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의 리포트

by CB

1월 1일이 지났다.

매년 우리 가족은 해돋이를 보며 새해를 맞이했다. 운이 좋게 아버지의 고향은 가림성이라는 백제시대에 존재했던 산성 바로 밑에 위치하고 있는 시골마을이다. 사극 느낌의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사색에 잠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하는 아름다운 장소이다. 동쪽으로는 탁 트인 풍경이 펼쳐져 있어 지역에서는 매년 해돋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이기 때문에 해돋이를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덕분에 매년 우리 가족은 명소에서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빌고 떡국을 만들어 먹으며 가족들끼리의 정을 나눴다.

지금은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 등장하는 가림성

하지만 올해는 해돋이를 보러 집으로 가지도 않았고 심지어 8시가 넘어서야 아침을 맞이했다. 새해에 항상 해돋이를 보았는데 매년 하던 행사를 하지 않아서 약간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느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하지만 올해는 해돋이를 보고 싶지 않았다.

카운트다운을 세며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새벽에 일어나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게 된다면 20대와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함에 빠질 것 같았다.

해돋이 대신 2020년이 되어서 잠실에서 노을을 봤다.

나는 종종 회사 동료들과 나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2년을 빼 달라고 농담을 하곤 한다. 2년은 군대에서 생활하며 사회와 떨어진 공간에 있었으니 그것만이라도 빼고 어려지고 싶었다. 그냥 사람들과 나이차를 줄여보고자 나를 위로 삼아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냥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서른을 코앞에 둔, 20대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보였다.

미래를 위해서 변화를 하기보다는 현재에 머무르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싫다. 나는 도전적이고 싶다.

20대의 초반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군대에 있을 때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삽 한 자루 들고 2000명의 병사들을 위해 볶음 요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세 번씩 하면서 하루를 보냈고 전역을 하고 나서는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는 라이프가드 생활을 하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온몸을 그을렸다. 그렇지만 힘들어하기보다는 온몸을 던져가는 생활을 즐기며 동료들과 어울리는 맛에 하루의 피로를 달래곤 했다. 그 열정은 점점 더 커지고 흘러넘쳐 '모험심'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경험이 힘!'이라는 생각으로 나의 미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더 다채롭고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열정과 모험심 그리고 일종의 패기(?)를 가지고 뜬금없지만 해외에서 나를 찾아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당시에 나의 결심을 전해 들은 가족들과 친구들은 놀라서 믿으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학생 시절 나의 영어 점수는 항상 바닥이었던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자기소개도 못하는 내가 호주에 간다고 하니 다들 걱정이 되었다보다. 결심을 한 당일 바로 PC방으로 달려가 인터넷으로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하지만 호주에서 2년 가까이 생활을 하며 여러 문화와 가치관에 둘러싸인 경험은 많은 것을 바꿔주는 힘이 되었다.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 타투때문에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좋은 친구들이다

호주에서의 생활은 매일이 영화 같은 장소를 걷는 느낌이었고 환상적이었다. 길거리 가로수는 이색적인 모습으로 위로 높게 솟아 있었고 오래된 유럽식의 건물들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호주에서의 일하는 경험은 매우 독특한 모습이었다. 나와 같이 카페에서 일을 했던 친구들은 농담과 장난을 굉장히 즐겨했다. 심지어 주문이 밀려있는 상황에서도 재밌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그냥 조금 게으른 친구들인가 라고 느끼기도 했지만 그들은 당시 나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을 해주었다. 그저 '일하는 것도 즐기며 하고 싶다'라니, 이 말은 아직도 내가 일을 하면서 가슴속에 품고 있는 가치관으로 남게 된다. 나는 밀려드는 주문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피곤을 느꼈지만 그들은 나에게 '너무 힘들게 일만 하지 말고 즐기면서 하자'고 설득했다. 문을 닫을 때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은 맛집으로 유명한 카페였지만 그 말을 들은 이후 나의 카페 생활은 항상 재밌고 출근하고 싶은 공간이 되었고 앞서 언급했지만 현재까지도 내가 일을 하면서 항상 잊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파하고 있는 '가치관'이 되었다.

