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며 익숙한 곳 먼저.
일정이 한 달이나 되었기에, 처음 4일은 나하시에서 지내기로 했다. 오키나와 공항이 있는 가장 큰 도시인 나하는 제주도의 제주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 나에게는 조금 익숙해진 나하시에서, 행복한 셀프 감금 한 달을 시작했다.
2월 8일, 오키나와는 봄이었다. 1월 초에 벚꽃 축제를 하는 지역이기에, 2월 초는 벚꽃이 조금 남아있는 정도이다. 벚꽃 개화 1달 지난 시점이니 한국 날씨로 환산하면 5월 초 날씨이다. 너무 좋은 날씨에 오키나와에 던져졌다(스스로 던졌다)
일터를 떠나왔고 앞으로 반년 후에도 여행 중일 것이기에, 뇌를 비운 채로 온전히 따뜻한 나하를 즐길 수 있었다. 어려운 생각을 할 게 하나도 없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걷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했던 곳들, 전에 왔었던 기억이 있는 곳들을 걷고, 안 가본 곳도 걷고, 계속 걸었다.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고뇌를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동네를 누비는 게 너무 좋아 싱글벙글 걸었다. 나하가 좋은 건지, 내 상황이 좋은 건지. 날씨가 적당해서 끝없이 걸을 수 있었다. 한국의 추운 2월을 보내다 갑자기 봄 날씨를 맞이하니, 장소도 날씨도 완벽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조금 쉬거나, 뭔가를 구상하거나, 간단한 작업들을 할 때는 국제거리 스타벅스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테라스에 앉아서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유리벽을 사이로 관광객들이 계속 지나가는 곳, 아주 좋아하는 곳이다.
짝이 나보다 퇴사가 늦어서, 오키나와는 나 혼자 왔다. 조금 외로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온전히 혼자 지내며 내 인생의 문제들을 돌이켜보는 시간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었다. 오키나와에서의 혼자 한 달간, 대부분의 시간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분노했다가, 답답했다가, 시원해졌다가, 일종의 깨달음도 얻었다가, 그렇게 반복되는 인생 고찰의 시간이 반복되었다.
'생각해 보니 열받네', 라든가 '돌이켜 보니 참 좋았다', '돌아보니 고맙네'. 이런 되뇜들의 연속이었다. 사람이 혼자 오래 지내면 다들 그렇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혼자 간 나하에서 갓 퇴사한 자의 들뜬 발걸음으로 4일을 보냈다. 나하의 관광 코스들은 워낙 유명해서 특별히 적을 얘기는 없다. '시키나엔' 얘기만 살짝 할까 한다.
시키나엔은 이번 여행에 처음 방문했는데, 오키나와의 전신인 류큐국 왕족들의 정원이라 한다. 일본식으로 잘 꾸며진 큰 정원을 거닌다 생각하면 된다. 정원이나 수목원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참 좋은 곳이었다.
혼자 구경하던 중, 할아버지 두 분이 보였다. 친구사이로 보였고, 한 분이 계속 설명을 해 주며 같이 구경을 하셨다. '멀리 사는 친구가 놀러 온 걸까? 너무 보기 좋다, 우리 아빠한테도 저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아빠가 친구랑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빠들은 늘 여유가 없으니까. 또 언젠가 엄마는, 슬픈 말투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친구가 없잖아~'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교회 아주머니들과 가깝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이지만, 무슨 얘기인지는 알 것 같다. 저 할아버지 둘처럼 친구와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건 본 적이 없으니. 엄마 아빠 서로가 가장 가까운 친구이겠지만, 때로는 오래된 다른 친구들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그들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니 짐작일 뿐이다. 할아버지 두 분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어, 앞으로 부모님과 더 많은 곳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진하게 했다. 가이드하는 할아버지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보기 좋은 두 친구를 뒤따르며, 고즈넉하고 거대한 정원을 잘 구경하고 나왔다.
구경을 마치고 시키나엔의 외벽을 따라 마을을 걷는 길도 참 좋았다. 작은 주택들과 논밭들이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속 시골 마을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거닐다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국제거리로 돌아왔다.
다시 국제거리, 매일 밤 무한 산책의 시작이다. 화려한 국제거리는 대로를 중심으로 파생된 골목들이 끝없이 복잡하다. 구글맵을 자세히 보면 느낄 수 있다. 맘먹고 모든 골목을 탐색해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밤 산책 하다가 맥주도 한 잔씩 마시고, 타코야끼도 사 먹고, 커피도 마시고. 걷다가 아담하고 조용한 이자카야가 보이면 한 잔 더 마시고. 그렇게 나하에서의 며칠을 보냈다. 언젠가 더 이상 노동을 할 필요가 없게 되면 즐길 게 얼마나 많을까... 이런 꿈같은 생각들을 하며, 나하에서의 매일 저녁이 지나갔다.
하루는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 다음날 아침 눈 뜨자마자 해장을 위해 ‘오키나와 소바’ 가게를 찾았다. 근처 가게 중 평점도 좋고 ‘김치가 너무 맛있다’는 극찬 리뷰가 많은 곳이 있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달려갔다. 소바 국물은 시원하게 속을 달래 주었지만, 이럴 수가... 김치가 완전히 설탕 덩어리다. 아 이거 아닌데... 싶었다. 일본 사람들의 김치 취향은 달달한 김치인가 보다.
오키나와 소바에 대한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한번 적어보겠다.
마음 편하게 3박 4일간 익숙한 나하를 누비고, 이제 장기간 나를 품어줄 온나손으로 떠난다.
여행의 전체 기록을 정리하다 보니 느낀 점이 있다. 아무리 관광보다 살아보기를 우선으로 했다지만, 그래도 더 좋은 장소, 더 맛있는 음식점을 가볼걸 하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았다.
그래서, '다시 갈 준비'를 목적으로, AI의 힘을 빌려 내가 갔던 장소들의 맛집, 명소를 조사해서 블로그에 정리하기로 했다. 언젠가 추억의 장소를 다시 가게 되면, 더 맛있는 음식과 더 좋은 곳들을 가기 위해.
이 여정을 따라가며 같이 정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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