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4.
욕조에서 수수께끼 놀이
아이들과 수수께끼를 해보면 대략 이런 식이다.
딸은 너무 힌트를 과하게 말하고, 아들은 너무 힌트를 안 준다.
진이는 아예 힌트에 정답을 말해 버릴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이건 물 마시는 컵인데요, 뭘 마시는데 써요." (정답은 '컵')
이렇게 적나라하게 설명해버리면 현이가 비웃으면서
"야, 컵이잖아!"
그러면 진이는 무척 기분 나빠하며 화를 낸다.
반대로 아들은 이렇다.
"이것은 손에 잡히지 않아요. 뭘까요?"
내가 힌트를 더 달라고 하면 기껏해야
"만질 수는 있어요. 이제 힌트 없어!"
뭐 이 정도다. (정답은 '물')
상대가 못 맞추는 것에 일종의 승리감을 과하게 느끼는 스타일이다.
나는 셋 중에 수수께끼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힌트를 너무 주는 딸의 문제는 모르는 척 최대한 늦게 맞춰야 하고,
힌트를 너무 안 주는 아들에게는 아주 꼬치꼬치 캐물어야 한다.
진이는 아직 어려서 수수께끼 낼 때
주변에 있는 물건을 직접 골라 문제를 낸다.
(주로 화장지, 변기, 비누, 수건 등 자신이 아는 단어로 냄)
오늘 진이에게 수수께끼를 낸 물건을 빤히 바라보면서 설명하는 건 고쳐야 된다고 말해주었다.
진이가 문제 낼 차례였는데,
딸내미의 시선만 따라가면 정답이 바로 나와서
진이가 입도 열기 전에 현이가 답을 말해버렸다.
진이는 오빠 나쁘다며 소리 지르고 난리.
현이는 동생이 화낸다고 물 뿌리고,
진이는 눈에 물들어갔다고 울고.
나도 어쩐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매번 참 신기한 게,
'시간'이란
워낙 요망한 녀석인지라,
피곤하고 뻔한 일상마저도,
아이들과 보낸 시간은 거뜬히 '추억'으로 만들어 놓는다.
아이들과 욕조에 다 같이 들어가서,
'보리쌀' 놀이하고, 수수께끼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
3년?
4년?
5년만 지나도 욕조에 셋이 다 못 들어갈 것 같다.
소중하다.
지금의 아이들과, 평범한 일상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이
그저 감사하다.
+
심야 포스팅은 이래서 자제해야 한다.
내일 아침에 지울지도 모름.
이 시간에
혼자 목메고 눈시울이 촉촉
이게 뭐하는...
현아, 진아.
이 에미가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