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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숑로제 Jun 10. 2016

엄마, 이제 우리 같은 편이야.

2016. 6. 9.




이틀 연속 삼계탕으로 저녁을 때우다

                                                                                                                                                                                  엊그제 엄마 친구분 중 삼계탕 집을 하시는 분께서 '삼계탕' 2인분을 포장해 깜짝 선물해 주셨다. 마침 그날 신랑 스터디가 있다기에 한 개만 데워서 아이들과 오래간만에 삼계탕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신랑이 모임 때문에 또  늦는다고 하자, 냉장고에 하나 남은 삼계탕이 자꾸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 냉동실에 들어가면 기억할 수 있겠니? 냉동실 꽉 차서 자리 찾다가 내가 니 발등에라도 떨어지면 모를까'

'오늘 안 먹으면 냉장보관이라도 나 맛이 갈지 모르는데... 요즘 날이 무척 덥더라'

'내가 인삼에 대추에 몸에 좋은 음식인 건 알지? 아이들한테도 영양 만점이야' 

'너 어제도 애들이랑 아등바등 피곤해 보이던 데, 오늘도 밤에 혼자 애들보잖아. 밥.... 할 수..있..겠어?'


요망스러운 삼계탕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어제도 삼계탕을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전날 줬던 같은 메뉴를 또 주자니 미안했다. 그래서 미리 바람을 좀 잡았다.


"얘들아! 어제 너희들이 삼계탕을 정말 맛있게 먹길래, 엄마가 또 준비했지!"

"머?"

"맛있는 삼. 계. 탕! 너희들 진짜 좋아하잖아. 맛있게 먹자!"


어린이 유치원 뽀미 언니로 둔갑해 신나게 분위기 띄워놓고, 목소리 톤을 높여 말을 많이 했더니 아이들도 얼떨떨해져서 먹는 분위기였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별말 없길래 괜찮은가 싶었다. 그런데 어제 애들과 자려고 누웠을 때였다. 딸내미가 잠에 쉽게 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화났어."

"왜? 아까 엄마가 무섭게 화내서?"

"아니, 엄마가 오늘도 닭고기랑 죽 줘서. 나 많이 속상해"


껌껌한 안방 천장에 붙은 야광별 스티커를 가만히 쳐다보며 대답을 못했다. 


그래서 오늘 한상 차려봤다. 뭐든지 방금 한 반찬이 제일 맛있는 법, 저번에 건강 멸치볶음 한다고 설탕을 조금 넣더니 너무 안 팔려서 이번엔 올리고당을 넉넉하게 뿌려봤다.(반응 최고) 고구마도 간간하게 잘 조려지고 검은깨를 뿌리니 그럴싸했다. 차돌박이를 넣은 된장찌개도 구수하고, 카레가루와 마늘을 듬뿍 발라 구운 고등어는 화룡점정이었다. 보글보글 지글지글 따뜻한 밥상. 왜 고등어를 굽고 된장찌개를 새로 끓여 식탁에 올리면 밥상이 그렇게 정겹고 근사해 보이는 걸까? 덩달이 나도 무척이나 야무진 주부가 된 기분이 드는 건 보너스다.




아빠가 엄마에게 늘 하던 잔소리,  
'국 좀 조금만 끓여'


 아빠가 엄마한테 잔소리하던 것 중에 하나가 '국 좀 조금만 끓여'였다. 우리 엄마는 아빠가 그러거나 말거나 항상 솥단지 같은 냄비에다 국을 끓여내곤 했다. 좀 커서는 나도 합세해서 '그래 엄마, 조금씩 끓여. 딱 몇 끼니 먹을 것만"하고 몇 번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대꾸도 안 하고 묵묵히 듣고만 계셨다.


결혼하고 나서 언젠가 엄마랑 얘기할 때였다. 엄마는 아빠가 국 좀 쫌만 끓이라는 잔소리를 한다고 불평을 했다.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투덜투덜) 나는 아빠의 입장을 좀 설명했다. 어릴 적 항상 아빠와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엄마, 그거 어려운 일 아닌데, 그냥 조금만 끓여. 많이 끓이는 게 더 힘들지 않아?"


그랬더니 엄마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내뱉은 말,

"야. 어떻게 매 끼니마다 국을 끓이니? 생각만 해도 지겹다"


아....


내가 삼계탕을 두 번 준 것처럼, 

엄마도 겁나게 먹성 좋은 삼남매를 키우면서 

나름 요령을 터득하셨나 보다. 


이젠 엄마한테 국 좀 쫌만 끓이라는 말은 못 할 것 같다.




+

엄마, 우리 이제 같은 편이야.ㅋㅋ


고마워, 나 그렇게 해 먹여줘서.

우리 애들한테 엄마만큼 해줘야 되는데...

노력해볼게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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