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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Jan 11. 2021

어느 예술가의 독백 속으로...

쥐스킨트의 '콘트라바스'를 읽고.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1949년 뮌헨에서 태어난 독일 출신 작가이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여러 편의 단편을 썼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한 콘트라바스 연주가의 고뇌와 일상을 다룬 '콘트라바스'라는 작품이 문단에 알려지면서(극찬을 받음)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나 역시 그의 열성적인 팬으로 그만의 독특한 세계가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을 새해를 맞아 다시 열독하고 있다.

 오늘은 작은 삶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번민을 담담하게 풀어나간 콘트라바스 주자, 소시민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콘트라바스'는 모노드라마로 더 잘 알려진 희곡이자 문학작품이다. 소설 주인공은 인생의  깊고 쓴맛을 콘트라바스를 매개로 해서  끊임없이 하소연한다. 그 상대는 독자나 관객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그의 독백이, 하소연이 어느 때는 잔잔하게, 어느 때는 열정적으로, 어느 때는 격렬하게 악상의 기호처럼 수시로 변해가고 우리는 그의 독백에 어느새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오케스트라를 삶의 축소판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네 삶을 대변하는 현악기 하나를 고르자면 어떤 것이 있을까? 실제로 우리가 사는 삶의 평균값은 그다지 아름답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화려한 것과도 거리가 멀다.

 삶은 오히려 콘트라바스처럼 무겁고 깊은 저음에 가깝다. 그래서 울림이 있다. 누구나 마음 깊숙한 곳을 찌르는 울림통 한 가지씩은 지니고 산다.

 투박하고 못났지만 오케스트라에서 서열이 제일 낮고 공연 중 관객들의 시선도 받지 못하지만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악기.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삶- 존재는 콘트라바스처럼 평범하고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하나하나 소중하다. 왜냐하면 그 하나하나가 전체를 이루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쥐스킨트는 오케스트라를 삶의 축소판으로 바스 주자 즉 주인공을 우리 같은 범인으로 설정하여 극을 이끌어 가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어느 때는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으로 바스가 반드시 끼어 있어야 오케스트라가 완성된다고 하고 또 어느 때에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오케스트라 내 3열에 위치한 자기 위치를 '개인적 재능의 위계질서.''능력의 잔인한 위계질서.'라고 인간사회의 복사론이라 비교하여 한탄하곤 한다.

 그런데 그의 이런 량 맞은 독백, 넋두리가 자꾸 신경 쓰인다. 어느 예술가의 고뇌와 번민이라 하기엔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내 얘기 같기도 하고 내가 아는 누군가의 얘기와도 흡사 닮아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이 주는 매력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음악적 역량과는 상관없이 여러 악기를 전전하다 콘트라바스를 시작했다. 그는 소설에서 말한다.

 "장담컨대 애당초 바스 주자가 되려고 태어난 사람은 없어요. 온갖 종류의 좌절과 우회를 반복하다 어쩌다 여기에 닿게 된 것뿐이죠. 삶의 굴곡을 겪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나 역시 내가 꿈꾸던 삶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의 이야기일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기대, 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건 정말 행운이겠지만 내가 원치 않는 삶을 산다 해서 그것이 소중하지 않은-쓸모없는-것은 아니다.

 누구나 주연으로서의 삶을 꿈꾼다. 하지만 주연과 조연을 가르는 기준은 뭘까? 번듯한 직업과 부, 사회 특권층은 주연이고 삶에서 소외된 나머지 소시민들은 조연이라고 누가 분류해 놓은 걸까?

 오케스트라의 1열 주자들을 받치고 있는 2열, 3열이 없다면 결코 1열의 주연들은 주목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조화 속에 살아갈 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소설은 중간중간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삽입해 글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서글픈 짝사랑 이야기이다. 그는 오페라단의 메조소프라노 여가수에게 사랑에 빠져있다. 둘은 애당초 맞지 않아 보인다. 콘트라바스와 메조소프라노가 상징하는 음역이 상극이고 게다가 여자는 바스 주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잘 나가는 성악가와 어울린다.

 이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큰 결심을 한다. 총리가 참석하는 공연에서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공무원 생활을 접을 각오를 한다. 그러나 소심한 우리의 주인공의 바람이 실현될지는 모르겠다.

 이건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쥐스킨트의 '콘트라바스'는 대략 70페이지짜리 짧은 단편이었지만 재미와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삶의 철학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도 주연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싶은 때가 있었다. 아니 아직도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는 그런 미련을 못 버리고 울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 글을 두 번, 세 번 읽으며 주인공의 독백을 따라 하며 세상에 나란 존재가 꼭 필요하고 우리는 각자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조명이 되어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 홀로 잘난 것은 없다는 것. 그래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진실을 다시금 깨우쳐 준 짧지만 큰 울림 있는 책이었다.

 추운 겨울 저녁, 독서에 별로 취미가 없는 분들도 쉽게 재미있게 읽으실 것 같아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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