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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un 17. 2021

예전의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들기름에 묵은지를 볶았다. 혹시 엄마 드시기 매울까 봐 청양고추 대신 풋고추를 조리 마무리에 송송 썰어 넣었다. 드시고 싶다는 김치볶음은 완성되어 작은 찬기에 담고 버섯 불고기는 국물이 자작하게 볶아 잠시 식혀두고 삭힌 고추장아찌를 챙긴다. 과일은 드시기 좋게 적당한 크기의 밀감이랑 체리를 씻어 보기 좋게 용기에 담는다. 일일이 1회용 찬기에 엄마 성함을 네임펜으로 크게 적는다.

 엊그제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와 통화 중 드시고 싶은 것을 여쭤보는데 별거 아닌 김치 볶음이 드시고 싶다 하셔서 오늘 부리나케 음식을 장만해서   꾸러미를 싼다. 혹시 빠진 것은 없는지 하나, 둘 목록을 점검하고 메모를 지워나간다. 날씨는 아침부터 햇볕이 강하니 정오가 지나니 기온이 가파르게 오르는데 다행히 시원한 바람이 많이 불어 크게 더운 줄 모르겠다.

 오전엔 편두통약을 처방받으러 내과에 다녀오고 장을 보다 보니 시간이 휑하니 가버렸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드시고 싶다는 음식을 조리하고 어쩌다 보니 시간이 2시가 다 돼간다. 옷을 급하게 입고 다시 가져갈 것을 살펴보는데 동생이 보낸 카스텔라가 빠져있다. 쇼핑백에 넣기 전에 엄마의 이름을 크게 적는다. 요양원 생활이 단체 생활이라 요양원에 반입되는 물건들에는 입소자의 이름을 빠짐없이 기입해야 전달도, 보관도 용이하다.

 지난번까지는 같은 방 식구들끼리 나눠 드시게 좀 넉넉히 넣어드렸는데... 안타깝게도 할머니 한분이 다른 분이 나눠드린 음식을 드시다 질식사로 숨지시는 바람에-요양원은 입소자의 가족이 가져온 외부 음식은 철저히 당사자만 드실 수 있게 1인분만 가져오도록 원칙을 세웠다. 최대한 적게 담는다 했는데도 이것저것 가짓수가 많다 보니 쇼핑백이 묵직하다.


  

 햇살 따가운 버스 정류장  간이 의자에 앉았다. 바람결이 고운 날이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뺨을 간지럽힌다. 그 고운 손길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정류장 알림판에 미세먼지 좋음이란 글자와 환하게 웃는 모습의 이모티콘이 떠있다. 아주 잠깐 소풍 가기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버스로 10분쯤 가면 엄마가 계신 요양원이 나온다. 저만치 기다리던 버스가 보인다. 앉아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버스를 탔다. 달리는 창밖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비록 아직 면회는 안되지만-방문객은 1층 로비에 물건의 목록과 이름을 적고 맡기면 관리자들이 입소자들에게 전달해 준다.-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실 엄마를 생각하면 나도 같이 흐뭇해진다.

'반찬이 엄마 입에 맞아야 되는데... '

 

 버스에서 내려 2~3분 거리에 요양원이 있다. 저만치 내 눈앞에 서 있는 건물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갑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노심초사 애쓰신 엄마가 이제는 반대로 자식들의 돌봄을 받는다.  생전 자식들에게 부탁할 줄 모르시던 분이 필요한 것을 일일이 말씀하실 때를 보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져 가슴 한편이 아릿하게 저려온다.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항상 종종거리며 서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대가족의 외며느리인 까닭도 있겠지만 전형적인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며느리, 엄마의 모습이다. 그녀의 삶 속에는 당신 자신은 죽어 없어지고 가족만 존재하는 무한의 헌신의 삶. 그 속에 엄마는 존재했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 민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두려워하는 지극히 깔끔한 분. 자식들한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자라며 '엄마같이 살지는 말아야지. ' 하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며 자랐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도 나이가 한해 한해 먹어갈수록 아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점점 엄마를 닮아간다. 싫다고 그렇게 도리질을 쳤는데도 엄마의 짙은 그늘이 내게 느껴진다.



 요양원 초소 앞에서 방문록에 내 이름을 적고 가져온 물품들을 적는다. 관리하시는 직원에게 몇 번이고 빨리 전해드릴 것을 부탁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선다. 채 5분이 안 걸렸다. 너무 아름답고 화창해서 슬픔이 묻어나는 날이다. 눈을 들어 잠시 허공을 응시한다.

 한참 통화 연결음이 울려도 전화를 안 받으신다. 끊으려던 참에 수화기 너머 엄마의 탁하고 갈라진 음성이 들린다. "너 은경이구나. 나 기저귀 갈고 있었지... "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왜 그 순간 아무 말도 안 나왔을까... '부끄러움도 많고 총기도 좋은 엄마였는데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엄마가 아니다. 엄마는 언제나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아, 우리 엄마도 늙는구나. 우리 엄마도 변하네. 그렇구나. 울 엄마도 변하는구나... ' 목이 메어 왔다.


 이타적인 삶에서  조금은 자신을 챙기는, 스스로를 아끼는 삶을 사시기를 나는 원했지  이렇게 엄마가 늙고 초라하게 허물어져 갈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나 보다. 엄마는 우리 곁에 항상 울타리 같은 모습으로 굳건히 서 계실 줄 알았다. 여자의 삶이-엄마의 인생이 가여웠다.


 

 엄마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여다본다. 고운 미소가 "괜찮다. 정말 괜찮다" 고 밥 잘 먹으라고 말은 한다. 나도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어스름한 저녁 항상 엄마한테 걱정거리였던 내가 씩씩하게 밥을 꾸역꾸역 먹는다.

 

 아침 일찍 휴대폰 벨이 울린다. 엄마의 환한 음성이 들린다. 어제 내가 준비한 음식들을 맛있게 드셨다고 고맙다고 하신다. "엄마 또 해 드릴게요. 드시고 싶은 거, 필요한 거 말씀하세요. 내 걱정은 말고요... " 수화기 너머 엄마가 웃는다. 그 웃음에 나도 힘이 난다. 어제의 슬픔은 이제 내 몫이 아니다.

 '아기라도 좋아요. 이제 내가 돌봐드릴게요. 사랑해요 엄마. 난 괜찮아요. ' 마음속으로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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