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숑로제 May 21. 2017

"요즘 선생들은 너무 놀고 먹으려고만 해."

2017.5.19.




유치원 놀이터에서 우연히 들은 둘의 대화


   아이들은 유치원 놀이터를 좋아한다. 특히 아는 친구가 놀고 있으면 더 놀고 싶어 한다. 게다가 한 두 명이 남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가속도가 붙어 점점 아이들이 늘어난다. 그에 비례해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도 늘어나는데 그렇게 되면 벤치 의자가 넉넉하지 않은 관계로 다닥다닥 붙어서 앉게 되는 풍경이 펼쳐진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아이들에게 집에 가자고 몇 번을 설득해보았지만 진이와 현이는 놀겠다고 떼를 부렸다. 결국 나는 자리를 잡고 앉고 말았다.


올해 유치원을 옮긴 터라 엄청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다.

그저 자주 보는 얼굴에겐 가볍게 인사를 하는 게 대부분이다.

게다가 먼저  


'아이가 무슨 반이에요? 우리애는 00반인데'  


하고 말을 거는 적극적인 성격이 못되는지라 그냥 조용히 있는 편이다. 애들 노는 것 좀 보다가 전날 읽기 시작한 허지웅 에세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게 불어 사정없이 내 얼굴을 휘갈기는 통에 정신을 못 차리던 중이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엄마 둘이서 하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가 우리 현이랑 같은 7살이었다. 그 둘은 사교육에 대해서 뭔가 코드가 맞는 것 같았다. 수학 수업을 시작했는데 선생님이 너무 좋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머리가 긴 엄마가 말했다.


 "요즘 '논술'을 큰 애한테 해주고 싶어요"  


그러자 옆에 단발머리 엄마가 응수했다.


"어우 나도 요즘 논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둘의 대화는 무르익어 가는 듯 했다.  


  나는 둘의 대화를 엿듣고 싶지는 않았으나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자리를 옮겨볼까도 잠시 생각해보았다. 쭉 둘러보니

다른 자리도 없었을뿐더러 설사 있더라도 마치 내가 책 읽다가 자리를 옮기면 자칫 '책 읽는데 너무 시끄러워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다'는 오해를 줄까 봐 그냥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아마 둘은 상관도 안 했겠지만 내 소심한 성격이 문제다) 바람은 어찌나 부는지 머리카락이 자꾸 얼굴에 달라붙는 통에 책에 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들려오는 긴 머리 여자의 말.


"학교 선생님들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 되가지고 너무 놀고먹으려고만 해요"


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내가 놀고먹으려고만 하나?'


그리고 긴 머리 여자의 이어지는 말.


"너무 가르치는 게 없어. 너무~"



나는 가르치는 게 없는가


  그 말을 듣고 있던 단발머리 엄마는 내가 초등교사인 사실을 알고 있던지라 나를 의식한 듯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나는 어쩐지 무척 어색해졌다. 어설프게 엿들은 것도 모자라서 욕을 들어먹는 꼴이라니. 그냥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기분은 영 찝찝해졌다.  그러다 긴 머리는 내가 초등교사인 것을 알고 일부러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의 옆구리엔 버젓이 'oo초등학교 도서관'이라고 도장이 찍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마저 슬며시 들어버리니 더욱 더 기분이 이상해져 버렸다.


"아무튼 우리 논술 같이 팀 짜요. 꼭!"


  긴 머리는 이 말을 단발머리에게 신신당부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도 애들을 불러 차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을 때였다. 생각보다 더 기분이 다운된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흠찟 놀랬다. 힘이 쭉 빠졌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엄마들은 나를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기분은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았다.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가 되어버린 심정에 불쾌한 마음을 빨리 떨쳐버리고 싶었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아직도 뭔가 덜 풀렸나 보다.


   사실 그 날 더 피곤했던 이유는 '학부모 공개 수업'을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20명 남짓한 학부모들이 교실 뒤에서 내 수업을 참관했다. 워낙 잘 사는 동네라서 그런지 고학년이면 참여율이 저조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엄마들은 하나같이 과하지 않은 화장과 세련된 옷차림이었다. 유일한 아빠 참관자도 있었다. 가족과 1년간 세계여행 후 지금은 '여행 에세이' 작업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바 있던 학부모였다. 긴장은 되었지만 아이들과 평소 수업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다소 수업이 평범할 수는 있었겠지만 공개 수업이라고 안 하던 것을 '쇼맨쉽'을 발휘해서 보여주는 것도 애들 앞에서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발표를 많이 골고루 시켜주는 것에 주력했다.  


  내가 긴 머리 여자의 말에 휘둘린 이유는 뭘까. 어쩌면 밋밋할 수도 있었던 수업을 보고 학부모 중 누군가는 '너무 가르치는 게 없어'라고 생각하진 않았나 하고 찔린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 여자가 일부러 나 들으라고 말했을 가능성에 공격을 받은 기분일 수도. 그것도 아니면 워낙 학교 일정이 많아서 피곤한데 '너무 가르치는 게 없다'는 말에 억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개똥철학이라는 게 있다. 나의 교사로서의 철학은 뭔지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 나의 전문성은 뭔가. 대치동에 족집게 강사처럼 엄청난 인기로 고수입을 올리는 교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사실되기도 어렵겠지만.) 교과 과정을 잘 가르치는 것은 참 좋은 자질이긴 하지만 그것은 좋은 교사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서 엄마도 맘만 먹으면 아이를 끼고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초등 교과 과정이다. 기똥차게 소수의 나눗셈을 잘 가르치는 실력 가지고 '교사의 전문성' 운운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그러면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가.



