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den & House
나의 삶은 정원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푸른수목원의 이정철 원장과 정원사들은 처음 식물을 만난 나에게 강렬한 인상과 매력을 남겼다. 그래서 푸른수목원은 내 정원 역사의 고향 같은 곳이다.
올해로 제주 이주 십 년, 집 지은 지 8년이 된다. 우리는 서귀포 생활에 완벽히 만족해서 앞으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은 없다. 아니, 서울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 노년에 아파서 서울에서 생활해야 하는 시간이 올지라도 가능한 한 서귀포에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2월이다. 낮 기온이 15도 이상 올라가면 정원 일이 시작된다. 3~6월은 정원을 가진 사람들에겐 가장 바쁜 철이다. 내 주 임무는 땅이고, 남편의 주 임무는 땅 위다. 나는 풀을 뽑고, 남편은 나무를 다듬는다.
작년 이맘때 남편이 호기롭게 큰소리쳤다.
“올해는 당신 풀 뽑지 마요. 내가 이웃 할망에게 부탁해서 품삯 주고 하루 날 잡아 다 뽑을 테니까.”
“봄에 두 번은 뽑아야 할 걸요. 초봄과 장마 후에.”
그런데 봄이 지나가는데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남편에게 재촉하는 편이 아니라 기다리고만 있었다. 드디어 참다못해 직접 나가 풀 뽑으면서 물었다.
“아니, 할망들에게 부탁한다 해서 기다리다가 풀만 무성해졌잖아요. 진작 나갈걸.”
“할망들이 뽑으면 풀이고 꽃이고 싹쓸이 할 거라서.”
나는 예전 기억이 떠올라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망설임을 이해했다.
옆집에 친구가 살 적에 풀 뽑는 일을 이웃 할망에게 부탁한 적이 있다. 참 깔끔하게도 풀을 뽑으셨는데, 문제는 아끼던 꽃까지 싸악 다 뽑아버려 그 집 아내가 망연자실한 적이 있었다. 할망들이 지나가면 아무것도 안 남았다.
그러니 올해도 3월이 되면 부지런히 우리가 직접 일을 시작해야 한다. 정원과 집을 가졌다 해서 완벽하게 행복하다,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돌보아야 할 땅이 있는 사람은 노년이 두렵지 않다. 늙어도 적적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 땅에 의지하고 살 것이다. 그것은 음악을 좋아하거나 책이나 운동을 좋아하는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이다. 뭐랄까. 숨이 더 잘 쉬어지는 공간을 갖고 있달까.
우리 집은 담이 높다. 남편은 올해 바깥 담벼락에 장미를 올릴까 검토 중이다. 이미 집 안 정원 개비온에 장미를 올리고 있지만, 바깥에도 심고 싶어 한다.
“담에 올리려면 바깥에 지지대를 세워야 해.”
나는 워낙 가시 있는 꽃을 겁내서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네이버에 로자리안 카페가 있는데, 거기 가입해서 우선 여러 가지 듣고 배워 보구려.”
집 뜰에 찔레가 자랐는데, 그 기세가 하도 당당해서 곁에 가기 무서우니 제발 왕창 좀 잘라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다.
“꽃 좀 보고.”
드디어 타협을 보고, 찔레는 일정 부분의 개비온에만 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두 얼치기 정원사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하고, 서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그래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없으면 이 집과 정원을 관리하지 못한다.
“나중에 내가 먼저 가면 이 집 팔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세요.”
서로 권하기도 한다.
시골에 집이 있어 편안하다.
집에 정원이 있어 둘이 더 사이좋게 지낸다. 이 두 가지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