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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르녹 Oct 30. 2024

[짧은 픽션] - 수평선 너머


불규칙하게 출렁이는 물결들이 가득 찬 바다 위는 텅 비어있었다.


그 흔한 고기잡이배 한 척도 보이지 않았고 드넓은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피코와 나는 절벽 끝에 앉아 각자의 수평선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 넓다."

피코의 음성이 나지막이 들렸다.


"바다? 넓지."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피코는 그 말 한마디를 남긴 채 또다시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절벽 끝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쯤부터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고 기지개를 켜며 피코에게 말했다.


"피코, 이제 가자. 나 배고파."


그러자 피코는 내 손을 잡아끌며 내게 말했다.


"딱 10분만 이따 일어나자. 바다를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단 말이야.

그 순간에 잠깐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괜찮지, 베이커?"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다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수평선 너머로 타오르는 붉은빛 노을이 텅 빈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피코는 내게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베이커, 너는 언제까지 살고 싶어?"


피코는 가끔 이와 같이 뜬금없는 질문을 할 때가 있었다.


"나? 음... 나는 영원히 살고 싶은데."


"영원히? 왜?"


"글쎄, 이유는 딱히 없지만 굳이 하나를 만들자면 죽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구나." 하며 피코는 내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수평선 너머를 응시했다.


"피코, 너는 그럼 언제까지 살고 싶어?"

피코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나도, 영원히."

그리고 곧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조금 전까지는 아니었는데, 방금 베이커 네가 하는 말을 듣고 나도 갑자기 영원히 살고 싶어졌어."


"응? 방금 전까지는 그럼 어땠는데?"


내가 묻자 피코는 고개를 돌려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마치 눈앞에 물결치는 바다를 보는 듯했다.

나 또한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녀가 말했다.


"알잖아. 2년 전 우리 아빠 그렇게 되시고 나서부터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불과 방금 전까지 난 내 등 뒤에 내가 날개를 달고 있는지조차 까먹고 지냈던 것 같아. 나는 늘 이곳에 와 바다를 보며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거든. '날개 따위는 없으니 어차피 뛰어들면 곧바로 죽어버리겠구나.'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방금, 베이커 네가 영원히 살고 싶다는 말을 나에게 했을 때 순간 내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상상을 해봤어. 그랬더니 기분이 너무 좋은 거야. 정말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러고 나서 곧바로 네가 떠올랐어. 물론 옆에 있었지만 다른 의미에서의 네가."


피코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흔들림은 마치 잔잔했던 바다 위로 바람이 불며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나는 그녀가 말을 이어나가길 바랐다.

그래서 그저 가만히 그녀의 손을 포개듯 감싸 쥐었다.

그러자 피코가 기다렸다는 듯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내일도 눈을 뜨면 너를 볼 수 있을 테니까. 나의 가족들도, 내가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도, 모두 보고 싶을 테니까.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내일이 나에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하루가 될 테니까. 영원히 살고 싶어. 아니, 영원히 살 거야.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곁을 다 떠날 때까지는. 고마워 베이커. 얼른 가서 저녁 먹자. 오늘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라고 말하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수평선 너머로 출렁이는 파도의 물결은 어느덧 붉은빛 노을을 흘려보내고 달빛을 머금은 채 우리를 향해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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