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28.
지난 주말, 호텔에서
친구들과 1박 2일 푹 쉬다왔다.
아이들 뒤치닥거리하던 내 일상에서
굉장히 뜬금없이 호텔이라니...
이런 선물같은 주말의 발단은
지난 설 연휴때 시작되었다.
나의 친구 M양과 H양.
결혼 하고서도 명절 때 시간내서 만나곤 했는데,
몇년 전부터인가 나의 타이트한 명절 스케줄로
이들을 만날 수 가 없었다.
마지막 설 연휴 내가 집으로 가고 있을 때,
H양은 9개월 아가 엄마가 된 M양의 집을 방문하고 있었다.
나도 여유롭게 친구랑 수다나 떨고 싶은데...
차안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카톡 메세지를 주고 받던 차.
M양이 우리 셋 단톡방에서 말했다.
"야, H가 호텔 쏜대!"
H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잘 나가는 게임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연봉도 나와는 비교도 안되게 벌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많이 기대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쩌면 기분 좋아서 한 소리일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그냥 한 소리일 수도
그것도 아니면 호텔을 언젠가 쏘고 싶다는
그냥 막연한 호의의 표현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오, 진짜? 그래 언제 쏠꺼야?' 라고 선뜻 물어보기엔
어쩐지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덤덤해지려고 했다.
그.런.데.
골드 미스 H양이 요즘 잘 나가나보라고 생각은 했지만.
바로 다음 달인 3월에 곧바로!
호텔 스파 패키지로다가
아주 화끈하게 예약해주었다.
이런....요망한 녀석!
그리하여
나는 1박 2일 동안
친구덕에 호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H양. 내 전생에 너를 구했던가..
아니면 내가 후생에 너를 구하던지 해야겠구나.
그렇게 시작된
나의 요술같은 일탈의 기록
일단 토요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한 가로수길.
인터넷에서만 봤던 카카오 프렌즈 샵도 가보고...
너무 애정하지만 자주 못먹는'사케동'을 흡입했다.
한 치의 거짓이 없던 연어.
이런 핫 플레이스의 음식점은 정말 맛으로 승부한다.
기름 좔좔 생 연어와 심이 씹히는 와사비의 조화.
H양이 이번에 뽑은 포드 머스탱.
원래 노란색인데 검은색으로 래핑하셨다고.
여름에는 노란색으로 다시 타고 다니신다고 하니..
H양. 여름에 위에 뚜껑열고 시원하게 한번 태워줘.
호텔 체크인.
참 객실은 단정하고 고요하고 흐트러짐이 없구나.
아이들 없이 오기는 참 오랫만이라
어쩐지 적응이 안된다.
세심하고 사려깊은 데다가 미모와 지성을 모두 갖춘
H양은 체크인과 동시에 아줌마들의 스파 시간을 바로 세팅해줬다.
우리 아줌마들은 아이 좋아라하며
바로 스파 받으로 지하2층으로!
스파 받으러 들어가기 직전에
촌스럽게 한장 찍음.
M양과 내가 나란히 누워
눌리고 당겨지며 숨을 고르던 시간.
H양은 미용실에 가서 샴푸와 드라이를 하고 왔다.
스파를 받으러 들어가던 우리에게
"나 미용실가서 머리 감고 올게"
라고 말하던 H양에게
호텔에서 그냥 감으면 안되라고 묻고 싶었다면
내가 유행에 많이 떨어진건가.
어찌되었든 인형이 되어 돌아온 H양.
H양.
네 머리....
드라이가 너무 잘 되서.
가발같다.
그리고 Girl's time.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나와 M양의 화장을 꼼꼼히 보더니
가장 쌩얼에 가깝게 왔던 M양의 메이컵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 광경은
여자들만 아는 그 어떤
굉장한 교감 내지는 우정 다지기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숨죽이는 눈화장 타임.
화장품 구경한다고 침대위에서 알짱거리다가
M양의 아이쉐도가 볼에 찍히는 참사가 일어남.
나는 좀 가만히 있는 걸로.
투뿔 등심을 쏘겠다는 H양.
호텔과 스파도 황송한데 한우라니.
정말 고맙다.
너의 맘이 그러한데 거절하지 않을께...
사랑한다.
밤에 더 멋진 아메리칸 컨버터블카.
독일 차랑은 또 느낌이 다르네.
가로수길 식당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이태원에 있는 고깃집으로 감.
와인도 한잔씩 시키고...
다시 봐도 군침 도는 '투뿔 등심'
이 부드러운 육질과 감칠맛 나는 육즙을
어찌 이 사진 만큼 말로 표현하리.
( 이날 너무 맛있게 먹은 탓에 다음 날 집에와서 정육점에서 투뿔 등심 사먹음)
그리고 터질 것 같은 배를 움켜쥐고
이태원에서 유명하다는 타르트 맛집을 갔다.
배는 부른데
각 한 개씩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식욕을 부르는 이 비주얼.
"한 사람당 한 개씩 먹을까?" 하는 나의 말에
M양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 같았고...
나는 정말 몸만 좀 허락한다면
더 먹고 싶었다.
(결국 남김)
호텔로 돌아와 밤 늦도록 이어진 수다.
그리고 수다.
H양은 나와 너무 다른 세계에서 잘 나가고 있었고,
나는 너무 뭘 모르는 시골 아줌마가 된 것 같았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기전
M양과 브런치.
그래, 주말에는 일요일에는 브런치가 딱이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시 묻어두었던 모성애 다시 장전 중.
하루 동안 아빠랑 지지고 볶고 했을 아이들을 위해
또 수고했을 신랑을 위해 일본산 치즈 케익을 샀다.
(이것 또한 궁극의 치즈 케익 맛임)
친구, 우정, 데이트
이런 단어가 너무 안 어울리는 나의 일상들.
요즘 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로
하루 스케줄이 버겁기만 한 나에게
정말 달콤한 주말이었다.
결혼하면 다들 가족챙기느라 여념이 없다지만
그 핑계로 친구들을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갈 수록 점점 줄어들어간다.
언제든 만나도
전혀 안 어색한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무슨 말을 해놓고
이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한번 더 곱씹을 필요 없는 사이도 별로 없다.
나이를 들다보니
좋은 친구는 그리 뭐 거창한 게 아니다.
만나면 편하고 오랫만에 봐도
어제 만난 듯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이다.
스파가 옵션으로 딸린 호텔팩과
10만원이 훌쩍 넘는 한우 등심에 와인을 화끈하게 쏘는,
그런 친구라면 더욱 더 좋은 친구임에 틀림없지만 말이다.
+
H양.
넌 아직도 완전 청춘이더라.
그 넘치는 에너지와 멋짐은
내 마음속에 잘 간직해둘께.
스카웃된 그 직장에서 권투를 빈다.
담엔 내가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