내가 학생에게 바라는 것은


  나는 학생이 학교에서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길 바란다. 사람과 부딪히며 갈등하고 슬퍼하고 그러다 좋아하길 바란다.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나름 자신이 살 길을 모색하기를 바란다. 좋든 싫든 한 배에 탄 교우와 선생님과 아웅다웅 생활을 해나가며 사람에 대해 실망도 하고 이해도 해가며 살길 바란다. 그래서 학교가 중요하다. 학원과 달리 이해관계에 모여 만났다 헤어질 수도 있는 관계가 아니라 제2의 가족이 되어 1년 동안 붙어지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급이라는 '배'의 선장은 바로 '교사'다.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오던 키팅 선생님처럼) 나는 갈등의 중재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고민이나 사소한 투정을 들어주는 상담가일 수도 있고, 사탕을 나눠 먹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배를 탄 가족과 같은 동지이다. 그래서 1년을 마무리는 마지막 날 서로를 보고 아쉬운 마음에 애써 눈물을 삼키는 사이가 된다. (특히 6학년이 가장 그렇다)   


   자식이 SKY 대학 입학이 목표인 학부모에게는 그럴 거다. 아무래도 나 같은 교사보다는 족집게 학원 선생님이 더 신뢰가 갈 수밖에. 그런 선상에서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7살짜리 아이에게 '논술'과외'를 시키려는 엄마에겐 학교 교사들이 참 가르치는 것이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본인의 자식을 그렇게 키우겠다는 데 내가 판단을 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조금 그 아이가 걱정은 되긴 한다. 때 이른 수업이 아이에게 본능적으로 내재되어있는 호기심마저 없애버리지 않을까.요즘 교육트렌드를 잘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다양한 책을 많이 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아무래도....


  '학교 선생님은 가르치는 게 없다'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한다. 타성에 젖어 교재 연구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만든다. 그 날 '학부모 공개' 수업에서 숨을 죽이고 내 수업을 가만히 지켜보던 학부모의 눈빛을 기억해야 한다. 나에게 기대도 하고 실망도 할 학부모를 상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당장 한 아이의 출석 여부가 학원의 수입의 숫자를 바꾸는 상황에서 학원 선생님들은 얼마나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할지 생각해봄직하다.  


한 엄마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머리가 복잡해진 하루였다.

 하지만 내 기분이 왜 안 좋아졌는지 이유부터 따져가며

생각을 밀어붙이니 오히려 명료해졌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리고 도무지 자신 없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것 같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상처만 안 줘도 성공이다'라고 생각하는

하루살이 같은 교사로서 꿈도 야무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식이 학교도 입학하지 않았는데

'요즘 선생들은 가르치는 게 너무 없다'라고 생각하는 학부모에게

내가 노력한다고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마음이 조금 먹먹하다.         







+  

이 날 오전에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고,


오후에는 아이들과 경로당 위문공연을 갔다. (학교 사업 중에 하나임 )


혼자 보기 아까운 훈훈한 사진들을 공유한다.  


첫인사로 큰 절을 올리는 우리 반 학생들.


 



 

이어서 리코더 연주,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스피드 퀴즈,  


우리 반 래퍼 두 명이 부른 송민호의 '겁' 공연까지 마치고,


그리고 이어진 우리 반 장난꾸러기들의 '고추참치 쏭'


코믹한 춤 동작에 반응 최고!  






그리고 이것은 준과 혁이 제안했던 공연.


일명, '불닭볶음면' 빨리 먹기!


자신들이 매운 음식을 단숨에 먹어치우는 장기를 보여줄 수 있다며


나에게 불닭볶음면과  쿨피스를 사달라고 했다.


어르신들이 좋아할까 긴가민가 했지만


녀석들이 너무 하고 싶어 해서 허락했는데,   



반응은  정말 싸늘했다.

(재미를 위해 어르신들 맛보기로 준비한 라면을 모두 정색하고 거부하심)



얘들아, 공연이란 것이 그럴 수도 있지 뭐. 하하하  







그리고 연로하신 할아버지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던 코너.


'아이들과 팔씨름 한판'


의외로 어르신들의 손 힘이 무척 세서 나를 포함한 학생들이 다들 당황했다.


얘들아, 우유 더 열심히 마셔라.




이어서 안마해드리기가 있었는데,  


아이들 얼굴이 너무 많이 나와서 사진을 못 올리겠다.   


학교 사업 일환으로 간 건데,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시니 무척 뿌듯했다.    






++


그리고,     


이런 어쭙잖은 사진 몇 장 올려서,


내가 나름 열심히 하는 교사임을 강하게 어필하는 것처럼 보일 텐데...


그러면 제대로 본 거다.  흐흐

매거진의 이전글 다 알아도 모른척 속아줄 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