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4
엄마 속옷 서랍 안 쪽에 상자가 하나 있었다.
안방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엄마 옷으로 대충 입어볼까 하고 서랍을 열었나보다.
상자 안에는 우리 삼남매가 그동안 써드린 편지와 카드가 소복히 쌓여있었다.
크기도 제각각인 봉투엔 '사랑하는 아빠에게' ' 부모님께' 가 씌여있다.
'이런 걸 다 모아두셨네' 하며 다시 상자 뚜껑을 닫았다.
그 정성에 놀라면서도 엄마가 살짝 미련해보이기도 했다.
어버이날이라서 학교에서 쓰라고 해서 쓴 건데...
매년 뻔한 내용으로 가득한 카드와 편지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렇게 상자에 고히 모셔져 있다 싶었다.
큰아이 낳고 2시간마다 수유를 할 때,
'이 핏덩이를 얼마나 키워야 말도 하고 뛰어도 다닐까?' 할 정도로 육아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작고 여린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에 종종 압도 당하곤 했다.
걸핏하면 얼굴이 부엇고, 잠이 부족한지 항상 눈이 시거웠다.
밤에 아이에게 수유를 하면서 신랑한테 이런말을 했었다.
"오빠, 이 아기가 커서
'고맙다' 라던가 '사랑해'라고 하면
나 진짜 감동할 것 같아.
아이는 아마 그냥 하는 소리일텐데,
지들은 몰라도 나는 이렇게 힘들게 키운거 아니까
그 말을 더 깊게 받아들일 것 같아."
지난 어버이날 아이가 유치원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줬다.
"엄마, 아빠 사랑요해"
연필로 삐뚤빼뚤, 순서도 틀린 문장이었지만 충분했다.
엄마는 그 속옷 서랍 속 상자에
뭉클했던 자신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모으기 시작하는 이유처럼 말이다.
+
6살 아들이 써준 어버이날 카드.
선생님이 보기로 보여준 글씨를 따라 그린 것 같은데, 순서를 헷갈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