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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Oct 01. 2016

엄마 나 열있는 것 같아

2016.9.30.




엄마 나 열 있는 것 같아



기억 속의 내가 생소하게 느질 때야 참 많다.

그래도 이건 아무래도 진짜 이상한 행동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프고 싶었다. 안방에 슬며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부모님 침대 아래쪽 콘센트에 헤어드라이기 플러그를 꼽았다. 드라이기를 '약'으로 틀고 한 손으로 앞머리를 잡아 올렸다. 그리고 반대쪽 손에 있던 헤어드라이기로 이마를 뜨겁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을 때 부엌으로 달려가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열 있는 것 같아. 만져봐"


정확한 동기는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분명 엄마한테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위로에 서툴다. 사실 아빠도 그렇다. 기쁨은 배로 느끼고 오래 즐기려고 노력하시는 반면, 슬픔이나 투정 같은 감정은 어떤 의미로는 '금기어'였다. 울거나 떼 부리는 것은 이유를 막론하고 '나쁜 것'이었다. 나약함, 애처로움, 자기연민 같은 그늘진 페로몬을 뿜어봤자 말 그대로 '씨알도 안 먹혔다'. 오죽하면 내가 울면 아빠는 '이게 울 일이냐? 부모님 죽었을 때나 울어라" 하며 혼내었을까.



부모님이 나를 위로해주지 않은 이유


우리 엄마 아빠는 왜 나를 위로해주지 않았을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렇다.


일단 내가 울고 괴로웠던 일들은 아마 진짜 별거 아닌 일이었다. 내가 자식 낳아보니 녀석들은 참으로 별거 아닌 것에 열광하고 싸우기도 한다. 오빠가 자기 자전거를 탄다고 울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딸의 모습에 내 과거가 가끔 떠오른다. 동생이랑 나눠먹으라고 내가 반으로 자른 빵이 어떤 게 큰지 유심히 보는 아들의 모습에서도 내 어릴 적 모습이 보인다. 어릴 땐 정말 별거 아닌 것에 참 많이 울고 웃으니까 부모님은 별거 아닌 거에 흥분하지 말라고 했을 거다.


게다가 우리 엄마 아빠는 두 분 다 집안의 장남, 장녀였다. 그것도 동생이 줄줄이 많은 집안에서 말이다. 살아오면서 징징거릴 틈도 없이 어린 동생들을 챙기느라 바빴을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나 중학생 시절에도 작은아버지나 삼촌이 심심치 않게 부모님 속을 썩였던 것을 생각하면 두 분의 '맏이' 역할은 비단 유년기에만 국한된 일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인지 부모님한테 (특히 아빠에게) 푸념이나 투덜거림 또는 불평에 대한 기억이 전무하다.


그리고 이건 내 마음이기도 한데, 자식이 되도록이면 매사 긍정적이고 씩씩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일 것이다. 나도 내 아들 딸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힘들어도 '이까짓 거 뭐' 하고  일어나길 바란다. 나도 은연중에 부모님 영향을 받아서 아이들이 다치면 "(별거 아니니까) 괜찮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들이 바지를 걷어올렸다


오늘 아들이 운동장에서 넘어졌다. 무릎 근처에 아주 작은 상처가 났는데 갑자기 바지를 걷어올렸다. 원래 엄살이 없는 아이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달랐다. 아주 바짝 올려버리는 바람에 한쪽은 팬티만 입은 것처럼 허벅지가 훤히 드러났다. 그 모습에 헤어드라이기로 데운 내 '뜨거운 이마'가 생각났다.  아이가 다쳤다고 나에게 달려왔을 때 " 그 정도는 괜찮아. 놀아" 하고 말한 내 모습은 참 엄마랑 닮았다.


그 옛날 앞머리를 잡아 올리고 이마를 내보였던 나에게

싱크대 앞에서 내 '뜨거운 이마'를 만져본 엄마는 이렇게 말했었다.


"응, 열? 없는 것 같은데. 별거 아니야"



다음에 아들이 혹시 다치면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꼭 안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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