡한 심정이 또 되었다. 딸 아이를 먼저 어린이집에서 찾아서 아들 유치원에 걸어가는 중이었다. 평소보다 엄마가 일찍 데리러 오자 딸이 기분이 좋았나 보다. 횡단보도에 가까이 왔다.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로 바뀌어서 한참을 기다려야겠다 싶었다. 어린이집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어 매고 치마를 최대한 내리고 쭈그리고 앉았다. 나를 보던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뭐 좋아해? 내가 크면 다~ 사줄게"
"와. 정말? 엄마한테 뭐 사주고 싶은데?"
"귀걸이랑 팔찌랑 목걸이"
손가락으로 자기 귀, 목, 팔을 가리키며 말하는 딸을 보니 작년에 학부모 수업에 있었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들은 옷을 사준다고 하더니 딸은 각종 귀금속을 사준다고 한다. 과민반응을 보이고 싶진 않았지만 기분이 묘해져 버렸다. 평소에 신랑한테 뭐 사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대체 녀석들은 왜 그러는 걸까. 나는 그것 말고 좋아하는 것이 많은데 내가 그렇게 외적인 모습에 치중하는 엄마로 보이나 싶어 좀 씁쓸했다.
물질보다는 가슴이 느껴지는 엄마이고 싶은데. 딸이 다시 물어본다.
"엄마 또 뭐 좋아해?"
"엄마는 우리 딸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
나는 최대한 사랑스러운 엄마 미소와 반달눈을 하고 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입을 삐죽거리면서 양손을 흔든다.
"엄마, 난 물건이 아니잖아. 물건으로 말해봐."
물건을 말해보라는 말에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다.
"물건? 음... 그럼. 돈!"
"돈이 물건이야?"
"응, 돈도 물건이지. 너 할머니가 가끔 주는 거 있잖아. 그걸로 사고 싶은 거 다 살 수 있어. 뭘 살 수 있냐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이 갑자기 화를 내며 말했다.
"엄마, 내가 나중에 사준다고 했잖아. 나 다 크면~"
곧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어 황급히 길을 건넜다.
아이에게 보이는데
나는 모르는 내 모습은 뭘까
아이 손을 잡고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내 머릿속은 풀리지 않는 물음표로 가득 찼다.
아이는 왜 갑자기 짜증스러워졌을까.
아이에게 보이는데 나는 모르는 내 모습은 뭘까.
내가 '돈'에 대해 말하던 내 얼굴에서 딸은 대체 무엇을 본 걸까?
저녁에 아들 한글 공부시켜줄 때도 그렇고 ('야동'이라니. 하마터면 말할 뻔)
내가 되고 싶은 '나'와 객관적으로 보이는 '내'가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밤도 일 년 전 그때처럼 다시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나는 대체 어떤 엄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