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550자. 원고지 440매 분량의 중편 소설 「불법만 아니면 됩니다」 연재를 끝냈다. 밀리의 서재에 매주 일요일 한 회씩, 스무 번을 올렸다. 꼬박 5개월이 걸렸다.
시작은 우연히 접한 기사 한 편이었다. 어르신들의 소소한 부탁을 들어주는 일본의 시니어 스타트업 '미카와야21'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기사 속 여러 문장 중 유독 한 구절이 눈에 걸렸다. 그들의 철학 중 하나였다.
"불법이 아닌 한, 어떤 의뢰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기서 닫혀 있던 상상이 열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초고령화 사회, 행정의 손길이 닿지 않는 노인들의 작은 곤란함을 해결해 주는 이웃 돌봄 센터 '옆집'. 전구 교체, 병원 동행, 말벗 서비스. 그렇게 노인들의 일상을 돌보던 어느 날, 한 할머니가 50년간 묵혀 왔던 부탁을 꺼낸다.
"이 사람을 죽여줄 수 있어?"
그 은밀하고도 서늘한 부탁 앞에서 "불법만 아니면 됩니다"라는 센터의 원칙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이 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처음엔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자키 시리즈처럼 코지 미스터리의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잔잔하고 따뜻하되 어딘가 쓸쓸한, 따뜻한 일상과 차가운 복수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이야기를 상상하며 커버 이미지도 그에 맞춰 지었다.
하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직접 소설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괴로운 일이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눈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머릿속에는 분명 완벽한 장면이 있었다. 빛의 각도, 등장인물이 내뱉는 말의 온도, 장면과 장면 사이를 채우는 공기까지. 그런데 그것이 막상 글자로 내려앉지 않았다. 그동안 좋아하며 읽어온 작가들의 문장이 주는 무게가 오히려 내 발목을 잡았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타협하려 할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유려한 문장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 머릿속의 이상과 내 손끝의 현실, 그 잔인한 거리를 매주 확인하는 일은 고통에 가까웠다.
빈 모니터에 단어 하나 덩그러니 쳐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전업 작가도 아니면서 귀한 주말에 이런 시간을 써도 되는 건지, 이 시간에 차라리 다른 생산적인 무언가를 했더라면 어땠을지 자문하는 날도 잦았다. 어색한 문장 하나를 힘겹게 고치고 나면 애써 쌓아 둔 앞 문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들뜬 화장처럼 겉도는 대화, 작가의 의도는 알겠으나 독자는 설득되지 않을 억지스러운 장면들. 고치면 고칠수록 실타래가 더 엉켜가는 것 같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엔 쓰던 초고를 덮어두고 무작정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찬 공기를 맞으며 묵묵히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막혔던 장면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러면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썼다. 내게는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끝내고 나니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구상했던 날 선 질문들이 다 담기지 않았고, 코지 미스터리 특유의 결이 원하는 만큼 살아나지도 못했다. 인물들이 내 문장 안에서 충분히 숨 쉬지 못한 장면도 눈에 밟힌다. 그래도 스무 번의 마감을 지켰다. 중간에 도망가지 않고 끝내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나 스스로도 잘 안다.
부족한 글인데도 기꺼이 시간을 내어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이 계셨다. 묵묵히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도 있었다. 단 한 분이라도 내 이야기를 읽어주신다면, 매주 일요일 오전 노트북 앞에서 씨름하던 그 고단한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은 연재를 마친 지금도 같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이제 잠시 중단해 두었던 다음 소설 「바디 미싱 클럽」의 원고를 다시 펼쳐 마무리해야 한다. 또 얼마나 속을 끓일지, 어색한 문장을 붙들고 또 얼마나 깊은 한탄을 내뱉을지 안 봐도 뻔하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기꺼이 빈 화면에 마침표를 찍는다. 내 이야기를 기다려주는 읽는 이들이 있고, 무엇보다 내가 아직 쓰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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