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디오 Sep 05. 2016

112번 고갱님!

#월세(월요일세시)냅시다 By René  

2016년 9월 5일 월요일 세시 하나은행에서

By René


은행에서 가장 열일하는 친구는 아무래도 번호표 기기가 아닐까 싶다. 실시간으로 몇 명 남았는지 보고하는 것은 물론 오는 사람마다 그를 거치지 않고서는 당당히 창구로 나아 갈  수 없다. 그래서인지 그가  '메롱'이라는 사회적 언어를 터득한 것이 이해된다. 당신이 오기전부터 혀를 내밀어 '사람 겁나 많지롱' 하고 말하고 있다. 그 말로는 바싹 마른 혀를 당겨지는 것이지만.


 거의 모든 은행의 번호표 기계 친구 옆에는 휴식시간 대신 혼잡시간이 적혀있다. 직장인, 학생에게 점심시간은 휴식의 시간일지 몰라도 이 친구에게는 혀를 더 많이 내밀어야 하는 시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시간이 그렇다. 은행의 업무시간은 09:00부터 16:00까지 그의 혼잡시간은 이와 일치한다. 단 한 번도 여유로운 은행을 본 적이 없다.


 16시가 되면 모든 유리문이 창살 없는 철문으로 바뀐다. 그가 내뱉은 혀에 적힌 번호에 저당잡힌 철문 안의 수감자는 애꿎은 뺄셈만 하고 있다. 번호를 빼고 시간을 빼고 (왜 살은 안빠지는 거야) 하나씩 수감자들이 탈옥한다.


 점점 구겨지는 그의 혀를 만지작거리다가 VIP Member Room을 발견했다. 나와 그가 지향하는 어떤 욕망이 있는 곳. 그와 내가 더 이상 모욕당하지 않을 곳. 내가 들어서는 순간 세상 밝은 미소로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아는 척하며 오랜만이시네요 하며 갈매기 웃음을 날린다. 차 한잔 드릴까요? 하면 저는 와인으로 할게요 하며 화답할 테다.

무슨 업무 도와드릴까요? 하면

조그맣게 사업하나 하려고요 112억 정도 대출 가능 할까요? 그러면 직원은 112억이요? 물론이죠^^~

.

.

.

"112번 고객님, 112번 고객님 안 계시면 다음 번호로 넘기겠습니다."
"잠깐만요!"


*일러스트: 이소령쵝오님의 7월18일 월요일세시 기록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적'이라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