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페가 여행을 떠난 지 392일째 되는 날, 그에게로부터 편지가 왔다.
새하얀 편지지 위에 구불구불한 그의 글씨체로 빼곡히 적힌 편지 몇 장과 그가 찍은 듯한 흑백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다.
페페는 나의 10년도 더 된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내 곁을 떠났다.
사진 속 장소는 그가 떠난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 같았다.
광활한 모래 능선들 사이로 마치 낙원처럼 자리 잡은 오아시스 가운데에는 물속에 반쯤 잠긴 두 그루의 야자수 나무가 우뚝 솟아있었다.
그들은 같은 높이로 나란히 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의 편지는 가벼운 안부 인사와 함께 시작됐다.
"잘 지내지, 샐리? 나는 지금 어딘지 모를 사막 한가운데에서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건조하지만 따뜻한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편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곳에 있으니 날짜 감각이 사라졌어. 날짜는 생략할 테니 이해해 줬으면 해. 봉투를 열게 되면 사진 한 장이 편지와 함께 들어 있을거야. 아마도 그 사진을 보며 이 편지를 읽고 있을 것 같네."
그의 예상대로 나는 한 손에 편지와 다른 한 손에 사진을 들고 시선을 번갈아 교차하며 편지를 읽고 있었다.
"아마 3일 전이었을 거야. 그날도 전날과 같이 사막을 걷던 중이었어. 사막에서의 여정은 대략 한 달 정도로 잡아놓고 나는 매일을 정처 없이 걸었어. 정말 걷기만 했던 것 같아. 그렇게 걷기를 반복하다 보름째 되는 날, 나는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사진 속 오아시스를 발견했어. 사실, 편지를 적고 있는 지금 나는 그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 몰라. 부디 흔들리지 않고 잘 나왔기를 바랄 뿐이지."
그의 편지가 다음 장으로 이어졌다.
"가운데 나란히 서있는 나무 두 그루 보이니, 샐리? 내가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가 되어준 소중한 나무 두 그루야. 그때 그 광경을 직접 사진으로 남겨서 너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 감사하기도 해. 오아시스를 발견하고는 흥분에 못 이겨 물을 마시고 물통에 물을 담다가 우연히 발견한 나무들이었어. 그 순간 문득,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네 생각이 났어. 참 웃기지? 아무 말도 없이 떠나와서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 소식 없다가 편지 한 통을 보내 고작 한다는 말이 나무를 보고 네 생각이 났다는 게 말이야. 그런데 어쩌겠어. 그게 내 마음인걸.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게 아니야.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사진 속 나무 두 그루를 보자마자 나는 동시에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 왜인지는 잘 모르겠어. 말로 표현이 잘 안돼. 그렇지만, 다시 돌아갈 거야. 네가 있는 그곳으로."
나는 편지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편지의 마지막 장이었다.
"이제 나는 정확히 10일 후에 사막을 뜰 거야. 그리고 네가 있을 그곳으로 가겠지. 거기가 어디인지 나는 모르겠어. 알다시피 나는 핸드폰도 노트북도 다 버리고 떠나버렸으니까. 그렇지만 왠지 알 것 같아. 네가 있는 그곳이 어디일지 말이야. 말은 하지 않을래. 왜냐하면 놀래켜 주고 싶거든. 그래서 이 편지를 먼저 보내는 거야. 정말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면 네가 너무 놀랄 것 같으니까. 샐리 너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동행자가 보내는 예의이자 배려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나를 꼭 껴안아 줄래? 네가 너무 보고 싶거든."
그리고 한 줄을 띄운 채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적혀있었다.
"함께하자, 이제는 우리."
페페가 보내온 편지는 이렇게 끝이 났다.
그때, 구름이 걷힌 듯 창문 사이로 얇은 한 줄기의 햇살이 들어찼다.
시계는 오후 3시 정각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