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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y View Today

결국 꽃을 샀다.

by 코리디언

꽃피는 봄

나는 올해에는 꽃을 사지 않겠다 다짐하며 꽃시장을 가지 않았다.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발코니에 각종 일 년생 꽃들과 깻잎, 고추, 상추, 실란토르, 베이즐 같은 야채와 허브를 키웠다. 심지어 작년에는 딸기 화분을 사다가 화분을 걸어놓기까지 했다.

그런데 망했다.

이상하게 우리 집은 꽃이 오래가질 못한다.

초록의 식물들은 잘 자라는 반면 형형색색의 꽃들의 빛깔이 아름다워 사다가 놓으면 일주일이면 꽃들이 시들어 간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래서 올해는 꽃을 사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며칠 전 그 다짐이 무색하게 나는 또 꽃집을 향해 갔다.

참새가 방앗간을 찾는 것이 자연스럽듯 나는 자꾸 화원을 기웃거리게 된다.




우리 아파트 앞마당에는 내가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 꽃들과 풀들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도시에는 시에서 매년 테마를 정해 다른 꽃들을 곳곳에 심어놓은 덕에 거리마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아름다운 꽃들은 원 없이 볼 수 있다.

이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앞마당과 아파트 발코니에 꽃 화분들을 사다 장식한다.

어쩌면

그들은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일지도
작은 화분 하나에도 계절의 숨결을 담고,
좁은 발코니가 햇살과 바람, 꽃으로 물들기를 바라는 사람들.

그 마음은 어쩌면,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 조그만 변화를 주고 싶은 소망일지 모른다.
하루를 시작하며 피어나는 꽃잎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자신을 잊지 않게 해주는 고요한 다짐이 되기도 한다.

발코니에 꽃을 건다는 건,
밖으로 향한 손짓이자 안으로 피어나는 위로다.
누군가 그 꽃을 올려다본다면,
그 사람도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은 조용히 물을 주고, 다정하게 가지를 손본다.

꽃을 걸어둔 그 작은 난간 위에,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화분을 하나씩 놓고 살아간다.

발코니의 걸어둘 꽃 화분을 산다는 것은 빡빡한 일상에서 삶의 여유를 갖고 싶어 하는 깃발과 같은 것일지도


날씨가 점점 더 무더워지면서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선풍기가 망가져 새것을 사러 홈디포(Homedepo)에 갔다가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외부에 설치해 놓은 가드닝 (gardening)섹션으로 가고 있었다.

남편이 선풍기를 고르는 동안 나는 내 맘에 드는 꽃을 내내 보고 있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내가 사라진 줄 몰랐던 남편은 나를 찾느라 이곳저곳으로 쇼핑카트를 몰고 다니다 결국은 전화를 걸었다.


올해는 꽃을 사는 대신에 발코니에 새 커피테이블과

벼르고 벼르던 파라솔을 샀고,

바닥도 타일로 새롭게 깔았다.

변신한 발코니에서 나는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작지만 여름마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공간이다.


화분을 사 가지고 돌아오는 집 앞에 주인 잃은 개가 서 있다. 나는 개를 무서워해서 개가 지나가기를 한 참이나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나쁜 주인!

어떤 꽃을 고를까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내 안에서는 도파민이 솟고 있는 것 같다.

기분이 점점 더 좋아진다.

마치 놀이터에 놀러 온 아이처럼 나는 오랜만에 신이 났다.

진작 이러고 놀 것을 괜한 결심을 해가지고

좀 더 많은 꽃을 만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화분 네 개를 골라 집으로 오는데 내 마음이 즐겁다.

꽃이 주는 생명력과 활력 때문일까

올해는 꽃들이 내 곁에 좀 더 오래 머물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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