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아이들은 음을 알아서 실로폰을 만나면 저절로 딩동거리게 된다. 어려서 장난감 같은 실로폰을 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피아노와 달리 쉽고, 가벼운 소리가 나는 실로폰으로 ‘나의 살던 고향은’이나 ‘산토끼’, 좀 커서는 ‘올드랭사인’을 옥타브가 올라갈 때는 한 옥타브 내려서 치며 즐거워했다. 건반악기인 피아노와 다른 음색을 내는 타악기들은 일단 두드리기만 해도 흥겨워서 친해지기 좋았다. 어린이들이 치는 이 실로폰은 건반이 금속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 이름은 글로켄슈필(Glockenspiel)이다.
그 후 나는 많은 타악기를 만났다.
서귀포 관악단은 정기연주회를 한다. 그 관악단에는 흥미롭게도 타악기인 마림바와 비브라폰이 있었다. 몇 년 전 정기연주회에서 마림바의 연주를 듣고 열광적으로 손뼉 친 기억이 있다.
비브라폰은 일본의 작은 재즈바에서 라이브 연주로 처음 들었다. 바로 코 앞에서 듣는 비브라폰 연주는 샘물에 조약돌이 퐁퐁 튀는 소리 같았다. 오후의 재즈바는 장바구니 들고 온 아주머니,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그리고 나 셋 정도밖에 손님이 없었는데 중년의 비브라폰 연주자는 자신의 소리에 열중하여 진지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베트남에 나 홀로 여행을 갔을 때, 호텔 로비에 낯선 악기가 놓여 있었다. 마침 그 악기 단트룽(đàn T'rưng) 연주를 들을 수 있었는데, 소리에 또 반해 버렸다. 악기 욕심이 많아서, 한국의 인터넷을 뒤져 드디어 악기를 구입해서 아직도 집에 장식품으로 있다. 가끔 한 번씩 멜로디를 두드려 볼 뿐 내내 연습하지 않으니, 나중에 초등학교 음악실 같은 곳에 기증하고 싶다.
몇 년 전에 남편이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망설이는 남편을 부추겨 풀세트를 구입하라고 권했다. 자신을 위해서 그 정도 선물은 해도 된다고, 좋아하는 건 하고 살자고. 산속의 집에는 이웃이 듬성듬성하여, 남편은 밤 9시가 되기 전까지는 매일 연습한다. 언젠가 연주회를 할 날이 있으리라.
다른 악기들도 갖고 있다. 하모니카도 여행 중에 샀고, 플룻과 피리와 단소도 몇 개 있다. 백이나 악세사리를 수집하는 대신 악기만 보면 마음을 빼앗긴다. 지난번 남편 따라간 일본 악기점에서 남편은 드럼 스틱을 보는 동안 나는 조그만 칼림바를 퉁겨보며 갖고 싶은 충동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이러니 여행 가면 악기박물관은 꼭 찾아간다. 모스크바의 악기박물관은 전시품이 풍부하다. 악기에 관심이 있는 분은 모스크바 가면 꼭 가보기 바란다. 앞으로 제주에서 동경 직항이 열리면, 하마마쓰 시의 악기박물관에도 가볼 것이다.
바로크음악을 좋아해서일까.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를 보고 듣는 게 좋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악기관에서 하프시코드가 피아노로 진화된 과정을 볼 수 있다. 앞으로도 하프시코드가 진열된 곳에는 꼭 가서 보고, 직접 연주하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왜 악기박물관을 좋아할까. 악기는 사람의 감정을 다룬다. 반짝거리는 새 악기도 아름답지만, 박물관에서 만나는 ‘누군가 한때 썼던 악기’에는 그 사람의 기쁨과 고뇌, 모든 감정이 실려 있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스라한 그리움이 그 악기에 남아 있다.
나는 전 세계 음악박물관 리스트를 갖고 있다. 사실 여행의 목적을 음악과 악기에 맞추면 좁아지지만 더 풍성해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여정이다. 남은 인생 좋아하는 거 찾아다니며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