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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Feb 19. 2019

하루 여행ㅡ제주

금요일의 뚜벅이20190215 -3

누군가 라멘을 먹기 위해 당일치기로 일본을 갔다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쳤구나 싶었다. 매화를 보기 위해 당일치기로 제주에 가지 않겠냐는 지인의 제안에 흔쾌히 그러자 하고 보니, 나도 지인도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비행기 값이나 눈을 뗄 수 없는 제주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생각을 하면, 당일 여행은 그리 합리적이지 못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인과 함께 '당일치기 제주 봄맞이'를 하고 왔다.

2월 15일 금요일.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 공항에 도착하니 6시 20분이었다. 밤새 눈이 살짝 내려앉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행기 위에 쌓인 눈을 치워야 이륙할 수 있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실제 이륙 시간보다 한 시간 늦은 8시 10분에 출발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오전 10시가 다 되었다. 가뜩이나 짧은 일정인데 차질이 생겼다.

그날 제주는 비가 오락가락했고, 기온은 영상이라 큰 추위는 없었다. 렌터카를 받아서 첫 번째 목적지 한림 공원으로 달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첫발을 딛었던 제주도. 그때도 한림 공원을 다녀갔지만, 제주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야자수들과 감귤나무, 파인애플 나무들만 기억난다.

 비 온 뒤 물기 머금은 식물들이 촉촉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새해 들어 처음으로 피는 꽃 수선화와 그다음으로 핀다는 매화가 한데 어우러져 봄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서울에서 매화를 보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기에, 성급한 우리들이 먼저 제주로 달려온 것이다.

요즘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SNS 열풍을 타고 알려진 예쁜 해변, 걷기 좋은 오름, 분위기 좋은 카페나 맛집 탐방을 위해 온다. 상대적으로 한산한 한림 공원은 제주의 비밀 정원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1971년부터 씨앗을 심어 가꾼 야자수들이 어느새 자라 멋진 나무가 되어, 50여 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더 제주다운 면모를 지닌 채 보존되어 있었다.  제주에 발을 디딘 이상 어디서 무얼 하든 제주를 느낄 수 있어 좋다.

아침부터 주린 배를 흑돼지 구이로 채우고, 우리는 해안 도로를 달려 월정리 해변으로 갔다. 내 눈에 비친 월정리 해변은 보라카이의 화이트 비치와 닮았다. 신비로운 바다색과 하얀 모래, 검은 바위들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거기다 해변에 가지런히 놓인 빈 의자가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잡았다. 넓은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가, 머리카락 휘날리며 걸어보기도 하고, 행인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도 했다. 덕분에 우리의 한 순간을 여러 장 남길 수 있었다.

인적 드문 산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어둠이 져야만 볼 수 있는 '라이트 아트 페스타'를 보기 위해 조천읍에 있는 '다희연'을 찾아갔다. 빛을 매개로 세계적인 예술 작품들을 선보이는 곳. 일정의 마지막 코스라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느 때는 해도 빨리 지더니, 기다리는 어둠은 느린 걸음으로 왔다. 저녁 7시쯤 되자 낮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어둠이 오기 전과 후는 마치 마법에 걸린 시간의 경계에 있는 듯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만 있어서 인지 넓은 공간에 비해 작품 수가 적어서 아쉬웠다.

8시까지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갔다. 어쩐 일인지 공항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비행기들이 지연되는 바람에 우리가 타려고 했던 9시 5분 비행기가 10시쯤 이륙했다. 결국 집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살짝 넘은 시간이다. 하루를 이렇게 꽉 채운 날이 또 있을까. 여유롭게 다니지 못해서 아쉽지만 쉽게 생각할 수 없는 흥미로운 여행이었다. 그래서 내게 더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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