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모습은 왜 웃는 얼굴이 가장 끝까지 남는 걸까.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마음이 따뜻했기 때문일까.
제자 선. 초등학교에서 중학까지 내가 가르친 남자아이. 얼굴선이 곱상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지면 대번 눈물이 핑 돌 만큼 여렸다. 그 초딩 때 얼굴과 그 아이의 웃음이 지금도 또렷이 떠오른다. 선은 고교에 올라갈 무렵부터 약간 불량해져 엄마의 애를 태우더니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로 죽었다.
그 엄마와 나는 농담을 나누는 사이였는데, 그녀는 그 후 대체 어찌 살았을까. 그녀는 이사 후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제자 중 유일하게 죽은 아이라서일까. 간혹 어릴 때 웃는 모습, 우는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웃음으로 남은 또 한 사람. 아들의 어릴 적 피아노 선생님이자 내 친구. 방송국에서 아나운서였던 그녀는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피아노 교습을 했다. 외출 길에 나선 그녀를 계단에서 마주치면 하얀 코트를 화사하게 입고 고상하게 화장한 얼굴이 눈부셨다.
유난히 입이 짧고, 먹는 게 느려 가느다란 몸매를 가졌던 그녀.
“갈비 먹으러 가면, 내가 하나 먹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다 먹고 없어.”
하며 개구진 웃음을 웃던 모습.
우리는 아파트 아래위층에 살았고, 함께 임신했다. 출산예정일이 하루 차이였다. 나는 둘째, 그녀는 늦게 가진 첫째. 배가 불러오며 밤이 되면 서로 묻기도 했다.
“혹시 라면 반 개 빌릴 수 있어요?”
계단참에서 만나, 라면 반 개를 나누며 서로의 커진 먹성에 다시 웃음을 나누었다.
아들의 피아노 공책에 서로 연서라도 쓰듯, 매일 위트 넘치는 메모를 주고받았다. 말과 대화가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낳았고, 나는 딸을 낳았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며, 윤이 엄마와 더불어 셋이 함께 오래, 가깝고 다정하게 살았다.
그녀가 위암으로 죽고 난 후, 윤이 엄마는 더 이상 나를 보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너무 마음 아파서 상대를 보기 힘들었다. 그녀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떠올리면, 죽은 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우연히 나는 오래 살아 그들을 추억한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가슴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남는가. 가장 많이 보여 주었던 모습, 그 모습으로 인해 내가 즐겁게 웃거나 싱긋 미소 지었던 모습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내 삶의 태도도 정해지는 셈이다. 나도 가족에게, 친구에게 생각나면 눈물보다 웃음이 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