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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Jun 11. 2019

수영장 일기

오리발 신고 슝슝ㅡ2019.6.10. 월

6월부터 중급반으로 공간을 옮겼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작년 2월에 입문한 뒤로 정확히 1년 3개월 만에 초보 딱지를 뗀 셈이다.  아는 사람들은 왜 그리 오랫동안 얕은 물에서 수영을 하냐며 의아해하기도 했만, 나름 이유가 있었다.



조그마한 턱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심이 다르다 보니, 중급반 레인에 발을 들이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골반 정도밖에 안 되는 얕은 물에서 15개월간 헤엄을 쳤다니 좀 놀라운 건 사실이다. 네 가지 영법이 자유로울 만큼  많이 익숙해졌지만, 쉽게 중급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25미터 왕복은 무리 없지만, 몇 바퀴씩 쉬지 않고 돌기에 내 체력이 너무 부족했다. 한 번 갔다 돌아올 때는 습관처럼 수경을 머리 위로 올리고, 호흡 고르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중급반에 계신 분이 입버릇처럼 내게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번 출발했으면 쉬지 않고 곧바로 돌아오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해. 그래야 체력도 길러지고 흐름도 깨트리지 않게 돼. 자꾸 쉬어 버릇하면 중급에 가서 적응하기 힘들어."


힘들어서 헉헉대고 있다 보면, 그분의 조언이 번쩍 떠올라 다시 몸을 움직이게 되곤 했다. '기초를 탄탄히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초급에 오래 머물러 있기도 했다. 15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그 시간 안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질 수 있었다.


드디어 6월 5일 수요일, 깊은 물에서의 첫날을 무사히 보내고,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전 날부터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긴장되더니 급기야 수영이 끝난 뒤 왼쪽 팔 근육에 문제가 생겼다.

다행히 한의원에서 두 번 정도 침을 맞고 거뜬히 회복되어 곧 수영장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중급으로 출석하는 두 번째날인 오늘은 오리발 (숏핀)을 끼고 했다. 초급에서 몇 번 끼고 할 때는 회원들 간 실력 차이가 있어 회전이 순조롭지 않았지만, 중급에서는 오리발이 오리발답게 쓰였다. 모터를 단 듯 슝슝 물을 가르는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바닥에 발이 닿아서 중간에 멈출 일도 없고, 몸도 더 잘 뜨고, 게다가 운동량도 많은 것 같아 뿌듯하다.


초급에서 바로잡지 못 한 자세들은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배워보려 한다. 얕은 물에서 보낸 15개월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에 기쁘고, 수영으로 인해 행복했던 지난 시간들에 감사할 따름이다. 예쁜 수영복을 입고 지금보다 더 여유로운 몸짓으로 물살을 가르는  평생 수영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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