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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Mar 14. 2024

Youth & Well-Aging, 잘 늙어야겠어서

  

나에게 지시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다. 오롯이 나 혼자 매 순간 삶을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자신을 선명하게 느낀다.

뉴욕에서 한 달 삼십 만보 걷던 10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몸이 솜처럼 무겁고, 발이 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가면 된다, 저 모퉁이만 돌면 된다, 이제 엘리베이터만 타고 올라가 복도를 걸어가면 된다, 하고 나는 나를 독려했다. 

    

나를 세우고, 걷게 하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재미있게도 몸을 단련시키는 그런 시간은 내면의 힘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 서면 늘 무력했고, 무력하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 노력, 노오력~해도 개선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했다. 


“어서 나이 들어서 고목같이 되고 싶어. 자잘한 바람쯤에는 흔들리지 않는 고목말이야.”

젊었을 땐 늙으면 든든한 고목처럼 흔들리지 않고, 아프지 않고 살 줄 알았다. 아니 다른 이들은 그렇게 의연하게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매일 흔들리고 아프다. 아마 평생 고목? 거목? 이거 못해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하루의 반쯤 혼자 지내는 게 편하다. 거꾸로 말하면 하루의 반만 세상에 나가서 살고, 나머지 반은 혼자 놀아야 살 수 있다. 혼자 놀이를 못하면 숨이 답답해진다. 나는 이 산속 생활에 아주 잘 적응해 버렸다.  

   

남편은 지금도 종종 말한다.

“제주에 직장이 나와서 한 달 만에 이사 가야 했을 때, 당신이 두말 않고, 갑시다! 하고 따라와 준 것”이 너무 고맙단다.

보통 시골 가서 전원주택에 살자고 하면, 남편들은 좋아하는데 아내들이 시큰둥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부의 일은 곱절로 많아지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기도 힘들어서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에 내려온 부부 중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더 이상 다른 곳을 꿈꾸지 않을 만큼 여기 잘 적응했다.     

 

나는 노년이 좋다. 

인생을 

0~20세 소년기

21~40세 청년기

41~60세 장년기

61~80세 노년기와 그 이후

로 손쉽게 나눠 보았을 때, 나는 마흔 살 전에 행복하지 않았다. ‘존중’이란 걸 받아보지 못하고 살아서 기죽고 외로웠다.  

   

26살에 결혼하고 13년째,
내 이름은 ‘정지 가시나’다.
나는 아직 우리 집에서 내 밥그릇, 내 국그릇, 내 수저가 없다.
시어머니는 물론 남편, 중학생 아들, 일곱 살짜리 꼬맹이도
다 자기 밥그릇 국그릇 수저가 있는데.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고,
아무도 내 걸 사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무 그릇이나 아무 수저로 식사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아들이 자라면 알아주려나 했더니
사내 녀석은 무덤덤해서 모르는 것 같고,
꼬맹이가 크면 알아주려나.     


나의 장년기는 나에 대한 확인이었다. 아 나도 돈도 벌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고, 사람들에게 존중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확인. 돈 버는 게 밥 하는 것보다 쉬웠다. 

그래서 흔히들 ‘다시 한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하는 가정 절대 안 한다. 나는 지금이 제일 좋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시절이다.     


주위 어른들이 오래 산다. 우리 어머니들도 팔십 대 구십 대인데 아직 크게 건강에 무리 없다. 우리 아이들의 할머니는 지난주 95세로 돌아가셨다.

“예삿일이 아니야.”

나는 가끔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너무 오래들 산다. 우리는 그 길어진 목숨에 대비가 되어 있는가?


나부터도 60대지만 4, 50대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60대는 너무 저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육십 대가 어때서! 늙었음을 부끄럽거나 쉬쉬할 때가 아니다. 단~디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 돈만이 아니라, 마음 자세부터 시작해야 한다. 

뭐 하고 살 거냐? 칠십 대, 팔십 대, 구십 대에. 그 주야장천 긴 세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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