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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n 07. 2016

부부 살림꾼의 탄생

2016. 6. 6.


살림 슬럼프에 다녀온 여동생의 집들이


  집안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주식시장의 그래프처럼, 살림에도 그런 리듬이 존재한다. 삼성같이 우량주에 해당되는 살림꾼은 주가 변동이 덜하겠지만, 나같이 지방 중소기업주에도 못 미치는 아줌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슬럼프에 빠진다. 그게 어떤가 하면, 빨래 건조대의  빨래를 그냥 두거나, 세탁기에 탈수된 뺄래들을 보고 자꾸 외면하는 경우다. 요즘 내 살림 컨디션은 계속 하락 중인데, 이 와 중에 유래 없는 살림 주가를 찍고 있는 여동생의 집들이에 다녀왔다.


"완전 북유럽 스타일이네"

 부드럽게 열리는 느낌마저 퀄리티가 느껴지는 중문을 열었다. 거실 전면에 원목으로 주문 제작한 얕트막한 책장이 보인다. 검은색 레일 등이 책장 위를 은은하게 비춘다. 소파는 광이 없는 검은색에 부들부들한 양가죽이다. 소파 옆 차콜색 스탠드와 기하학무늬 매트가 잘 어울린다. 선인장 세밀화 액자까지  3종 세트가 요즘 유행하는 '북유럽 스타일'의 인증서 같았다. 이 자잘한 소품과 가구들을 보고 있자니 참 감회가 새로웠다.  얼마 전 우리 집 장식용 벽 선반을 보고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했던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니까. 게다가 말끔게 잘 정리된 부엌은 한동안 가출했던 요리 충동을 일으켰다.


'잡지에 나올만한 여동생 집'에 대한 우리의 수다

 

내가 현관에 벌집 모양 타일을 칭찬을 하자, 모든 인테리어 공사 과정을 수시로 목격하신 엄마가 거든다. 

"이쁘지? 얘 이거 잘해놨지? 수입타일이야." 

"응. 수입은 맞아. 중국산" 라고 동생이 나에게 말했다.

"어머, 하려면 좋으거 하라니까 왜 중국산을 해"라는 하며 엄마는 말을 얼머무렸다. 

엄마의 '수입=고급'이라는 공식에 중국산은 수입이 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누나, 잡지에 나오는 집 같다' 하며 남동생은 감탄을 연발했다. 올케는 이렇게 넓은 집에서 애 키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 집 평수가 정확히 자기네 집 평수(24평) 두 배'라는 깨달지 않아도 될 진실을 발견했다. 나는 서울에 살면 집 값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냐고 위로했다. 그리고 두 집의 매매가를 캐물어 친절하게 비교를 해주었다. 결국 남동생과 여동생 집의 평수는 두 배 차이지만 집 값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올케는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위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집도 없는 전세살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고 올케가 느낀 씁쓸함의 몇 곱절을 건네받았다.(여보 우린 언제 내 집 마련해?)


광명 이케아에 들락날락 거리더니 흔치 않은 아이템들이 보인다. 사각 모양 세면대와 옆으로 열리는 욕실 수납장은 난생 처음 본다. 우리보다 더 신난 건 아이들이다. 노란색 벽지에 설치된 칠판은 분필을 접할 기회가 없는 녀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붙박이장 공간에 꾸민 아늑한 '아이들 비밀공간'에는 서너명이 땀을 삐질대며 들어가 문을 열고 닫고를 반복했다. 다용도실에 고기 굽는 용도의 접이식 식탁을 부착해놓은 것도 참 실용적이다. 녀석이 언제부터 이렇게 살림 아이디어가 넘쳤나 싶다. 예전에 여동생의 신혼집에 다녀오신 엄마가 '집안 해놓은 꼴이 말도 못 한다'며 손사래를 치시곤 했는데, 지금은 집안 인테리어나 살림 상태가 흠잡을 데가 없다.



살림꾼이 되어버린 여동생 부부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여동생 부부의 달라진 태도이다. 이사전 주로 스마트폰 삼매경이던 제부는 눈빛부터 달랐다. 시키지 않아도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두세번 왔다갔다해 모두를 당황케 했다. 심지어 아이방 한쪽 벽면을 노란색을 칠하고 칠판도 직접 설치했다. 동생말로는 칠판 DIY 후에 "이제 또 할 거 없나?"라는 명언을 동생에게 남겼다고 한다. 설거지 통에 그릇을 마냥 쌓아놓는 편이었던 여동생동 군기가 바짝 들었다. 수시로 싱크대 앞에서 씻고 닦고를 반복했다. 나른한 오후 시간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다고 하질 않나, 아이들이 어지러 놓은 바닥 장난감을 바로바로 치우질 안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집들이 손님들은 "이제 너네 집 생겼다 이거냐"라는 말로 낯선 느낌을 강하게 표현했다. 여동생 부부는 정말 살림꾼이 되어있었다. 집안에 어른 8명, 아이 5명이 돌아다니며 실시간으로 흔적을 남겨도 금방 깔끔해졌다. 수시로 줍고 닦는 주인 때문에 괜히 모두 좌불안석이 되어 조금씩 줍고 치운 오후였다.


1박 2일의 집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박 주가를 치는 살림의 기운을 받았는지

한동안 놓았던 우리 집 인테리어나 청소 상태를 눈으로 잠시 점검했다.

우리 집은 이사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거나.

나와 같이 살림 슬럼프기에 있다면 아주 도움이 될 만한 팁을 하나 주고자 한다.

(큰 빨래를 다 개고 자잘하게 남은 양말들을 보면 귀찮아지는 당신이라면 주목하시길)


1. 크기, 색, 모양이 똑같은 양말을 대량 구입한다.(다른 양말은 아깝지만 과감하게 폐기)

2. 양말만 넣을 서랍을 한 칸 마련한다.

3. 세탁후 몽땅 그 서랍에 넣기만 한다.


어차피 다 같은 양말이니까 짝을 찾을 필요도 없고 갤 필요도 없다.

기발하지 않은가?

이 아이디어는 눈뜰새 없이 바쁜 대학병원에서

눈물 나는 레지던트 생활을 하던 '의사 부부'에게서 나온

고학력 브레인 표 아이디어임을 분명히 밝혀

처음 들었을 때 드는 '한심한' 느낌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고자 한다.


아, 그 '의사 부부'는 내 여동생 부부이다.







여동생의 집들이 이전에

이사를 했던 에피소드를 못보신 분은


https://brunch.co.kr/@coologi08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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