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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접시 Dec 26. 2020

화로 반상회



우리가 할아버지 댁 가는 날

아침부터  할아버지는 화로 위 반상회 준비를 한다.
지난가을부터 냉동실에 자고 있던 전어 아저씨를 깨운다.
아침부터  방앗간에서 데리고 온 가래떡 아가씨
칼집 단단히 잡힌 군밤 형제들

까칠하고 단단한 손으로
할아버지는
가장 먼저 말랑말랑하게 잘 구워진 가래떡 하나를
호호 불며 건네주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가래떡인지 어떻게 알았지?




시댁에 가면 남자밖에 없어 내가 몸을 쓰지 않으면 한 끼도 먹을 수 없다. 시댁에 갈 때마다 구이 종류와 한 가지 국거리 정도로 준비해 간다.
화로에만 올라가면 모든 음식들이 별 양념을 하지 않고도 맛나고  근사해진다.  화로를 편애할 수밖에 없다. 본색을 더 드러내면 화롯불 앞에서는 내가 몸을 쓰지 않고도 훌륭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남편도 무뚝뚝한 편인데
아버님은 무뚝뚝함의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뭘 드려도 맛나다 하지 않고 나한테도 뭘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나도 애교가 많지 않아 아버님께 살갑게 잘 못한다. 그래도 화롯불 앞에서는 술 한잔 따라드리고 아버님께 맛난 안주 하나 정도는 입에 넣어드릴 줄 아는 15년 차 며느리가 되었다.
이번에는 아버님이 떡을 구워 나에게도 내밀어주셨다.
아버님도 며느리에게 은근슬쩍 떡 하나는 내밀 줄 아는  15년 차 시아버지가 된 것 같다.
서로 살갑지 않아도 각자의 밑바닥에는
묵묵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다음날 눈이 소복이 내렸는데
아버님 다니시는 길을 조용히 쓸었다.
냉동실에 아껴두었던
옥수수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신 걸 삶고
어묵탕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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