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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Feb 09. 2018

작은 졸업식, 그리고 깜짝 선물.

2018.2.8.



내일이 졸업식이다.

강당에서 하는 굉장히 공식적인 졸업식이전에,

보통 교실에서 조촐하게 '작은 졸업식'을 한다.


저번주에 개학을 하고

오늘까지 정말 너무 아찔할 정도로 바빴다.


통지표, 상장 정리, 서류 정리,

그리고 특히 졸업 공연 준비.


잠깐 쉴 틈이 나면,

'지금 쉬어도 되는 건가?' 하고 불안할 정도로

1분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는 하루하루였다.


그런 일상에 오늘은 작은 쉼표였다.


작은 졸업식에서

아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받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그런데 너무나 굉장했다.

(머 이런 센스넘치는 애들이 다 있대)



선물은 두가지.

우리반 아이들 모두가 쓴 편지와,

일년동안 나의 엽사를 모아놓은 앨범.


 





살다 살다...

내 못생김을 이렇게

가감없이 마주하긴 처음.


내가...

이 정도로...

못 생겼었나.








그리고 칠판에 빼곡히 적어놓은 졸업 메모들.





그리고 아이들이 써준 편지들.


한 장씩 소리내서 읽는데,


막판에 눈물샘 터짐.






우리반 미남, 송군이 쓴 센스 넘치는 편지.






이런 아줌마 되지 말래.

그래 커트에 뽀글이 머리는 나도 싫어.





우리반 말썽꾸러기 홍군이 쓴 편지.

국어책에도 3줄이상 쓰기 힘들어하는데,

편지는 길게 써서 깜짝.







위 편지 속에 '공룡광고' 설명.

1학기 국어시간에 광고에 관련된 단원에서

동기유발로 유튜브로 재밌는 광고모음을 보여주다가

그때 19금 광고가 나오는 바람에 일동 얼음이 된 적이 있었다.

(그 문제의 19금 광고에 공룡 2마리가 나옴.)





눈물 샘이 터졌던 편지.

지금 읽어보면 별거 없는데,


'우리 잊지 마요'


에서 울컥했다.








  

'잊지 마요'는 노래 가사에서도

어디에서도 굉장히 애잔하게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의미있게 기억되고 싶은 바램같은거 같아서.

(애는 그냥 가볍게 쓴 건데, 혼자 또 막 확대해석하고 오바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있었던 문제의 L군 편지.


이 편지로 눈물의 강을 건넘.

펑펑 울면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가장 못생김을 던져주었다.







맨날 나의 꼭지를 돌게 만들었던 L군.


어지간히 말 안듣고 말썽피우던 녀석의

속 마음에 감정 폭발.


너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L군.

내가 너를 어떻게 있겠니...진짜.






그리고 엽사 앨범 공개.


내가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을 넣어서


나의 언어 생활을 되돌아 보게했다.





첫 장은 분위기 좋음.


좀 잘 나온 사진으로 구성해주심.









그리고 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엽사 시작.






  

할로윈 데이때 재미로

해골 가면을 쓰고 출근한 적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 순간을 포착해 찍었다.







그리고 어느 점심시간에

내 머리 갖고 장난치고는 찍은 사진.

피젯 스피너에 얼굴 넣어 놓음.


내 필명도 넣어주었다.








이제 아래 나올,

이 말도 안되는 더러운 엽사는,

아이들의 꾐어 넘어가 내가 자살골을 넣은 셈인데

사건의 전말을 대충 이렇다.


여학생 중에 하나가


"쌤, 코수술 했죠?"


라고 해서,


내가 아니라고 하자.


"에이,, 했잖아요. 아니면 돼지코 해봐요!"


하는 순간 경솔하게도 나는....


돼지코를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 순간 누군가 바로 찍은 그 사진.




바로 돼지코 엽사.






코주름까지 돼지코 같애..

아오.






눈싸움 사진.


그리고 이어지는 눈 싸움 당시 굴욕 확대 사진.







이 사진 말고도 좀비 버전

턱 아래서 찍은 사진,

눈 반쯤 내리깐 사진,

바보 처럼 웃는 사진,

뚱뚱 바보같은 사진 등등

굉장히 다채롭게

나의 못생긴 버전이 가득하다.



하지만 훈훈한 마지막 페이지...






'선생님,예뻐요.'


(이것들이..누구 놀리니...지금?!?)




이 건 앨범 맨 뒷장.





윗 사진은 소풍 사진,

아래 사진은 첫 눈 오는 날 찍은 사진이다.


첫 눈 오는날.


"얘들아 첫 눈이야!"


"쌤, 첫 눈이에요, 소원빌어요!"


하며 호돌갑을 떨었던 그 날이 또 떠오르고,

아련한 추억 속에 녀석들이 자리잡고 있으니

또 지금 목이 메이고,


에혀..

이 몹쓸 감성.








내일은 본 졸업식.


애들이 아까 밤에 카톡으로 이런 문자를 보냈다.






 

나는 어릴 적에 항상 두번째였는데,


어째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심각한 첫번째가 되어간다.




내일 졸업식.


지금 또 눈물이 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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