그들에게 배운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이 끝나면 다 같이 모여 밴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냥 취미로 하는구나 생각을 했지만 그들은 버스킹 수준이 아닌 호주를 돌아다니며 언더그라운드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멍해졌다. 경험을 위해 한국을 떠나온 것이 이런 것들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였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도 즐기면서 하는데 심지어 일이 끝나서도 자신의 꿈들을 위해서 노력 중이라니, 그동안 꿈도 없이 달려온 나에게는 자신을 질책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이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 뽑히게 된 것인가?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노래를 연습하고 글 쓰는 것을 반복하게 되는 출발점이 이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꿈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고 나를 변화시키는 가치관 하나를 배워왔다.

하지만 나는 역시 한국인이었다. 호주에서 돌아온 나는 20대의 중반에 들어서 있었고 친구들보다 늦었다는 '두려움'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이제는 자리는 잡아야 되지 않을까? 더 이상 경험만을 쌓기에는 이미 취업을 하거나 졸업을 앞둔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무언가에 지각을 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아주 다른 색의 '겁'이 찾아왔다. 이제는 경험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그만 돌아다녀야 한다고, 안정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마음이 나의 '열정'을 누그러트렸다. 그리고는 20대 중반에 1학년으로 복학을 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나랑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이 있어서 학교 생활을 잘 해낼 수가 있었지만 이제 20살, 21살이 된 대다수의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 돌아온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끓어오르던 솥이 차가운 밤을 지나고 식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압박감'이라는 마음이 끓어오르던 '열정'만큼 차오르기 시작했다. 공부를 썩 잘하지 않았던 수험생 시절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결과를 빠르게 도출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정말 많이 괴롭혔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형은 선비라서 술 먹으러 안 가지?'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공부를 했었다.

졸업식, 정말 기분이 좋았다.

다행스럽게도 압박감이 나를 괴롭힌 덕분이었을까. 좋은 기업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는 짜릿함에 2년 정도 즐겁게 회사생활을 했다. 사람들도 좋았고 일도 좋았다. 호주에서 배워온 가치관을 떠올리며 동료들과 즐겁게 일을 했었다.

하지만 변화는 빠르게 찾아왔다. 조금씩 회사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팀의 리더가 바뀌면서 일과 나의 성격이 서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는 것도 발견하게 되었고, 늦은 퇴근으로 나의 생활이 없어지고 있다는 현실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지쳐가는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처럼 나의 취미를 전문적으로 만들고 싶어 졌다.

20대 후반에 와서 다시 예전처럼 '열정'이 차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행복하게 느껴지며 다시 예전의 열정이 타오르게 하는 불씨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20대 초반의 나는 잘하지 못해도 일단 시작을 할 '용기'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용기가 '나이'에 눌려있는 느낌이 든다. 당차게 그만두고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를 잡는 것은 더 이상 통장잔고도 아니고 나이였다.

이제는 다른 걸 시작하기에 늦지는 않았을까 하는 '겁'이라는 것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한번 겁이라는 것을 마주하고 보니 찾아오는 주기가 점점 빨라진다. 1년에 한 번 찾아오던 것이 3개월에 한 번 찾아오더니 지금은 더 자주 찾아오고 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새로운 경험을 위해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을 자주 하고 있었다. 주민등록상의 나이에 겁을 먹는 내가 안쓰럽고 가엾다가도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20대의 초반처럼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마음은 20대의 초반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충분히 '열정' 차오르고 있으니깐. 그래서 올해의 나는 이런 '나이'가 주는 '겁'을 이겨보려고 한다. 이 리포트의 결론은 아직 나는 열정이 있는 청춘이라는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